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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석문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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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덕문화원 작성일19-04-16 17:47 조회41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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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on_arrow.gif금석문 개요
 금석문이란 글자 그대로 금속이나 돌에다 새긴 글씨, 또는 그림을 말한다. 이 금석문을 보고 시대와 문화의 발달을 고증할 수 있는 바, 금석문은 그 당시의 사람의 솜씨에 의하여 직접 이루어진 것이므로 가장 정확하고 진실한 역사적 자료가 된다고 보는 것이다. 그 자료면에 있어서 고증된 것으로는 중국의 은(殷)나라 때부터 청동기로 이어지는 제기(祭器)에 새겨진 명문(銘文)이 있고, 주나라에서 새겨진 종정문(鐘鼎文) 등이 전하는가 하면, 우리나라에서 발표된 바 있는 미수 허목(許穆 : 1595∼1682)이 죽국에 사신으로 갔을 때 죽국에서 3,700년만에 지하에서 발굴된 하우(夏禹)의 형산비(衡山碑)가 있는 것을 알아내어 그 글씨체로 77자를 집자(集字)하여 우리나라에 평수토비(平水土碑)를 만들어 지금 강원도 삼척 옛 죽관도(竹串島)에 동해송(東海頌)비와 나란히 세워져 있으며, 그 사실은 허목이 쓴 편지에 권하니 그 편지는 명지대학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실증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금석문은 청동기시대에 문자를 사용한 자료가 아직 발견되지 않았으나 1970년대에 대전의 서구 괴정동 출토된 청동기 유물에서 나타난 농경지에서 따비로 전장을 일구는 모습의 그림으로 보아 농경 문화를 알 수 있고, 부여 지방에서 발굴된 금동향로에 새겨진 악기 타는 악사 모습과 새, 짐승이 함께 어우러진 화합의 상은 우리나라 금석그림중 문화유산의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이러한 금석문이 백제, 신라를 거쳐 고려에서 조선에 이르는 동안 사적비나 묘비, 선정비, 효자비, 불망비, 애각 등 다각도로 새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기에 우리나라에 산재한 금석문이 두드러지게 학술적인 연구대상이 되는 것도 일반이 다 알고 있는 현실에서 대전의 유교적인 선비문화의 일부인 금석문중에서 특히 대덕구는 옛 회덕현의 치소가 있었던 고장이기에 선정비와 불망비 등이 많이 남아 있고, 그밖에 애각, 묘비, 신도비 등도 다수 전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