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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연재 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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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덕문화원 작성일19-04-16 10:50 조회2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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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on_arrow.gif 호연재 김씨(浩然齋 金氏)

 

* 호(號) : 호연재
* 년    대 : 1681년(숙종7) - 경1722년(경종2)
* 거주지 : 회덕 송촌
* 유    집 : 호연재 유고
호연재는 조선 후기의 여류시인, 안동 김씨로 군수를 지낸 김성달의 녀이다. 19세에 동춘의 증손인 소대헌 송요화와 결혼하여 28세에 아들 송익흠(보은현감, 호 : 오숙재)를 낳고, 딸을 낳았으며, 4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호연재의 시작의 재능은 가통을 이어받은 것으로 그녀의 부친도 유고가 있으며, 서모 또한 시문을 남겼다. 아울러 형제들 간에도 시를 주고 받았음을 『호연재시집』에서 엿볼 수 있다. 호연재의 선조인 김상용과 김상헌도 뛰어난 시작품을 남겼음을 생각할 때, 그녀의 시재는 집안의 내력에 의해 배태되었음을 짐작케 한다. 이러한 호연재의 시적 재능은 회덕의 명망있는 사족인 동춘당 후예와 혼약을 맺음으로써 결실을 보게 된다. 그녀는 조선 후기 사대부 여성이 지닌 절제된 감정과 사유를 시문에 담게 되는바, 이는 3책으로 필사되어 가전되었다. 1책은 「鰲頭追致」(오두추치)라고 표지에 쓴 시집이고, 1책은「浩然齋遺稿」(호연재 유고)라 표제한 것이며, 1책은「自警篇」(자경편)이라고 한 것이다. 이 3책은 후손 송용억에 의해 원문 영인과 더불어 변역 출간된 『호연재유고』는 조선 후기 여류문학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새로운 발굴 자료로 떠오르고 있다. 16세기 후반부터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여류 문인들이 대체로 고르게 분포되어 있는 편인데, 그 동안 호연재의 생존연대는 여류 문학사의 공백기를 채워주는 것으로, 17세기에서 18세기로 넘어가는 여류 문학사의 맥을 형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