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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류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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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덕문화원 작성일19-04-16 17:10 조회13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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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on_arrow.gif옥류각(玉溜閣)
  * 분   류 : 시 유형문화재 제7호
* 소재지 : 대전광역시 대덕구 비래동 산1-11
* 수   량 : 1동
* 구
   조 : 정면3칸, 측면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 집.
* 재
   료 : 목조
* 연
   대 : 1639년(인조17)
* 개
   요 :   조선 숙종때 예조판서였던 제월당 송규렴(霽月堂宋奎濂:1630~1709)선생등이 숙종19년(1693)에 동춘 송준길 선생이 강학하던 곳을 기념하여 세운 누각이다. 송준길이 읊은 시 가운데 “층층 바위에 날리는 옥 같은 물방울(玉溜)”이란 시구(詩句)를 따서 건물 이름으로 삼았다. 건물의 크기는 앞면 3칸, 옆면 2칸에 팔작지붕을 올렸고, 2층 왼족(동쪽)에 드린 방 아래로 계곡물이 흐르게 하였다. 옥류각 앞쪽으로 오르는 길 옆 큰 바위에는 송준길이 썼다는 ‘초연물외(超然勿外)’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옥오재 송상기(玉吾齋 宋相琦:1657~1732)가 지은 샹량문이 있다.

016.jpgblank.gif옥류각의 평면을 보면 대청 2칸, 방 1칸으로 되어 있는데 1979년에 편찬된 '은진송씨 세적록'에 실린 이 누각을 보면 3칸 전부 대청으로 되어 있어 좌측의 방 1칸은 최근에 꾸며진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옥류각으로 들어서는 왼쪽의 암벽 아래 부분에 동촌선생의 친필로 '초연물외(超然物外)'란 글자가 새겨져 있다. '무위'는 불가(佛家)에서도 시간에 따라 변하는 생멸 그것을 초월하는 존재로 보는 것이다. 이러한 지리환경과 자연환경이 우리 건축을 형성해온 배경이 되었다. 이 옥류각은 동춘선생의 사후에도 그의 문인들이 선생의 유덕을 경모하는 곳으로 계속 소중히 여겨왔다. 이는 후인들이 남긴 많은 제영에서도 알 수 있다. 정면 세칸 측면 두칸의 팔작지붕에 5량집 구조이다. 평면의 전체는 여섯 칸인데 서측 입구의 네칸은 누마루이고 동쪽 두 칸은 사방에 문을 달아 방으로 꾸몄다. 계곡의 유수(流水)를 누각 아래로 흘러 보내면서 건물이 배치되어 있는데 높이가 다른 여러 가지 모양의 주초석을 유수암반 전후 좌우에 놓고 그 위에 루각을 세웠다.

건물을 세우기 쉬운 평지에 만들지 않고 왜 물이 흐르는 울퉁불퉁한 계곡 위에 세웠을까. 흔히 한국 건축은 자연과 잘 어울리는 것이 특징이라고 말한다. 자연과 잘 어울린다는 의미를 바로 이 옥류각이 극단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다. 자연 경관을 조금도 해치지 않고, 건물이 앉을 자리만 다듬어 세워 두었다. 물론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이러한 건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자연과의 조화라는 의미로 볼 때 중국이나 일본의 자연관은 우리와 전혀 다르다. 중국에서 건축과 자연의 어울림은 강남지방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중국 남쪽지방인 강소성 소주에 가면 유명한 사대부 주택이 많이 남아있으니 졸종원(拙政園), 유원(留園), 사자림(獅子林) 등이 대표적인 사대부 주택이다. 그곳에는 주택과 정원 두고 있다. 이 정원에는 모든 것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았다. 연못, 섬, 계곡, 수로, 산, 언덕, 다리, 정자, 나무 등 인위적인 것이 아닌 게 없다. 그런데 이렇게 만든 정원이 마치 자연스럽게 생긴 것과 진배없이 만들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정원에는 시간개념도 들어있다. 즉, 정원을 구획하여 각 구획마다 주제를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붙인다. 겨울 정원에 들어가면 여름에 보아도 겨울을 느끼게 하고, 여름정원에 들어가면, 겨울에 가도 여름을 느끼게 한다. 자연을 인위적으로 만들어주는 중국 건축의 자연관이다. 일본 교토에 대덕사(大德寺) 대선원(大仙院) 내에는 자연현상을 가장 함축하여 표현해 둔 정원이 있다. 연못의 섬은 곡선이 많은 수석 몇 개를 놓음으로서 대신하고, 연못의 물은 작은 돌멩이를 깔고 파도문양을 그어 놓는다. 서로 색깔이 다른 자갈을 문양에 따라 깔기도 한다. 이 작은 돌멩이는 바다를 상징하기도 한다. 나무는 극히 성장을 억제하여 바위에 심어둔다. 넣는 방법과 색깔, 심는 방향과 종류에 따라 음과 양을 상징하고, 오행을 표현하고 있다. 누구나 한눈에 보아도 인위적으로 만든 것임을 알 수 있다. 자연현상을 표현하되 가장 함축된 기호로 생각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과 일본 건축의 자연관에 비해 우리의 자연관은 어떤가?. 우리는 자연의 현상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그 자연에 인간의 심성을 포함시키려는 것이다. 옥류각이 자연스런 계곡, 생긴 그대로의 경관, 나무 한 그루도 해치지 않고 경관 속에 비집고 들어가 집을 짓는 것에서 우리 건축의 자연관을 읽을 수 있다. 자연 속에 집을 짓고, 집속에 자연을 끌어들이는 개념이 우리 건축의 자연관이다.

옥류각의 구조를 살펴보자. 높이가 다른 주초석을 유수(流水)암반에 줄을 맞춰 놓고 그 위에 둥근 두리기둥을 세웠다. 마루바닥을 중심으로 아래는 두리기둥, 위에는 방형 모기둥을 세웠다. 기둥머리에서는 창방과 대들보를 '十'자로 맞춰 끼웠다. 이를 사개맞춤이라 한다. 이 대들보를 받치고 있는 양봉(樑棒)은 안쪽에서는 경사지게 하고 밖으로는 새 날개 모양의 익공 모습을 하고있다. 창방 밑에는 창방 받침을 하나 더 대어서 보강해 주었다. 누마루는 우물마루로 짜고 사방에 난간 대신 머름을 대었다.

방과 마루 사이는 띠살문 4분합 들어열개를 달았다. 그 외 다른 쪽의 문은 모두 2분합 여닫이문을 달았다. 누가 그려 걸었는지 방 앞에 달마상이 있다. 측면 가운데 기둥과 대들보 사이는 충량을 걸었는데 충량 위의 서까래가 모이는 합각부분에는 우물천정을 하였고 그 외 다른 부분은 모두 서까래를 노출시킨 연등천정으로 하였다. 대들보 위에 종보를 얹고 동자기둥대신에 파련대공으로 종도리를 받쳤다. 이 옥류각은 한국건축에서 흔치않은 측면 출입으로 되어있다. 비교적 격식을 갖추지 않아도 되는 누각건축인 때문인 듯 싶다. 옥류각 4면에는 동춘당, 제월당, 삼연(三淵), 도암(陶庵)의 명시가 현판으로 걸려있다.

인간이 만든 건축과 자연이 만든 경관이 한데 어울려 아주 훌륭한 조화를 보여주고 있다. 이 옥류각을 바라보면 마치 '자연 속에 집'이 있는 것 같고 이 옥류각을 들어서면 또한 '집 속에 자연'이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을 갖게 한다. 우리의 선조들은 이와 같이 집은 자연처럼, 자연은 집처럼 여겼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