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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관직[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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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덕문화원 작성일19-04-16 10:56 조회6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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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on_arrow.gif 조선시대의 관직[2]

◎ 관직 관련 상식 - 02

 

致仕(치사)와 奉朝賀(봉조하)

 

옛날에는 당상관 정2품 이상의 관원으로서 나이 70세가 되면 치사를 허락했는데, 치사란 벼슬에서 물러나는 것을 말한다. 이들에겐 봉조하 란 칭호를 주고 종신토록 그 품계에 알맞게 봉록을 주었고, 국가적인 의식에 조복을 입고 참여하게 했다. 봉조하의 정원은 처음엔 15명으로 정했었으나 뒤에는 일정한 정원을 두지 않았다. 이런 제도는 예종 때에 처음 시행되었는데, 처음으로 봉조하가 된 사람은 홍달손·최유·안경손·이몽가·유숙·유사·배맹달·정수충·한서구·송익손·유한·함치·한보·윤찬·한치형 등이었다.

 

궤 장

그러나 나이 70세가 넘고서도 정사 때문에 치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사람 중에서도 정1품 관에게는 임금이 특별히 궤장을 하사했는데,  "궤"는 팔을 괴고 몸을 기대는 안석이고, "장"은 지팡이를 말한다. 궤장을 하사할 때는 임금이 친히 잔치를 베풀어주었는데 이를 궤장연이라 했다. 그래서 입기사, 봉조하니 사궤장하는 것은 큰 영예로 여겨졌으므로 족보에까지 그 사실을 기록하는 것이다.

 

諡 號(시호)

종친과 문·무관 중에서 정2품 이상의 실직을 지낸 사람이 죽으면 諡號(시호)를 주었는데 후에는 범위가 확대되어 제학이나 유현·절신 등은 정2품이 못되어도 시호를 주었다. 시호를 정하는 절차는 해당자의 자손이나 관계자들이 죽은이의 행장을 적은 시장을 예조에 제출하면 예조에서 이를 심의한 뒤 봉상사를 거쳐 홍문관에 보내어 시호를 정하게 된다. 시호를 정하는 법으로는 주공시법이니 춘추시법이니 하여 중국 고대 이래의 시법이 많이 원용되었던 듯하다. 시호에 사용된 글자는 文(문)·忠(충)·貞(정)·恭(공)·襄(양)·靖(정)·孝(효)·莊(장)·安(안)·景(경)·翼(익)·武(무)·敬(경) 등 120자인데, 한자 한자마다 정의가 있어서 생전의 행적에 맞는 글자를 조합하여 2자로 만들고 시호 아래 公(공)자를 붙이어 부른다.

시호에 사용된 글자 중 대표적인 글자와 그 정의의 대표적인 것을 간추려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文]經天緯地 道德博聞 博學好文 勤學好文 博學多識 慈惠愛民 忠言愛人 剛柔相濟 愍民惠禮
임시修德來遠 施而中禮 修治班制
[문]경천위지 도덕박문 박학호문 근학호문 박학다식 자혜애민 충언애인 강유상제 민민혜예
임시수덕래원 시이중예 수치반제
[忠]危身奉上 事君盡節 慮國忘家 推賢盡忠 廉方公正 險不避難 臨亂不忘國 臨患不忘國
[충]위신봉상 사군진절 여국망가 추현진충 염방공정 험불피난 임난불망국 임환불망국
[貞]淸白守節 淸白自守 直道不撓 不隱無屈 大慮克就
[정]청백수절 청백자수 직도불요 불은무굴 대려극취
[襄]因事有功 有功征伐 甲胄有勞  地有德
[양]인사유공 유공정벌 갑주유로 벽지유덕
[靖]寬樂令終 恭己安民 恭己鮮言 柔德女衆 仕不躁進 正容寡言
[정]관락령종 공기안민 공기선언 유덕여중 사불조진 정용과언
[良]溫良好樂 中心敬事 慈仁愛人
[양]온양호락 중심경사 자인애인

 

 

 

유현들의 시호
  임금의 특별한 교시가 있을 때는 자손의 시장을 기다리지 않고 홍문관과 봉상사에서 직접 시호를 의정했는데, 이는 퇴계 이황에게 문순 이란 시호를 내려 준 데서 비롯했다. 정2품 벼슬이 못되었으면서 시호를 추증받은 유현으로는 김굉필(文敬公)·정여창(文獻公)·서경덕(文康公)·조광조(文正公)·김장생(文元公)등이다.
무인의 시호
  무인의 시호로는 충무(忠武)가 가장 영예로 간주하며, 충무공의 시호는 이순신장군 외에도 조영무·남이·귀성군 준·정충신·김시민·김응하·이수일·구인후 등 충무공이 8명이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