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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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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덕문화원 작성일19-04-25 11:23 조회16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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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on_arrow.gif오정동(梧井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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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동의 입지와 자연환경
  • 오정동은 지리적으로 대덕구 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용전동과 홍도동, 남쪽은 삼성동과 중촌동, 서쪽은 삼천동과 둔산동, 북쪽은 대화동과 중리동에 인접해 있는 동(洞)이다. 오정동의 자연마을로는 뜸뜸이·노촌·주막거리·새뜸(봉촌)·오물·병원뜸·신호장뜸·안골(내동)·양지말·말랭이(날맹이) 등의 마을이 띄엄띄엄 열두 뜸이 있어 열두 오물이라고 하였는데, 마을들은 크게 보아 하나의 생활권이었다.


  • 옛날에 이 지역에 큰 우물이 있어서 우물이라 하였는데, 언제인가부터 선산곽씨가 살면서 호(號)를 오물재(五勿齋)라 하여 마을명을 오물(五勿)로 고쳤다고 한다. 오물재 곽선생은 평소에 학덕이 높고 행실이 곧아 주위의 추앙을 받았는데, 그는 공자의 비례물시(非禮勿視)·비례물청(非禮勿聽)·비례물언(非禮勿言)·비례물동(非禮勿動) 등 네 가지의 예가 아니면 행하지 않는다는 덕목에다 자신의 소신 한가지를 더하여 오물재라 하고 자신의 호를 삼았던 바, 뒤에 오물재 선생이 사는 마을이기 때문에 마을 이름을 오물이라 불렀다고 한다. 또한 우물가에 오동나무가 있어 오정(梧井)이라고 하였다.


  • 오정동은 들이 넓어 예전에는 주민들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였으나, 지금은 도시화되어 농업에 종사하는 이가 거의 없다. 한편 오정동은 1960년대부터 주택이 들어서면서 발전하기 시작하였는데, 1980년대 말에 와서 땅값이 올라 토박이들이 부동산으로 갑자기 부자가 되어 땅을 팔고 마을을 떠나는 현상이 증가하였다. 따라서 현재는 대부분 외래 이주자들이 거주하고 있고 토착민을 얼마 되지 않아 찾아보기 힘들 정도이다. 예전에도 오정동은 세거성씨로는 은진송씨를 들을 수 있을 뿐으로 대부분 각성받이다.


  • 오정동은 1920년대 이후 1970년대까지도 대전천을 따라 노촌과 봉촌을 중심으로 지역 전체의 80% 정도가 논으로 이용되었고, 경부선 철도의 동부지역 일부만이 야산과 밭 지역이었다. 그리고 구릉성 야산지역 이었던 곳에 한남대학교가 들어섰고, 전에 논이었던 곳에는 1980년대 이후 구획정리가 잘된 새로운 시가지로 바뀌면서 현재 대덕구청, 농수산물도매시장, 그리고 한남대학교 등이 입지하고 있어 대덕구의 중심지가 되었다.


  • 현재의 토지이용 실태를 1999년도 통계로 보면 총3,053,299㎡에 전(田)이 52,076㎡로 2% , 답(畓) 30,880㎡로 1%, 임야 303,085㎡가 10%, 대지가 1,293,105㎡로 42%이고 기타는 공장용지·학교용지·도로 등이다. 오정동은 대지가 전체 면적 중 42%나 차지하고 있으며, 전답은 합하여 3% 밖에 되지 않는다. 이러한 사실은 오정동이 택지개발로 완전히 주거밀집 지역화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현재의 오정동은 주거시설과 상업지역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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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동의 연혁
  • 오정동 지역은 백제 때는 우술군이었다가, 신라시대에는 비풍군으로 개명하였고, 그 밑에 유성현과 적오현(뒤에 덕진현)을 그 속현으로 두었다. 고려초기에는 비풍군을 회덕현으로 읍호를 바꾸었고, 이후 고려 현종 9년(1018)에는 공주의 속현으로 귀속되었다. 그런데 고려시대 유성현과 덕진현이 공주의 속현이었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현종 9년의 군·현의 개편시에 유성현과 덕진현이 회덕의 속현에서 벗어나 공주의 속현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후 회덕현은 고려 명종 2년(1172)에 처음으로 감무(조선시대의 현감과 같음)를 두게되어 주현으로 승격하게 되었다.


  • 조선초기 태종 13년(1413)에 전국을 8도제로 개편하면서 행정구역을 서울→도→주·부·군·현→면(방·사)→리(동·촌) 체제로 편성하였다. 이에 회덕은 충청우도 공주목에 속하는 종6품의 현감이 다스리는 회덕현이 되었다. 이와 같이 8도제의 실시와 더불어 소현의 병합이 이루어졌는데 이 때에 유성현이 폐지되면서 그 영역이 회덕현과 진잠현에 속하게 되었다.


  • 정조 13년(1789) {호구총수}의 기록에 의하면 지금의 오정동은 회덕현 내남면 상오정리와 하오정 내동리로 되어 있어 조선중기 때부터 오정리라는 지명과 행정구역이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 조선후기 고종 32년(1895) 갑오개혁으로 인한 행정구역의 개편으로 태종이래 실시되어왔던 8도제가 폐지되고, 전국이 23부제를 실시하면서, 종래의 부·목·군·현 등의 지방행정 단위를 모두 폐합하여 336개 군을 신설하고, 이를 23개 부에 속하게 하였다. 이로서 회덕현은 공주부에 속하는 27개 군의 하나인 회덕군으로 개편되었고, 오정동은 회덕군 내남면에 소속되었다. 이 당시 회덕의 구역은 기존의 회덕의 7개 면(현내면, 동면, 외남면, 내남면, 서면, 근북면, 일도면)에 공주군의 5개 면(천내면, 유등면, 탄동면, 구즉면, 산내면)과 청원군 주안면이 편입되어 이전보다 크게 행정구역이 확대되었다.


  •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회덕군이 진잠군과 통합되어 대전군이 되었고, 오정동은 내동·노촌·상오리·오정리·봉촌 일부, 외남면의 동산리 일부, 서면 노촌을 병합하여 오정리라 하고 대전군 내남면에 편입되었다. 1931년에는 대전군 대전면이 읍으로 승격하여 대전군 1읍 11개 면으로 되었으며, 1935년 11월 1일에는 대전읍이 대전부로 승격됨에 따라 내남면의 일부가 대전부로 편입되었고, 일부는 대덕군 회덕면에 편입되었다. 1963년 1월 1일 대전시 구역 확장에 의하여 대전시에 편입되어 오정동이 되었고 1989년 1월 1일에는 대전시가 대전직할시로 승격됨에 따라 대덕군이 폐지되고 대덕구가 신설되자, 대덕구 오정동으로 되었으며 현재의 오정동은 행정동이자 법정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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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동의 전통마을과 씨족
  • ○ 오물(우물, 오정) : 오물은 신동아 아파트와 부전빌딩 사이에 있던 마을로 이곳에 큰 우물이 있어서 우물이라 한다. 또한 이 마을에 선산곽씨가 살면서 호(號)를 오물재(五勿齋)라 하여 마을명을 오물(五勿)로 고쳤다고 하며 우물가에 오동나무가 있어 오정(梧井)이라고도 하였다. 이곳에 오동나무는 10여 년 전만 하여도 동네 입구에 큰 버드나무 5∼6그루가 서 있었다. 그리고 매년 정월 보름 저녁이 되면 동네 주민들이 모여 마을의 안녕과 가정의 무사태평, 풍농을 기원하는 거리제를 지냈다. 오물마을에는 은진송씨 20∼30호가 세거하였는데 이 마을에 사는 은진송씨들을 가리켜 예전에는 오물 송씨라고도 하였다. 오물마을의 은진송씨들은 주로 목사공파와 집의공파 자손들이었다. 오물마을에는 은진송씨들이 주로 세거하였고, 기타 각성들이 거주하였다.

  • ○ 노 촌 : 노촌은 양지말에서 남서쪽에 있으며, 지금의 농수산시장 부근이 된다. 마을의 지형이 노(櫓)의 형국이라 해서 노촌이라고 불렀는데 이 마을에서는 하천에 모래로 단을 쌓고 거리제를 지냈다고 한다. 오물과 한 마을로 생활권이 같았으나 이를 구체적으로 구분하면 오물과 노촌으로 구분되었다.

  • ○ 삼거리(주막거리) : 삼거리는 오물고개에 있으며 길이 세 갈래로 되어 있어 삼거리라 부른다. 대전시내에서 신탄진 방향의 국도와 중리동에서 나오는 길이 만나는 지점으로, 현재는 이 국도와 한밭대로가 만나는 오정사거리이다. 또 이 삼거리에는 주막(술집)이 있어 주막거리라고도 불렀다 한다. 이곳에는 은진송씨 몇 가구가 거주하였다.

  • ○ 새뜸(신촌, 봉촌) : 새뜸은 한남대학교 오거리에서 서쪽, 동도초등학교의 북동쪽 부근을 말한다. 원래는 들이었으나 새로 마을이 생겨서 새뜸이라고 부른다. 또 전에는 이 마을에 새가 많이 있었기 때문에 봉촌이라고도 불렀다. 새뜸 마을에는 1970년대 이전에 모두 16호 정도가 거주하였다. 이곳에 거주하던 성씨는 경주김씨·경주최씨·산디 최가로 불리는 최가 각 2호, 남원양씨 2호, 보성오씨 1호, 밀양손씨 2호, 본관을 알 수 없는 인씨 1호, 동래정씨 1호, 은진송씨 1호, 함안조씨 2호 등이 세거하였다. 새뜸에 거주하였던 주민들은 주로 은진송씨의 땅을 소작하였던 농민들이었다.

  • ○ 안골(내동) : 안골은 지금의 한남대 공과대학건물 부근이다. 마을이 골짜기 안에 있었기 때문에 안골 또는 내동, 안뜰이라고도 부른다. 그 당시에는 이 마을에 몇 가구가 거주하고 있었으나 모두 이주하고 현재는 한남대가 자리하고 있다. 안골에 한남대 공대대학 건물이 들어서기 전에는 약 4∼5호 정도가 세거하였다. 안골에 거주한 성씨로는 본관을 정확히 알 수 없는 최씨·오씨 등이 거주하였으나, 한남대학교에서 토지를 매입하여 대학 건물을 짓게 되자 타 지역으로 이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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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동의 세거성씨
  • 오정동의 세거성씨로 이곳에서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였던 성씨는 은진송씨로 주로 목사공파와 집의공파 자손들이 세거하였다. 그리고 선산 곽씨들도 오정동에 세거하였다. 그러나 지금의 오정은 완전히 도시화되어 외부에서 이거 하여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오정동에 세거하였던 은진송씨의 후손과 선산 곽씨의 후손을 찾을 수 없어 은진송씨 및 선산 곽씨들의 입향조 및 입향 시기와 가계 등을 파악하지 못하였다.
오정동의 옛 지명
  • ● 근드레보 [보] : 대전천과 호남선 철도가 만나는 근처에 있었다. 오정동과 중구 중촌동 사이에 있는 대전천의 흐르는 물을 막아 농사에 이용하려고 보를 쌓았는데 이를 근드레보라 한다. 당시 이 물을 이용하여 현재의 대덕구청 부근과 새뜸 부근의 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 ● 노촌 [마을] : 양지말에서 남서쪽에 있으며, 지금은 농수산물시장 부근이 된다. 마을의 지형이 노(櫓)의 형국이라 해서 노촌이라고 부른다.

  • ● 달걀바위(달걀바우) [고개] : 위생처리장과 대화동 엘지 대전물류센타 사이에 있는 고개로 이 곳에 달걀 모양과 같은 바위가 있어 이를 달걀바우 고개라고 부른다.

  • ● 동살미고개(동산미고개) [고개] : 경부선 철로를 중심으로 오정동과 홍도동의 경계 부근이다. 신호장 뜸에서 홍도동 쪽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본래의 이름은 동산에 있는 고개라 해서 동산고개였으나 동산미고개, 동살미고개라고 부른다.

  • ● 불당골(북당골) [골] : 현재 한남대학교 경상대학 건물과 외국인 학교 사이의 골짜기로 옛날에 이곳에 불당이 있어 불당골이라 하였다.

  • ● 삼거리(상거리, 주막거리) [마을] : 오물고개 부근에 있는데 길이 세 갈래로 되어 있어 삼거리라 부른다. 또한 삼거리에 주막(술집)이 있어 주막거리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현재는 신탄진 방향의 도로와 대화중학교 입구와 만나는 지점의 삼거리로 오정사거리에서 신탄진 방향 쪽이다.

  • ● 새뜸(신촌, 봉촌) [마을] : 한남대 오거리에서 서쪽, 동도초등학교의 북동쪽 부근을 새뜸이라 하는데 원래는 이곳은 들이었으나 새로 마을이 생겨서 새뜸이라 부른다. 또 전에는 이 마을에 새가 많이 있었기 때문에 봉촌이라고도 부른다.

  • ● 수문(水門) [보] : 동도초등학교와 근드레보 사이에 있었다.

  • ● 신호장뜸 [마을] : 한남대 육교와 동산미고개 사이의 마을이다. 호남선과 경부선의 기차 신호등이 있었기 때문에 신호장뜸, 신호장촌이라 부른다. 현재는 한남대 육교를 비롯하여 부근에 아파트와 주택이 들어서 있으며 전에 오정역이 있었다.

  • ● 안골(내동, 안뜰) [마을] : 한남대 공과대학 건물 부근으로 마을이 골짜기 안에 있기 때문에 안골, 안뜰 또는 내동이라 부른다. 그 당시에는 이 마을에 몇 가구가 거주하고 있었으나 모두 이주하고 현재는 한남대가 자리하고 있다.

  • ● 양산들(양전잿들, 양전평) [마을] : 화정초등학교 근처로 한남대 뒷산에서 흐르는 물을 이용해 농사짓는 큰 들이라 하여 양전잿들, 양산들, 양정잿들이라 한다.

  • ● 양지말(양지촌) [마을] : 오물과 농수산물도매시장 사이의 마을로 마을 뒷산을 배경으로 양지쪽에 위치한 마을이라 하여 양지말 또는 양지촌이라 부른다.

  • ● 오물(우물, 오정) [마을] : 현재 신동아 아파트와 부전빌딩 사이로 마을에 큰 우물이 있어 우물이라 하였으나 선산곽씨가 마을 명을 오물재로 고쳤고 또한 우물가에 오동나무가 있어 오정이라고도 하였다.

  • ● 오물고개 [고개] : 삼거리에 가까이 있는 고개를 오물고개라 하는데 오물마을 뒤에 고개가 있어 오물고개라 부른다. 현재의 오정사거리에서 신탄진 방향으로 언덕을 오르다가 좌측 편으로 대화중학교 입구부근이다.

  • ● 옻샴(옻샘) [샘] : 현재의 한남대 학생회관과 경부선 철로 사이로 옛날 이곳에 샘이 있었는데 옻을 오른 사람이 이 약수로 목욕하자 깨끗이 나았다 하여 옻샘이라 불렀는데 지금은 한남대 학생회관과 종합운동장이 들어서면서 없어졌다.

  • ● 통메바위(바위산, 통산암) [바위] : 현재 한남중앙교회와 동대전 가스충전소 사이에 바위가 있었다. 양산들 남쪽에 있는 바위를 통메바위라고 하는데, 본래의 이름은 바위의 크기가 산과 비유될 정도로 매우 크기 때문에 바위산이라고 불렀다. 여름철 농사지을 때는 이 바위산에서 샛밥도 먹고, 쉬기도 했다고 한다. 또 바위틈에서 약수가 솟아났는데 20년 전 구획정리 사업으로 바위산은 없어졌다.

  • ● 화루미 [산] : 농수산물 도매시장에서 바로 북쪽에 있는 산이다.

  • ● 오정교 [다리] : 삼거리에 있는 다리로 오물고개로 연결된다.

  • ● 오정역 [역] : 한남대 육교와 동산미고개 사이에 신호장뜸이란 마을이 있었는데 이 부근에 오정역이 있었다. 오정역은 대전역이 설치되면서 1944년에 만들어진 간이역이었으나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