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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족부락이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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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덕문화원 작성일19-04-25 11:18 조회128회 댓글0건

본문

세거성씨

  • 대덕구에 세거하였던 성씨에 대하여서 알아보는 방법은 문헌에 의한 방법에 크게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 현지조사에서는 주로 양반들이 세거하였던 동족마을에 대하여서만 조사가 가능하고, 동족마을 내에서도 양반들의 세거 실태만이 파악될 뿐 평민들의 세거 실태는 잘 파악되지 않았다. 이러한 이유로는 평민들은 토지소유가 많지 않고 소작하는 경우가 많아서 지역에 정착력이 취약하였고, 이러한 까닭으로 사회변화에 민감하여 입향과 출향이 빈번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회덕에 세거하였던 세거성씨는 양반들을 중심으로 파악하는 방법밖에 없다.


  • 문헌을 통해서 회덕지방에 세거하였던 사족들의 성관(姓官)을 파악하여 보기로 하겠다. 가장 먼저 회덕의 토성에 대하여 언급한 기록은 {세종실록지리지}이다. {세종실록지리지} 기록에는
회덕의 토성(土姓)이 4이었는데 황(黃)·임(任)·이(李)·방(房)이요, 망성(亡姓)이 1이니, 곽(郭)이요, 정민역(貞民驛)의 속성(續姓)이 2이니, 배(裵)·김(金)이다.
라 하여 조선전기 회덕현의 세거성씨에 대하여 언급되어 있다. 즉 회덕의 토성(土姓)은 황(黃)·임(任)·이(李)·방(房) 등 4개의 성씨였다. 여기서 토성이라 함은 고려초 성씨의 분정시 그곳에 토착하면서 지배적 위치에 있었던 유력한 씨족, 또는 그곳을 본관으로 하면서 읍사(邑司)를 구성하였던 성씨집단을 지칭한다. 따라서 고려말 조선초 회덕지방의 유력한 토착 성씨는 황(黃)·임(任)·이(李)·방(房)씨 등이었음 알 수 있다. 그리고 회덕의 망성(亡姓)은 곽(郭)씨이었다. 여기서 망성이라 함은 종래의 토성이 소멸되거나 타지로 이주하여 {세종실록지리지} 작성을 위하여 성씨들을 파악할 당시에는 그 곳에 없는 토성을 가르키는 것이다. 따라서 곽씨는 조선 초에는 회덕에 세거하였던 성씨이었으나 그후 언제가 소멸되어 {세종실록지리지} 작성 시에는 회덕에 소멸된 성씨가 되었다. 그리고 정민역의 속성은 배(裵)씨와 김(金)씨이었다. 그런데 속성이라 함은 종래에 없는 성씨가 관(關)에 추가로 등재된 성씨를 가르킨다. 따라서 {세종실록지리지} 편찬시 회덕에는 배씨와 김씨가 새롭게 포함되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세종실록지리지}가 간행될 당시 회덕의 세거성씨는 황(黃)·임(任)·이(李)·방(房)·배(裵)·김(金) 등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후 회덕의 세거성씨는 1530년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이(李)·임(任)·황(黃)·방(方)·곽(郭), 배(裵)·김(金)
라 하여 변화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즉 16세기 초반 회덕의 세거성씨는 이(李)·임(任)·황(黃)·방(方)·곽(郭)씨 와 배(裵)·김(金) 등이었다. 이는 {세종실록지리지} 편찬 당시에는 망성이었던 곽씨가 다시 세거성씨로 파악된 점만이 다르다. 그리고 1760년대 간행된 {여지도서}에도 큰 변화는 없다. 이런 점에서 보면 회덕지방은 조선전기에는 세거하였던 사족 층에 큰 변화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조선후기 회덕의 세거성씨에 대하여 잘 보여주는 것은 영조 대에 간행된 것으로 보이는 {회덕읍지}이다. {회덕읍지}의 성씨 조에는
 
본현(本縣) : 이씨(李氏)·임씨(任氏)·황씨(黃氏)·방씨(方氏)·곽씨(郭氏)· 배씨(裵氏)·김씨(金氏)(모두 驛이 있다.)
신증(新增) : 우거(寓居)한 성씨(姓氏)로는 송씨(宋氏)·김씨(金氏)·이씨(李氏)· 조씨(趙氏)·정씨(鄭氏)·강씨(姜氏)·연씨(延氏)·박씨(朴氏)· 노씨(盧氏)·백씨(白氏)·변씨(邊氏)·최씨(崔氏)·전씨(全氏)· 권씨(權氏)·홍씨(洪氏)·임씨(林氏)·방씨(房氏)·장씨(張氏)
  • 라 하여 본현에 5개 성씨와 역성(驛姓)이 2개 성씨 등 모두 7개 성씨가 있고, 신증으로 18개 성씨를 기록하고 있다. 이는 회덕의 경우 조선후기에 이르면 대거 새로운 사족들이 입향하여 회덕에 세거하기 시작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신증으로 {회덕읍지}에 새롭게 파악된 18개의 성씨들의 본관을 구체적으로 파악하여 보면, 본현에 나타난 이씨는 경주이씨, 임씨는 풍천임씨, 황씨는 회덕황씨, 방씨는 본관미상, 곽씨는 현풍곽씨, 배씨는 본관미상, 김씨는 경주김씨이고 신증에 기록된 송씨는 은진송씨, 김씨는 경주김씨, 이씨는 연안이씨, 조씨는 임천조씨, 정씨는 동래정씨, 강씨는 진주강씨, 연씨는 곡산연씨, 박씨는 반남(혹은 순천이나 충주)박씨, 노씨는 신창노씨, 백씨는 수원백씨, 변씨는 원주변씨, 최씨는 전주(혹은 경주)최씨, 전씨는 옥천전씨, 권씨는 안동권씨, 홍씨는 남양홍씨, 임씨는 보안임씨, 방(房)씨는 본관미상, 장씨 (인동)장씨 등이었다.


  • {회덕읍지}에 신증으로 새로 기록된 18개의 세거성씨들의 입향 시기를 대략적으로 살펴보면 은진송씨 15세기, 경주김씨 16세기, 연안이씨 16세기, 임천조씨 미상, 동래정씨 16세기, 진주강씨 15세기, 곡산연씨 15세기, 반남박씨 16세기, 원주변씨 15세기, 옥천전씨 17세, 안동권씨 16세기 등에 해당된다. 따라서 이들 신증으로 기록된 성씨들이 조선 중·후기에 회덕에 입향하여 {회덕읍지}에 신증으로 등재된 것이 아닌 것만은 틀림이 없다. 그런데 궁금한 것은 {동국여지승람}과 {여지도서}의 성씨 조에서는 이들 성씨들이 왜 등재되어 있지 않았는가 이며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다. 어째든 조선후기 {회덕읍지}가 간행될 당시 회덕의 대표적인 세거 성씨는 본현 5개성, 속성2, 신증 18개성 등 모두 합하여 25개의 성씨가 세거한 것을 알 수 있다.


  • 세거성씨와 관련하여 조선후기 회덕에 세거하였던 사족들의 실태를 가장 보여주는 것은 「회덕향안」이라 할 수 있다. 회덕「향안」과 「청금록」에 등재된 각성과 그 입록자의 숫자를 보면 다음과 같다.

향안원

106

36

30

20

10

10

9

8

7

5

5

5

4

1

 

향안상

182

47

33

26

19

15

15

8

7

6

5

4

3

1

1

 

향안하

42

17

14

14

13

4

4

4

2

2

2

2

1

1

 

 

향안속

324

90

54

53

48

30

29

24

13

10

8

6

6

5

4

2

2

2

1

1

 

청금록 상

166

39

22

22

21

17

12

9

5

5

4

4

3

2

2

1

1

1

1

1

1

1

1

1

1

 

청금록 하

270

42

28

27

26

15

9

6

5

5

4

4

4

3

2

2

2

1

1

  • 이러한 기록을 통해 회덕 지방에서 세거하던 성씨 중, 주도하던 성씨가 어느 성씨였으며, 또한 어떤 성씨들이 회덕 지방에 세거하여 왔는지를 파악 할 수 있다. 즉 조선후기 「향안」이 작성되던 시기의 17세기에는 은진송씨와 진주강씨 가장 족세가 우세하였으며, 「청금록」이 작성되던 시기에는 은진송씨·경주이씨 등의 족세가 우세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조선후기 회덕의 세거 성씨들이 『청금록 상』에 가장 많은 성씨를 등재하고 있는데, {청금록 상}에 의하면 모두 25개 성씨가 등재되어있다. {회덕읍지}에는 등재되어 있지 않은 성씨로 {청금록 상}에 등재된 성씨는 남원양씨·윤(尹)·변(卞)·신(申)·지(池)·오(吳)·서(徐)·남(南)·류(柳)·안(安)·나(羅) 등 11개 성씨이다. 따라서 {회덕읍지}와 {청금록 상}에 등재된 성씨들을 합치면 36개 정도의 성씨가 회덕 지방에 세거하던 성씨라 할 수 있다. 그런데 1782년 이만운에 의해 증보된 {증보문헌비고} 씨족고에 회덕의 성씨로는
회덕권씨·회덕김씨·회덕노씨·회덕문씨·회덕민씨·회덕방씨·회덕석씨·회덕송씨·회덕신씨·회덕양씨·
회덕우씨·회덕원씨·회덕유씨·회덕임씨·회덕장씨·회덕정씨·회덕주씨·회덕최씨·회덕하씨·회덕황씨
에서와 같이 20개 성씨이다. 그러나 {증보문헌비고}의 [씨족]고는 당시 회덕 지방의 씨족의 실정을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 왜냐하면 당시 사족들의 상황을 가장 정확하게 알려주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 {회덕향안}에 등재되어 있는 성씨 중 상당수가 빠져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진주강씨·청주한씨·원주변씨·순천박씨·충주박씨·곡산연씨 등 회덕을 대표하는 사족의 성관들이 빠져있다. 이러한 사실은 {증보문헌비고} [씨족]고가 당시 실정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못함을 보여준다 생각된다.

어째든 조선후기 회덕에 세거하였던 성씨들은 {향안}과 {청금록} 그리고 『회덕읍지』에 올라있는 성관들이 조선후기 회덕 지방을 대표하는 성씨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