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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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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덕문화원 작성일19-04-16 10:17 조회31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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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on_arrow.gif 송재경(宋載經)

 

* () : 자중(子中)

* () : 기기와(棄棄窩)

* 년 대 : 1718年(숙종44) - 1793年(정조17)

* 관 직 : 이조판서, 예조판서, 지중추, 강화유수, 영변부사, 의주부윤, 충청도 관찰사

* 거 주 지 : 회덕 읍내(읍내동)

* 묘 소 : 공주 계룡면 봉명리

 

송재경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호는 기기와(棄棄窩), 본관은 은진이다. 제월당 송규렴의 증손이며 통덕랑 송필태의 아들이다. 모친 안동권씨는 참찬을 지낸 권박의 녀이다. 1758(영조34)에 음서로 선공감역이 된 후, 세자부솔 등을 거쳐, 1764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그가 본격적으로 조정에 나아간 것은 영조 말년이었다. 중앙직으로는 이조판서·예조판서·지중추·강화유수 등을 역임하였고, 외직으로는 영변부사·의주부윤·충청관찰사 등을 지냈다. 조정에 나아간 지 30여 년 동안 권부에 아부함이 없이 지조를 지켜 관직에 임하였다. 따라서 반대파들의 모략과 비난으로 어려운 지경을 여러 번 겪었으나 순박하고 정직한 성품으로 위험한 고비를 잘 넘겼다.

 

1786(정조10)에 대신들의 건의에 따라 자헌대부에 올랐으며, 다음 해에는 기사에 들어갔다. 1792년 계방(세자익위사의 별칭)에 있을 때, 박하원의 투서로 무고하여 일이 장차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나, 영조의 어질고 현명함에 힘입어 위기를 모면하였다.

 

그는 효도·우애·충성이 돈독했으며, 재물을 모으거나 받는 것은 사양하고 베풀기를 기뻐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관직이 올라가고 녹봉이 많아졌어도 집안 형편은 매우 궁색하였다. 1793(정조17) 죽음에 임하여 집안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나는 평생토록 살림에 힘써 얻은 것은 조금도 없으나, 다만 나 자신을 굽혀 다른 이들을 따르지는 않았다."라고 술회했다. 문의현 매장리에 장사 지냈으나, 후에 공주 계룡면 봉명리로 이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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