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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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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덕문화원 작성일19-04-16 10:37 조회4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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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on_arrow.gif 송희진(宋希進)

 

* 자(字) : 退之(퇴지)
* 호(號) : 德城(덕성)
* 년    대 : 1580년(선조13) - 1641년(인조19)
* 관    직 : 성균관 전적, 예조좌랑, 사헌부 지평, 장령, 세자시강원 문학, 간관, 청하현감
* 거주지 : 회덕 송촌
* 묘    소 : 대전광역시 동구 이사동
송희진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호는 德城(덕성), 본관은 은진이다. 임천군수 송남수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선무랑 유형필의 딸이다. 사계 김장생의 문하에서 공부하여 24세(선조36)에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성균관 유생으로 있으면서 지론이 강직하여 학우들의 존중을 받았다. 1610년 모친상을 당하여 고향으로 돌아와 상을 끝낸 후, 세상이 혼란한 것을 보고서 10여년을 관직에 나가지 않았다. 이때 부친(송남수)이 치사하고 고향에 돌아와 10여년을 전원에서 한가로이 지냈는데, 송희진은 50세에 가까운 나이가 되어서도 지성으로 효도를 다하였다. 그후 인조 초에 봉선전 참봉이 되었고, 1626년(인조4)에 부친상을 끝낸 후에는 다시 현목이릉의 참봉이 되었다. 인조 6년에는 문과 별시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 권지정자·승정원 주서를 거쳐, 춘추관 기사관과 성균관 전적 및 예조 좌랑을 지냈고, 그후 사헌부 지평 장령·세자시강원 문학 등을 여러 차례 거쳤다. 기사관으로서 왕조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고, 간관으로 재직할 때에는 시폐를 바로 잡는데 앞장섰다. 1635년에는 대사헌 김상헌과 함께 외척이 궁궐을 마음대로 출입하는 것을 금지해야 한다고 건의하였다. 간언으로 재직 때 왕의 뜻에 거슬려 청하현감으로 좌천되었으나 부임하여 민생의 어려운 문제를 잘 해결하여 현민의 중망이 컸으나, 1636년 병자호란으로 국왕이 치욕을 당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곧 벼슬을 버리고 향리로 돌아왔다. 후에 청하의 주민들이 선정비를 세워서 그 공덕을 칭송하였다. 선조 송유를 추모하고 회덕의 삼현서원의 원장이 되어 매월 모임을 가지면서 후학에게 『소학』을 강론하다가 향년 62세로 졸 하였다. 묘는 이사동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