선사시대의대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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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덕문화원 작성일19-03-18 13:31 조회1,40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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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의 대덕
한반도에서 사람이 생활하기 시작한 것은 구석기 시대에서부터이다. 우리나라에서 구석기인의 존재를 알 수 있는 유적은 1960년대에 들어와 본격적으로 발견조사 되기 시작하여 현재 약50여 개소의 유적이 알려지고 있다. 대전에서도 서구 둔산동, 유성구 송강동, 대덕구 용호동 등 몇몇 곳에서 구석기 유적이 발견되었다. 1991년도에 조사된 둔산동 유적에서는 찍개·긁개·밀개 등 60여 점의 타제석기가 출토되었으며, 송강지구의 지표조사에서 찍개·안팎날 찍개·밀개 등 구석기가 채집되었다. 그리고 대덕구 용호동에서 12만년∼1만년전의 구석기시대의 유물층이 발굴되었는데 이곳에서는 석영, 규질암, 이암, 유문암, 수정 등을 이용하여 만든 석기가 4개의 문화층에서 발굴되었다. 그러나 현재까지 둔산동과 송강동의 구석기 유적에 대해서는 그 성격이나 규모 등이 자세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최근 용호동의 하용호 마을과 석봉정수장 신축부지에서는 많은 양의 구석기 유물이 다양하게 출토되어 우리고장의 구석기 문화를 보다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용호동의 대규모 구석기 유적의 발견은 앞으로도 우리지역에서 더 많은 구석기 유적이 발견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이러한 유적들을 통하여 대덕구 지역에서도 구석기시대에 사람들이 살았었음을 알 수 있다.
구석기시대를 지나면 중석기시대를 거처 신석기시대가 시작되나 한반도에서는 아직 중석기시대 유적의 발견이 희소한 편이라 문화상이 잘 드러나 있지 않은 상황이다. 중석기시대를 이어 신석기시대가 기원전 5000년경부터 한반도에서는 시작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신석기시대는 식량의 채집 단계에 있었던 구석기시대에 비하여 신석기 후기에 이르면 식량의 생산단계로 진입하면서 인류의 삶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즉 인류가 식량을 생산에 의존하게 되면서 이동생활에서 벗어나 농경이 유리한 지역에 정착하여 촌락을 형성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처럼 정착생활을 하게 되면서 원형이나 방형의 수혈주거를 구축하였고, 도구도 구석기시대와는 달리 정교하게 돌을 갈아만든 마제석기을 제작 사용하게 되었다. 신석기인들이 제작한 마제석기로는 농경과 관련된 돌보습·돌괭이·돌낫·반달돌칼 등의 농경구들이 대부분이었다.
우리나라의 신석기 문화를 대표하는 것은 빗살문토기이다. 한반도에서 빗살문토기는 처음에는 덧무늬 토기가 사용되다가 한반도 특유의 반란형의 즐문토기가 사용되었고, 후기에 이르면 평저토기 문화를 이루었다. 이와 같은 문화를 향유한 한반도의 신석기인은 대체로 고아시아족이라 여겨지고 있다. 이들은 아마도 혈연을 중심으로 하는 자급자족 형태의 씨족공동체 사회를 이루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한반도의 신석기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유적이 한반도 전역에 걸쳐 약 150개소가 발견되었다. 대전지역에서도 갑천 유역인 서구 둔산동에서 신석기유적이 조사되었는데 이곳에서는 직경 2∼3m의 집자리가 발굴되었고, 많은 양의 빗살무늬토기와 석기들도 출토되었다. 대덕구 지역에서도 지표조사결과 갑천 유역의 여러곳에서 빗살무늬토기 편들이 채집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대덕구 지역에서도 신석기시대에 주민들이 살고 있었음은 보여준다.
신석기시대가 지나고 기원전 1000년대가 되면 한반도의 청동기시대가 시작된다. 한반도의 청동기문화의 특징은, 토기는 무문토기 문화이고, 주거도 신석기시대와는 달리 움집의 깊이가 얕아지고 규모가 커지고 장방형의 형태를 뛰었으며, 무덤으로는 고인돌과 석관묘가 주로 구축되었다. 그리고 청동기문화는 한반도 특유의 세형동검 문화를 이루고 있었다.
대덕구 지역에서도 청동기 문화유적이 발견되고 있으며, 서구 둔산동에서는 청동기시대의 유적이라 판단되는 2기의 평면 직사각형에 가까운 움집이 발견되었고, 유성구 구성동에서도 청동기시대의 것으로 판단되는 4기의 주거지가 발견되었다. 그리고 대전지역에서 발견된 청동기로는 괴정동 석관묘 출토품이 유명하다. 이 곳에서는 세형동검을 비롯하여 청동거울·검·손잡이 모양의 의기·둥근 뚜껑이 달린 의기 등 세형동검 문화 초기 유물이 대량으로 출토되었다. 그리고 대덕구 관내에서도 갑천변을 따라 무문토기가 산포된 지역이 여러 곳이 밝혀졌고, 특히 청동기시대의 무덤이었던 고인돌이 신대동과 비래동에서 여러 기가 분포되어 있어 청동기시대의 주민들의 거주사실을 확인 할 수 있다. 신대동 고인돌에서는 홍도 1점·혈구가 있는 이단병식 마제석검 1점·삼각만 입석촉 10점·이단경식석촉 3점이 발굴되었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대덕구지역에서도 청동기시대 주민들이 생활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