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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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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덕문화원 작성일19-04-16 10:39 조회4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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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on_arrow.gif 신응시(辛應時)

 

* 자(字) : 君望(군망)
* 호(號) : 白麓(백록)
* 년    대 :1532년(중종37) - 1585년(선조18)
* 관    직 : 경연관, 전라도 관찰사, 예조참의, 병조참지, 대사간, 홍문관 부제학
* 유    적 : 백록정 터(대덕구 갑천변)
신응시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호는 白麓(백록)이며, 본관은 영월이다. 부사 신보상의 아들이며, 백인걸의 문인이다. 28세 때 문과에 급제하여, 설서·정언을 지낸 뒤 사가독서했다. 35세에 문과 중시에 합격, 예조·병조의 좌랑과 교리를 거쳐 선조 초에 경연관이 되었다. 그 뒤 모친상 중 『주자대전』에서 예에 관한 부분을 발췌하여 『주문문예』를 간행했다. 또 전라도 관찰사·예조참의·병조참의를 거쳐 대사간·홍문관 부제학에 이르렀다. 경연에 임해서는 고금의 사례들을 적절하게 인용하여 막힘이 없었다 한다. 지방수령으로 있을 때는 풍속을 바로잡고 교육을 진흥시켰으며, 성혼·이이와 특히 교분이 두터웠다. 신응시는 송응서(송준길의 조부)의 사위로 회덕과 인연을 맺게 되어, 회덕의 갑천부근에 백록정을 짖고 자연을 즐기면서 여생을 보냈다. 백록정의 위치는 분명하지 않으나, 그 시에 "쌍분갑수류"라 한 것이 참고가 될 뿐이다. 백천의 문회서원에 배향되었으며, 유적으로는 백록정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