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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과거제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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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덕문화원 작성일19-04-16 11:07 조회37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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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on_arrow.gif 조선시대의 과거제도[1]

 

유 래

 

 각도 감영에서 행하는 향시나 중앙에서 행하는 생진과 초시를 조흘강이라 한다. 이 조흘강에 급제하면 조흘첩을 주는데, 이것이 있어야 생진과에 응시할 자격이 부여된다. 이 조흘강을 초시라 하며 여기에 급제하면 이초시·김초시 라고 불러준다. 이리하여 각 지방에서 조흘강에 급제한 사람들이 모여들어 4년만에 한번씩 과거를 보이는데, 4년 1시를 식년시라고 하며 子(자)·午(오)·卯(묘)·酉(유)년에만 보는 것이다. 그리하여 생원과에서는 경서를 암송하게 하고 또 거기에 대한 뜻을 물어보는 시험이다. 시험관에는 상시(당시 판서급), 부시(당시 참판급)가 있어 응시자를 불러서 열번이나 암송을 들어보기도 하고 잘 외우면 通(통)·略(약)·粗(조)·不通(불통)의 네 가지로 나누어 通은 2점, 略은 1점, 粗는 반점, 不通은 영점으로 하여 총14점 반 이상에 달하는 자를 급제로 한다. 이 생원과는 경서를 외우게 함으로서 강경과 또는 치경과라고도 부른다. 진사과는 제술과 라고도 하며 본과 시험에서 시험관이 임석하여 감찰들로 하여금 차작차필들을 못하게 엄중히 단속하는 한편 제목을 내고 운자를 정하여 시를 짓게하여 시간을 엄수토록 명한다. 이에 응모자들은 각자 준비된 필묵으로 시를 지어 장지에 18수를 써서 봉하여 시험관에게 내고 퇴장한다. 그러면 시험관들은 그 시축을 모아서 우선 글만 잘 지었으면 上上, 上中, 上下, 二上, 二中, 二下, 三上, 三中, 下下 아홉 단계로 정한 뒤 上上은 9점∼下下는 1점으로 등분하여 채점한다. 대개 二下(4점)까지를 택하여 급제로 정했다. 이런 식으로 생원, 진사 각 100명씩, 200명을 뽑아서 발표하였으며 급제자의 발표를 방이라 하였다. 이 생진과에 급제한 자 가운데 대과 즉 문과에 응시하려는 자는 성균관에 입학을 허가하였다. 4년에 한번씩 100명씩의 생원과 진사를 배출하였던 것이다. 그 다음 대과(문과)에 응시하려면 우선 대과 초시에 급제하여야 하는 것인데 문과 초시에서는 관시(성균관 사람)에서 50명 한성시에서 40명, 향시로는 경기에서 20명, 충청·전라도에서 각 25명, 경상도에서 30명, 강원·평안도에서 각15명, 황해·함경도에서 각 10명씩을 뽑아 대과에 응시할 자격을 주었다.

이렇게 생진과에 급제한 사람으로 성균관을 거치지 않고도 대과에 응시할 자격을 부여한 것 때문에 총240명이 대과에 응시할 수 있게 인원을 정하는 것이었다. 대과에 제1차 시험을 초장이라고 하는데 거기에서 경서를 암송시키는 것이 마치 생원과에서 시험하는 것과 동일하다. 제2차 시험을 중장이라 하는데 거기에서는 시부를 짓는데 마치 진사과에서 행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경서암송에 자신있는 사람이 제1차 시험인 초장에 응시하고 시부 짓는데 자신있는 사람은 중장에 응시하면 되는 것이다. 대개는 초장에 응시하여 낙제한 사람이 중장에 응시하여 급제를 노리는 것으로 제1차 시험인 초장에서 16명, 제2차 시험인 중장에 16명, 그리고 양장에서 성적이 우수하였으나 합격권 내에 들지 못한 사람을 양장 시험관이 회합하여 선정하는 것인데 이것을 생획 급제라 한다.  그리하여 대과 급제자 33명을 선정하는 것이다. 대과 급제자 인원에 대하여는 아무리 성적이 좋다 해도 33명 이상은 뽑지 않는 것이 철칙으로 되어 있으나 성적이 나쁠 때에는 그 이하 30명 혹은 28명 이렇게 33명보다 적게 뽑을 수 있었다. 이렇게 대과 급제자가 선정이 되면 최후로 전시라는 것이 있었다. 전시에는 왕이 친히 임석하는 것이지만 최후의 시험이라는 뜻이다. 거기에서는 간단하게 대책이나 表(표)·箋(전)·箴(잠)·頌(송)·制(제)·詔(조) 중 어떤 것이나 1편만 짓게 하는 것인데 지금으로 말하면 논문을 짓게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 전시의 결과를 보아 33명의 등급을 갑·을·병 3등급으로 나누어 제일 잘 지은 사람이 갑이라 하여 3명, 다음은 을이라 하여 7명, 다음은 병이라 하며 23명으로 정하는데 이것을 갑·을·병 3과라 한다. 제일 글을 잘 지은이로 전시에서 갑과에 급제한 첫째 되는 사람을 장원랑이라 하고 둘째 되는 사람을 방안랑 이라 하며 셋째 되는 사람을 탐화랑 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생진과에 급제한 사람에게는 그 증서를 백지에다 써서 주는 까닭에 백패라 하였고, 대과에 급제하면 홍색지에 써 주었음으로 홍패라 하였다. 생진과 초시(조흘강)에서 생원과·진사과·대과응시 자격시험인 대과초시(관시향시) 초장(제1차시) 중장(제2차시)전시까지 장원으로 급제한 재사로 암송과 뜻에 잘못이 없어 7통을 하고 글짓기에도 上上으로 당선된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은 왕이 불러 암행어사로 삼았고 승진도 빨랐다. 그러므로 과거에 응시하는 자는 장원급제를 하고자 애를 쓰는 것이다. 이상은 문사들에게 행하는 시험이고 다음은 무인 즉 군인에 대한 시험으로 무과라는 것이 있는데, 이 역시 初試(초시),  試(핵), 殿試(전시)의 구별이 있다.  

 

 

 

무과초시도 문과초시와 같은 중앙과 각도 감영에서 행하는데, 중앙(경기 포함)에서 70명 경상도에서 30명, 충청·전라도에서 각 15명, 강원·황해·함경·평안도에서 각10명씩 선발하여 190명이 중앙에서 행하는 핵시에 응시하여 다시 그 중에서 28명을 뽑아 전시에 응시토록 하여 활(弓)을 쏘게 하는데, 제일 잘 쏘는 무사3명을 추려 갑과에 급제케 하고 그중 첫째가는 무사를 장원랑 이라 하고 둘째가는 무사를 방안랑 이라 하고 셋째 가는 무사를 탐화랑 이라 함은 문과나 다름없다. 그 다음 을과에 5명, 병과에 20명을 각각 선정한다. 이상 문과 무과는 소위 양반집 자제들에게 한하여 응시할 자격을 부여하는 까닭에 중인 이하 일반인은 응시해 볼 생각조차 갖지 못했던 것이다.  그 다음 잡과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중인들에게 보이는 과거라 하겠다. 거기에 외국어를 배워 가지고 역관 노릇을 하는 역과라는 것이 있어 그것도 초시에 한자(중국어)23명, 몽학(몽고어)·왜학(일본어)·여진학(만주어)등은 각각 4명씩을 뽑아 다시 복시에 가서 한학(중국어 역관) 13명 그 다음 몽학(몽고어 역관)·왜학(일본어 역관)·여진학(만주어 역관) 등은 각각 2명씩을 선발하였다. 그리하여 이들은 문과 대관의 수행원으로서 통역관 노릇을 하였다. 그 다음 의과, 산과, 음양과, 율과 등이 있었는데 그것도 모두 초시, 복시의 구분이 있었다. 이러한 모든 과거(생진과, 대과, 잡과)가 4년만에 한번씩 子, 午, 卯, 酉년에 식년 과거가 정기적으로 행하여졌다.

그러나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에는 특별히 증광과 라든지 또는 별시, 왕이 성균관에 행차하였다가 거기에서 성균관 학생들에게 시험을 보이는 알성과라는 것이 있으니 이는 식년 외에 치르는 과거이다. 이 성균관에 왕이 행차하여 치르는 과거에 급제하는 것을 알성급제라 하여 과거 중에 가장 영광스러운 급제로서 여기에서 장원급제하면 대개 암행어사가 되는 것이 통례로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