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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내동 뒷골 거리(장승)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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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덕문화원 작성일19-04-23 16:13 조회13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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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on_arrow.gif읍내동 뒷골 거리(장승)제
  * 분    류 : 민속신앙
* 구    분 : 거리제(장승제)
* 소재지 : 대전광역시 대덕구 읍내동 회덕1동사무소 뒤
* 수    량 : 2기(남,여장승)
* 규    모 : 남장승 높이145㎝, 여장승 높이72㎝
* 재    료 : 화강암
* 연    대 : 1920년대
* 개    요 : 뒷골 장승은 읍내동 회덕 1동사무소 뒤쪽, 좁다란 길목에138.jpg 남·녀장승이 나란히 서 있는데, 이 마을에 장승이 세워진 것은 1920년대로 약 80여년 전이다. 그 이전에는 장승 대신 탑을 모셨는데, 큰 홍수로 탑이 떠내려가 버려 지금의 장승을 깎아 세우게 되었고, 장승을 다듬을 때는 마을의 솜씨있는 사람이 얼굴 부분을 조각하고, 가슴에 명문은 송만영 이란 사람이 새겼다고 한다. 남장승의 크기는 높이 145㎝, 몸통둘레 154㎝, 얼굴길이 70㎝, 얼굴폭 42㎝, 눈 11㎝, 코13㎝, 입 14㎝, 귀15㎝이고, 여장승은 높이 72㎝, 몸통둘레 136㎝, 얼굴길이 35㎝, 얼굴폭 30㎝, 눈 7㎝, 코 12㎝, 입 11㎝, 귀 10㎝ 이다.
138-1.jpg  남장승은 화강암으로 상부에 얼굴을 새기고 가슴에는 '천하대장군' 이라 명문을 새겼다. 남장승은 마음씨 좋은 이웃 아저씨 모습이고 눈은 툭 불거진 퉁방울 형상으로 양각하였으며, 입은 헤벌어진 모습으로 음각하여 웃고 있는 표정이지만 부리부리한 눈매에 근엄성을 잃지 않고 있다. 머리는 고깔 형태로 깎아 내렸다. 여장승은 화강암으로, 상부에 얼굴을 깎고 가슴에는 '지하대장군' 이라는 명문을 새겨 넣었는데, 명문을 세로로 내려쓰지 않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새겼는데 여장승의 몸체길이가 작기 때문으로 보인다. 여장승의 모습은 환하게 웃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인데, 눈과 코, 눈썹은 양각으로, 입과 귀는 음각으로 조각하였다.
뒷골 마을 사람들은 이곳에서 매년 정월 열나흩날에 마을의 무사를 비는 거리제(장승제)를 지낸다. 언제부터 거리제를 지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동네가 생기면서 시작했던 것으로 마을 사람들은 추정하고 있다. 거리제는 음력 정월 초삼일날 제비의 걸립으로부터 시작된다. 제를 지내기 일주일 전에 제관, 축관, 유사를 선정하는데 나이가 지긋하고 부정이 없는 깨끗한 사람으로 선정한다. 제관으로 선정되면 매일 찬물로 목욕재계하고 부부행위를 멀리하며 가급적 외부출입을 삼가한다. 또한 담배도 삼가하고 대문에는 왼새끼로 만든 금줄을 쳐서 부정한 사람의 출입을 막는다. 제물은 백설기 3되 3홉, 삼색실과, 북어 한마리, 술, 나물 3가지 등을 쓰며, 제물을 구입 할 때는 값을 깎거나 흥정해서도 안되고 음식을 준비하면서 맛을 보아도 안된다. 제를 지내기 3일전에는 유사집에 금줄을 치고 황토를 펴서 부정을 막고 장승 앞에도 금줄을 치고 황토 세 무더기씩 놓는다. 당일 해가 지고 어두워지면 풍물을 쳐서 액운을 쫒고 마을 사람들에게 거리제의 시작을 알린다. 제물 진설은 여장승 앞에만 하고 남장승 앞에는 하지 않는다. 제의순서는 일반 기제사와 유사하며 독축을 한 후 소지를 올리는데 소지는 만동소지, 제관의 소지, 호당소지의 순으로 올려준다. 호당소지는 걸립에 참여한 집 중심으로 올린다. 제를 마치면 풍물놀이라든가 돌싸움 등의 행사는 없고 다만 음복하고 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