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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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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덕문화원 작성일19-04-16 10:00 조회33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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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on_arrow.gif 송상기(宋相琦)

 

* () : 옥여(玉汝)

* () : 옥오재(玉吾齋)

* 년 대 : 1657(효종8) - 1723(경종3)

* 관 직 : 대사성, 충청감사, 대제학, 대사헌, 이조판서, 판돈령 부사,

* 거 주 지 : 회덕 읍내(읍내동)

* 유 적 : 옥오재(읍내동)

* 저 서 : 옥오재집

* 묘 소 : 대전광역시 유성구 외삼동

 

송상기는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로 호는 옥오재(玉吾齋)이고, 본관은 은진이다. 판서 송규렴의 아들이다. 송시열·송준길에게 사사하고 28세 때 정시문과에 급제, 승문원에 보직되었다가 검열·수찬·부교리를 역임하였다. 문장에 능하고 학식이 풍부하였으므로 홍문관에서 왕에게 드리는 글은 대개 그가 작성하였다.

 

송상기는 부수찬 때 장희빈의 어머니가 가마를 탄 채, 대궐에 출입하는 것은 잘못됨을 올렸다가 파면되었다. 그 뒤 장씨가 왕비에 오르고 송시열과 외삼촌인 김수항 등이 사약을 받고 죽자, 통탄하며 두문불출, 고향에서 6년이나 머물러 있었다.

갑술옥사(1694)로 장희빈이 자리에서 쫓겨나고, 다시 민비가 복위되었다. 이에 따라 송상기도 다시 출사하여 장령, 사간, 교리 등에 임명되었다. 이때 그는 상소를 하여 "위에서 근본자세가 철저하지 못하여 사화가 계속 일어나니 마땅히 엄한 징계를 가해야 하며, 희재의 사건과 같은 것은 만인일구의 공론과 맞서서 綱常(강상)을 무너뜨릴 수는 없는 것이다." 라 하였다. "윤휴가 중전을 무시하고 핍박하여 전의 흉당들이 감히 자기들의 행동을 합리화하려 하니 파직함이 옳다." 하였는데, 임금이 비답을 내리고 즉시로 윤휴를 파면하였다. 이후 송상기는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와 승지가 되었다. 이어서 그는 대사성·충청감사 등을 역임하였고, 대제학, 대사헌, 이조판서를 거쳐 판돈령부사에 이르렀으나 당파싸움에 휩쓸려 경종초의 신임사화(1721-1722)때 강진에 유배되었다가 다음 해 사망하였다.

 

저서에 옥오재집이 있다. 묘소는 유성구 외삼동에 있고, 유적은 옥오재(대덕구 읍내동)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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