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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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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덕문화원 작성일19-04-16 10:45 조회1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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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on_arrow.gif 정복시(鄭復始)

 

* 자(字) : 以健(이건)
* 호(號) : 桂潭(계담), 桂軒(계헌)
* 년    대 : 1522년(중종17) - 1595년(선조28)
* 관    직 : 승문원 권지부정자, 고부군수, 지평, 호조참의, 돈령부도정
* 거주지 : 회덕 석봉리(석봉동)
* 저    서 : 계담집
* 묘    소 : 대전광역시 대덕구 석봉동
정복시는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호는 桂潭(계담)·桂軒(계헌), 본관은 동래이다. 천문교관 별좌 정화의 아들이다. 동생 정복원과 함께 송도에서 화담 서경덕의 문하에서 배웠다. 1546년(명종원년)에 사마시를 거쳐, 1555년(명종10)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권지부정자가 되었다. 이후 여러 벼슬을 거쳐 1567년에 고부군수가 되었는데, 이때 간신들이 국론을 분열시켜 국정을 어지럽히고 충신들과 현사가 죽음을 당하게 되는 것을 보고, 왕에게 차자를 올려 당인들의 죄를 씻어 줄 것을 간청하였다. 왕이 그이 장계에 대해 연소한 문관이 반대당의 신원을 요구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하여 처벌하고자 하였으나, 윤원형의 만류로 화를 면하였다. 그후 1577년(선조10)에 지평이 되었고, 이어 호조참의·돈령부도정을 역임한 뒤 1592년(선조25)에 은퇴하였다. 정복시는 시문에 밝았으며, 특히 유영경과 교유하면서 시문으로 자연과 인정을 노래하는 글을 많이 남겼다.

동래정씨가 회덕에 와서 살게 된 것은 그가 회덕현 북 15리에 내거 한데서부터 비롯된다. 원래 그곳에는 계담대가 있었고, 후에 그의 외증손인 송국사(母는 동래정씨 정단의 녀)가 계담이라는 호를 이어 받아 쓰고 그곳에 풍월정을 지었다 하나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다. 오늘날도 자손들이 회덕지방에 많이 살고 있다. 저서로는 『계담집』이 있고, 묘는 석봉동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