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메뉴로 바로가기
추억을 만드는 대덕문화원
역사인물
· HOME > 대덕의역사문화 > 역사인물
  • 대덕의 역사
  • 대덕의 인물
  • 관직과 풍계
  • 과거제도

파 가

페이지 정보

작성자 대덕문화원 작성일19-04-16 10:48 조회20회 댓글0건

본문

icon_arrow.gif 파 가(波伽)

 

* 년    대 : ? - 661년(백제 문무왕1)
* 관    직 : 은솔
* 활동지 : 회덕 우술성 (읍내동 수척골)
파가는 백제 부흥운동기의 유민으로 생몰년대는 잘 알 수 없으나, 7세기 중엽 백제에서의 관등은 恩率(은솔 : 16관등의 하나로서 품계는 3품)이었다. 660년 백제가 멸망한 뒤에 옛 백제 땅인 우술성(대덕구 읍내동 수척골)에서 유민들을 모아 부흥운동을 폈다. 660년 신라는 당나라의 세력과 연합하여 백제를 멸망시키고, 다음으로 고구려의 정복을 준비하고 있었다. 661년 6월, 무열왕이 죽고 그의 장자인 문무왕(법민)이 왕위를 계승하였다. 이때 당나라에 가서 숙위하던 김인문(王弟) 등이 돌아와서 왕에게 알리기를, "당제는 이미 소정방을 파견하여 수륙 35도병을 거느리고 고구려를 정벌하게 하고, 드디어 왕(신라왕)에게 명하여 군사를 일으켜 당군과 서로 응하라 하니 비록 복상 중이기는 하나 당제의 칙명을 어기기는 어렵다"라 하였다. 그리하여 동년 7월 17일에 왕은 김유신을 대장군으로 삼고 군진체제를 정비하고, 8월에 모든 장병을 거느리고 시이곡정에 진주하였다. 이때 파가 등 백제의 부흥군은 이곳 회덕을 근거지로 하여 군진을 펴고서 신라군의 출정을 가로막고 대항하였다. 이에 문무왕은 먼저 사자를 파견하여 이들을 말로 타일렀으나 부흥군은 이에 굴복하지 않았다. 9월 19일 문무왕은 태현정(회덕으로 비정)에 진주하여 9월 25일 군사를 거느리고 옹산성(계족산성으로 비정)을 포위하였고, 9월 27일에는 대책을 태워버린 다음 수 천명을 참살하고 항복을 받았다. 이어 신라의 상주총관 품일 등이 군사를 이끌고 우술성을 공격해 와서 우술성의 부흥군 1.000여명이 죽음을 당하게 되었다. 이때 달솔 조복과 함께 우술성에 남아있던 은솔 파가는 남은 무리를 거느리고 할 수 없이 신라에 항복하였다. 이에 문무왕은 조복에게는 급손 벼슬을 주어 고타야군(안동) 태수를 삼았고, 파가에게도 급손의 관등과 전택 및 의물을 하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