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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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덕문화원 작성일19-04-16 17:14 조회1,10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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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 류 : 시 문화재 자료 제9호 * 소재지 : 대전광역시 대덕구 미호동 188 * 수 량 : 1동 * 구 조 : 정면3칸, 측면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 집. * 재 료 : 목조 * 연 대 : 1701년(숙종27) * 개 요 : 취백정은 제월당 송규렴이 1701년 (숙종27)에 강 학처로써 금강(현,대청호 수로) 연안의 미호에 세웠다. 송규렴은 숙종 즉위년 이래 제월당에 은거하며 후진 양성과 학문 연마에 전념하다가 숙종 6년 경신 대출척 이후 김석주의 권유로 다시 조정에 들어갔다. 각 조의 참판을 두루 거치고 홍문관 부제학, 성균관 대사성, 대사간을 맡았고 외직으로는 안변 부사와 충청감사를 지냈으며 다시 예조로 돌아왔는데 그때는 송시열이 왕세자(경종)의 책봉이 시기 상조라 반대 상소를 올렸다가 유배를 갔고 이어 사약을 받아 별세하는 커다란 정변의 해였던 숙종 15년(1689)이었다. 송규렴은 마침 태조의 영정을 받들고 전주에 갔다오던 참이었다. 그는 이에 벼슬을 버리고 재차 향리인 회덕에 돌아가 다시 학문에만 힘을 쏟았고 만년의 또 다른 강학처로서 이 정을 세웠던 것이다. 근 70세 되던 해인 1699년(숙종25)에 기사에 들어간 뒤 지중추부사가 되었고 숭정대부의 품계를 받기도 하였다. 그 후 정조임금이 친필로 '사호각'이라는 현판을 내렸는데 그 뜻은 중국의 신선이 넷이 살았다 해서 지어진 '상산사호'(商山四皓) 고사에서 따왔을 것이다. 대개 상량문은 당주 스스로가 짓는 것보다 다른 사람이 지어주는 경우가 많은데 이 건물의 상량문은 제월당 스스로 지은 것이다. 사호각 현판은 광복 후 소실되었다. 취백정은 원래 미호서원의 부속채로 세웠으나 미호서원은 1729년(영조5) 송인명등 주장에 따라 다시 훼철되고 현재는 취백정만 남아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