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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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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덕문화원 작성일19-04-16 10:45 조회4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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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on_arrow.gif 이시직(李時稷)

 

* 자(字) : 聖兪(성유)
* 호(號) : 竹窓(죽창)
* 년    대 : 1527년(선조5) - 1637년(인조15)
* 관    직 : 별제, 정언, 장령
* 증    직 : 이조판서
* 거주지 : 회덕 송촌
* 유    적 : 충신정려(대덕구 송촌동)
이시직은 조선 후기의 문관·충신으로 호는 竹窓(죽창), 본관은 연안이다. 연성부원군 이석형의 6대손이고, 찰방 이빈중의 아들이다. 연안 이씨가 회덕과 연관을 맺기 시작한 것은 송여해(송유의 증손)가 이석형(이시직의 6대조)의 사위가 되는 인연에서 비롯되었다. 이후 이들 양 가문은 또 이정현(이시직의 조부)이 송세영(송준길의 증조부)의 사위가 되는 혼인관계를 맺게 되어 이시직도 송촌에서 살게 되었다. 이시직은 조호익과 김장생에게서 배웠고, 1624년(인조2) 직장으로서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별제가 되었다. 이듬해 이괄의 난 때 왕을 공주로 호종하였고, 이어 정언·장령 등을 역임하였다. 1636년(인조14) 병자호란 때 강화로 들어갔다가 강화가 함락되자 사복시 주부 송시영(회덕인)과 함께 자결하기로 약속하였다. 송시영이 먼저 자결하자 그는 시신을 붙들고 통곡하고, 묘 둘을 파서 매장한 후 노복에게 다른 한 구덩이에 자신을 매장하도록 부탁하고, 옷을 벗어 객사의 주인에게 맡겨 이로써 염을 할 것과 후일에 그의 아들을 시켜서 시신을 거두어 장사지내게 할 것을 부탁한 다음 스스로 활끈으로 목을 매어 죽었다. 이때 그의 나이 66세였다. 특히 아들에게 전하라는 편지글 중에는 "살신성인 하니 땅을 굽어서나 하늘을 우러러서 부끄러움이 없다." 라는 말이 들어 있는데, 이는 그의 고결한 선비정신을 보이는 대목이다. 그후 이조판서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충목이다. 강화의 충열사와 회덕의 숭현서원에 배향되었다. 1638년(인조16) 충신정문이 내려졌는데 그 유적이 송촌동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