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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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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덕문화원 작성일19-04-25 11:27 조회23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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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on_arrow.gif대화동(大禾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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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동의 입지와 자연환경
  • 대화동은 지리적으로 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읍내동과 유성구 원촌동, 동쪽은 중리동, 남쪽은 오정동, 서쪽은 서구 만년동과 유성구 도룡동과 인접해 있는 동(洞)이다. 대화동은 갑천과 대전천에 연해 있고, 그들의 지류인 법동천이 흐르고 있어 땅이 매우 비옥하였다. 그래서 동명도 지역의 땅이 매우 기름지어 벼가 잘되는 곳이라는 의미로 대화(大禾)라고 하였다. 따라서 옛날에는 주민 대부분이 농사를 짓고 살았으며 구만이와 안구만이를 중심으로 두레가 조직되어 있었다. 그러나 대화동의 지역에 1973년 제1공업단지, 1975년에 제2공업단지가 조성되면서 산업지역으로 변모하였다.


  • 이처럼 1973년에 대전공업단지가 마을에 조성되면서 주민의 전·출입이 잦아지자 마을의 정체성을 점차 상실하게 되었다. 그리고 공업단지 조성으로 안구마니와 구만이 등 일부 대전천 변의 농토를 제외하고는 대화동 대부분의 지역이 공업단지로 조성되면서 원주민들도 공업단지를 따라 이주하여온 이주민들과 더불어 대전공업단지 내에서 공업생산직에 종사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그리고 생산직에 종사하지 않더라도 대화동의 공업단지와 오정동 사이에 새로 조성된 주거지와 근린상업지역에서 상업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공업단지의 개발로 항소·밤적골·망골 등의 전통마을과 이 마을의 민속 등은 대부분 사라지고 없다. 현재 옛 대화동의 모습이 조금이나마 남아있는 곳은 구만이와 안구만이 마을의 천 변 일부만이 옛 모습의 일면을 보여 줄 뿐이다.


  • 공단의 개발에도 불구하고 전통마을 가운데 현재까지 남아있는 구만이 마을은 공단에 둘러싸여 교통이 불편할 뿐만 아니라 취락시설도 취약하다. 그리고 안구만이 마을은 공구상가에서 오정동 농산물도매시장 쪽으로 도로가 나면서 타지로 이주하고 현재는 3호 정도가 거주하고 있을 뿐이다. 기타 대화동의 모든 전통마을은 모두 공단으로 변모하여 옛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다.


  • 현재 공단으로 개발된 대화동의 토지이용실태를 『'99통계연감』을 통해 살펴보면 총 3,155,739㎡ 중에서 전(田) 138,486㎡로 4%, 답(畓) 160,348㎡로 5%, 대지(垈地) 511,706㎡로 16%, 공장용지 1,299,370㎡로 41%, 기타 도로·하천 등으로 되어있다. 이러한 사실은 과거에는 갑천과 대전천·법동천을 끼고 발달한 농업지역이 대화동 공업단지 개발로 농업에 이용되는 토지는 갑천과 대전천 변에 9% 정도이고, 기타 대화동의 대부분이 공장용지로 바뀌어 전체 대화동의 토지 가운데 41%을 점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는 대화동이 대덕구의 대표적인 공업지역에 하나임을 보여 준다. 현재 대화동은 행정동이면서 법정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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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동의 연혁
  • 대화동 지역은 백제 때는 우술군이었다가 신라시대에는 비풍군으로 개명하였고, 그 밑에 유성현과 적오현(뒤에 덕진현)을 그 속현으로 두었다. 고려 초기에는 비풍군을 회덕현으로 읍호를 바꾸었고, 이후 현종 9년(1018)에는 공주의 속현으로 귀속되었다. 그런데 고려시대에는 유성현과 덕진현이 공주의 속현이었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고려 현종 9년 군·현의 개편시에 회덕의 속현에서 벗어나 공주의 속현이 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후 회덕현은 고려 명종 2년(1172)에 처음으로 감무(조선시대의 현감과 같음)를 두게 되어 주현으로 승격하게 되었다.


  • 조선왕조가 건국된 후 태종 13년(1413)에 전국을 8도제로 개편하면서 행정구역을 서울→도→주·부·군·현→면(방·사)→리(동·촌) 체제로 편성하였다. 이에 회덕은 충청우도 공주목에 속하는 종6품의 현감이 다스리는 현이 되었다. 이와 같이 8도제의 실시와 더불어 소현의 병합이 이루어졌는데 이 때에 유성현이 폐지되면서 그 영역이 회덕현과 진잠현에 속하게 되었다.


  • 정조 13년(1789)의『호구총수』에 기록된 것을 보면 지금의 대화동이 회덕현 현내면 대화리로 되어 있어 조선중기 때부터 대화리라는 지명과 행정구역이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 조선후기 고종 32년(1895) 갑오개혁으로 인한 행정구역의 개편으로 태종이래 실시되어왔던 8도제가 폐지되고, 전국이 23부제를 실시하면서, 종래의 부·목·군·현 등의 지방행정 단위를 모두 폐합하여 336개 군을 신설하고, 이를 23개 부에 속하게 하였다. 이로서 회덕현은 공주부에 속하는 27개 군의 하나인 회덕군으로 개편되었고, 대화동은 회덕군 내남면 대화리에 소속되었다. 이 당시 회덕의 구역은 기존의 회덕의 7개 면(현내면, 동면, 외남면, 내남면, 서면, 근북면, 일도면)에 공주군의 5개 면(천내면, 유등면, 탄동면, 구즉면, 산내면)과 청원군 주안면이 편입되어 이전보다 크게 행정구역이 확대되었다.


  •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회덕군이 진잠군과 통합되어 대전군이 되면서대화리는 율사동·구만리·법동 일부와 서면의 구만리 등 일부를 합하여 대전군 내남면 대화리가 되었다. 1931년에는 대전군 대전면이 읍으로 승격하여 대전군 1읍 11개 면으로 되었으며, 1935년 11월 1일에는 대전읍이 부로 승격됨에 따라 대전부와 대덕군으로 분리되었고 대화동은 대덕군 내남면 대화리로 남게 되었다. 1962년 11월 21일 법률 제1175호에 의하여 1963년 1월 1일부터 대전시가 확장되면서 대화리는 대전시에 편입되었으며 1989년 1월 1일 대덕군의 폐지와 동시에 대전직할시 대덕구가 설치되면서 대화동은 대덕구의 행정동인 동시에 법정동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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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동의 전통마을과 씨족
  • ○ 구마니(구만니, 구만이) : 구마니 마을은 무다리에서 남서쪽, 대전천과 갑천이 만나는 지점에서 동쪽에 위치한 마을이다. 예전에는 마을 뒤로 동남쪽으로 뻗어 내린 산을 등지고 산자락 밑으로 갑천 변을 따라 길게 형성된 마을이었다. 이 마을은 대전천과 갑천이 만나는 지점에 발달한 비교적 넓은 뜰을 배경으로 농업이 활발하여 큰 규모의 마을을 형성하였었다. 구마니 마을과 같은 생활권으로는 안구마니·망골·무다리 등인데 한 마을로 불리기도 하였다. 현재도 이곳의 노인들은 한 마을로 설명하고 있으며 전체의 호수가 예전에는 80호 정도였다고 한다. 이 마을이 구마니라고 불리게 유래는 옛날에 이 마을 앞으로 흐르는 물에서 거북이가 놀았다고 하여 구만이 혹은 구만니라 하였고 또한 마을을 갑천과 대전천이 감싸안고 돌아가는 지형으로 만(彎)을 이루어 마치 거북의 형국을 하고 있어 구만이라 하였으며, 또한 고개가 9개가 있다고 하여 구마니라고도 하였다. 현재는 대부분이 공단으로 편입되었고, 예전에는 마을 뒷쪽은 산이었으나 지금은 공단으로 변하였는데 그 공단을 뒤로 갑천 변을 따라 주거지가 형성되었다. 이곳에 가장 먼저 들어온 성씨는 알 수 없지만, 공단 개발이전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은진송씨 15호, 현풍곽씨 15호 정도로 집성을 이루었었고, 기타 각성들이 많이 거주하였다. 현재는 공단개발로 많은 사람들이 이주하여 각성받이다.


  • ○ 안구만이 : 안구만이는 됨비알삐대기와 시루봉 사이에 있다. 이 마을은 구만이 안쪽에 있다고 하여 안구만이라고 부른다. 마을 뒤 동쪽으로는 가파른 산을 등지고 있고 서쪽으로 갑천의 넓은 뜰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마을이다. 이 마을에 10호 이상이 살면 마을이 망하거나 사람이 죽는 등의 일이 생긴다고 하였다. 그래서 만약 10집 이상이 살면 반드시 마을에 일이 생겨 몇 집이 이사를 가게 되고 결국 10집이 안되는 가구가 거주하였다고 한다. 이 마을에는 8호 정도 거주하였는데 경주이씨가 가장 먼저 들어와 7대째 세거하고 있으며 기타 광산김씨·밀양박씨들은 한국전쟁 이후에 들어와 거주하고 있다. 현재는 대화동 공구상가에서 오정동 농수산시장 쪽으로 길이 나면서 대부분이 타지로 이주하고 3호만이 거주하고 있는데 예전에는 농업이 주이었으나 지금 1호는 음식점 영업을 하고 있다.


  • ○ 마근골(망골, 마곡동) : 마근골은 안구만이에서 북쪽, 됨비알삐대기에서 동북쪽에 있다. 이 마을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마치 막힌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마근골(막은골)이라고 부른다. 또한 막음골 혹은 망골로도 불린다. 그리고 백제와 신라가 싸울 때 말에게 먹이를 먹인 골짜기라 해서 마곡동이라고도 불리었다 한다. 그러나 이곳에 대대로 세거하였던 주민들은 이곳의 지명을 망골이라 불렀으며 공단으로 개발되기 이전에는 현풍곽씨들이 집성촌을 이루었으나 현재는 공단으로 개발되어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 ○ 말랭이(말랑이) : 말랭이는 망골 동쪽, 오정동 위생처리장 북쪽으로 엘지 물류창고 사이의 산등성에 있었던 마을이다. 이 마을을 말랭이라 한 것은 마을이 산 말랭이(산등성)에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말랭이라 하였다. 지금은 개발로 공업단지가 되었으나 공단개발 이전에는 약 5호 정도가 거주하였으며 각성받이이었다.


  • ○ 무다리(수교) : 무다리는 구마니 마을과 가쨍이벌 사이에 있다. 이 마을 안에 다리가 있었는데, 그 밑에는 항상 물이 가득히 고여 있어 이를 무다리(수교)라고 불렀으며, 마을 이름도 여기서 유래되었다. 공단개발 이전에는 10호 정도가 거주하였으나 특정한 성씨가 집성을 이룬 것은 아니고 각성받이다.


  • ○ 밤절골(밤절, 밤제골, 밤재골, 밤적골, 율사동) : 밤절골은 황소에서 북동쪽에 있다. 옛날에 율사(밤절)라고 하는 절이 이 골짜기에 있었기에, 밤절골 또는 율사동, 밤재골이라 불렀다. 공단개발 이전에는 10호 정도가 거주하였는데 그 가운데 전주이씨가 2호 정도이었고 기타 각성받이 였다.


  • ○ 황소(황우, 황수, 황률) : 황소마을은 구만이 마을에서 동쪽에 있었다. 황소마을을 세부적으로 나누면 말랭이, 황소, 밤적골 등으로 나눌 수 있으나 예전에는 같은 생활권으로 한 마을이었다. 대대로 이 마을에서 세거해온 노인들은 지금도 한 마을로 부르고 있다. 그런데 이 마을을 황소라고 부르게 유래는 옛날부터 마을에 황우형(黃牛形)의 명당이 있다고 하여 황소, 황우라 불렀고, 마을에 밤나무가 많아서 황률이라고 하였다. 또한 황수라고도 불리었다고 한다. 이 마을은 공단이 개발되기 전에는 총 17∼18호가 세거하였는데, 이 가운데 은진송씨 5호 정도로 가장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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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동의 세거성씨
  • 대화동에 세거하였던 주요성씨로는 은진송씨가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는 현풍곽씨가 많았다. 특히 현풍곽씨는 망골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안구마니에는 경주이씨가 7대째 세거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화동의 가장 많이 세거하였던 은진송씨는 회덕에 거주하였던 은진송씨들이 분촌하여 세거한 것이었다. 망골에 집성촌을 이루고 세거하였던 현풍곽씨에 대하여서는 이곳이 공단으로 개발되는 과정에서 주민들이 타지로 이주하여 탐문하기 어려웠다. 따라서 현풍곽씨가 대화동 망골에 조선중기 이후에 세거한 사실을 파악할 수 있었으나 현풍곽씨의 입향시기 및 입향조 등에 관한 구체적인 사실은 조사할 수 없었다. 다만 구만이 주민들은 현풍곽씨로 대화동에 입향하게된 씨족은 옥천 구룡에 살던 현풍곽씨들이 이곳으로 이주하여 온 것이라 한다. 입향하게된 배경은 옥천 구룡이 우암 송시열의 외가이었고, 회덕은 은진송씨들이 세거하였던 고장이어서 현풍곽씨들이 은진송씨들과 연관되어 회덕의 대화동에 입향하였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그리고 안구마니에는 경주이씨가 7대에 거쳐 세거하였다고 하나 입향 시기 및 입향조에 대하여서는 구체적으로 확인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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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동의 옛 지명
  • ● 가쨍이벌(가쟁이, 가장이벌, 갓쟁이벌) [들] : 토골에서 서쪽, 대화제지에서 북서쪽에 있는 들판으로 갑천 가장 자리에 있는 들이라 하여 가장이벌, 가쟁이벌, 갓쟁이벌이라고 한다.

  • ● 구만니(구마니, 구만이) [마을] : 무다리에서 남서쪽에 위치한 마을로 옛날에 마을 앞으로 큰 내가 흐르고 있었는데, 이 물에서 거북이가 놀던 곳이라 하여 구만이, 구만니라 부르며 또한 마을의 지형이 만(彎)을 이룬 거북의 형국이라 하여 이처럼 부른다고 한다.

  • ● 구만이샘(구마니샴) [샘] : 구만이 마을에 있는 샘이다.

  • ● 구만이앞들(구마니앞들) [들] : 구만이 마을에서 서쪽, 마을과 갑천 사이에 들이 있는데, 이를 구만이 앞들이라고 한다.

  • ● 대화리고개 [고개] : 대화중학교에서 북쪽, 오물고개에서 서쪽에 있다. 대화동에서 오정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대화리고개 또는 대화동고개라고 부른다.

  • ● 도둑굴 [골] : 구만이 마을에서 남동쪽, 백녹정 날맹이에서 서북쪽에 있다. 옛날에 이 골짜기에 도둑이 많다고 하여 도둑굴이라고 부른다.

  • ● 됨비알삐대기 [산] : 구만이 마을과 안구만이 마을 사이에 있는 낮은 산으로 산 모양이 매우(됨) 경사(삐알이)졌다고 됨비알빼대기라 하였다.

  • ● 마근골(망골, 마곡동) [마을] : 안구만이에서 북쪽, 됨비알삐대기에서 동북쪽 마을로 산으로 둘러 쌓여 마치 막힌 것처럼 보인다고 하여 마근골이라 부른다. 또한 마음골이라고도 불리다가 망골로 변하여 부르게 된 것이다. 그리고 백제와 신라가 싸울 때 말에게 먹이를 먹인 골짜기라서 마곡동이라고도 부른다.

  • ● 말랭이(말랑이) [마을] : 마근골에서 동쪽으로 산등성에 마을이 있었으므로, 이를 말랑이, 말랭이라고 부른다. 현재는 공단에 편입되어 있다.

  • ● 모래둑 [들] : 황소 앞쪽이 모래 둑으로 하들과 갑천 사이가 된다. 갑천의 물이 휘돌아 가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하들에서 갑천 쪽으로 모래가 쌓이는데 이것을 모래둑이라고 부른다. 현재는 2공단에 편입되어 있다.

  • ● 무다리(수교) [마을] : 구만이 마을과 가쨍이 벌 사이로 이 마을 안에 다리가 있었는데, 그 밑에는 항시 물이 그득히 고여 있어 이를 무다리라고 부른다.

  • ● 밤절골(밤절, 밤제골, 밤재골, 율사동) [마을] : 황소에서 북동쪽에 위치해 있다. 옛날에 율사(밤절)라고 하는 절이 이 골짜기에 있어, 이를 밤절골 또는 율사동이라고 부른다. 또한 밤재골이라고도 하는데 현재는 공단에 편입되어 있다.

  • ● 백록정날맹이 [산] : 안구만이에서 북서쪽, 마근골에서 남서쪽에 위치해 있다. 옛날 조선중기 때 문신 신응시가 지은 정자 백록정이 있던 산등성이라 하여 이를 백록정 날맹이라 부른다. 현재는 2공단 내에 있다.

  • ● 서원말나루터(서운말 나루터, 서원진) [나루] : 하들에서 북동쪽 갑천 변에 있는 나루터이다. 대화리에서 서원말(원촌동)로 건너가는 나루터를 서원말 나루터·서운말 나루터라고 부른다. 이는 강 건너편의 원촌이라는 마을에 숭현서원이 있었기 때문에 이곳을 서원으로 가는 나루터라 하여 이처럼 부르며 현재는 이 곳에 원촌교가 놓여 있다.

  • ● 수청보 [보] : 현재 위생처리장 앞 냇가에 쌓던 보로 달걀바위에서 서쪽, 삼주물산에서 바로 남쪽에 있다. 이 보는 옛날에는 있었으나 현재는 메워져 고수부지가 되었다.

  • ● 시루봉날망(시루봉날맹이, 시루봉마루) [마루] : 안구만이 마을에서 동쪽 뒤편에 있다. 시루봉 북쪽의 능선이 있어 이를 시루봉날망 또는 시루봉날맹이라고 부른다. 표준어로는 시루봉 마루이다.

  • ● 시루봉산(시루봉, 증봉) [산] : 안구만이 마을에서 동남쪽에 위치해 있는데 산봉우리의 모양이 시루와 같아 시루봉이라고 하며 또는 증봉이라고도 한다.

  • ● 안구만이(안구마니) [마을] : 됨비알삐대기와 시루봉 사이로 마을이 구만이 안쪽에 있다고 하여 안구만이 라고 부른다.

  • ● 안구만이들(안구마니들) [들] : 안구만이 마을에서 서남쪽에 들이 있어 이를 안구만이 들이라고 부른다.

  • ● 원산모텡이(원산모퉁이) [모롱이] : 구만이 마을과 백록정 날맹이 사이에 있다. 이 산의 지형이 모퉁이와 같아 이를 원산모퉁이 또는 원모텡이 라고 부른다. 지명에서 모퉁이를 모텡이라고 부른다.

  • ● 작은망골 [골] : 달걀바위에서 북쪽, 동양강철 대전공장과 엘지전자 대전물류센터 사이로 산에 둘러 싸여 막힌 것처럼 보인다하여 망골이라 부른다.

  • ● 토골(톳골) [마을] : 쨍이벌과 하들 사이에 있다. 옛날에는 한가구가 있었으나, 지금은 공단으로 편입되었다.

  • ● 하들 [들] : 토골과 서원말 나루터 사이에 있다. 구만이 마을에서 북쪽으로 보면, 맨 아래에 들이 있어 하들이라 불렀으며 현재는 공단에 편입되어 있다.

  • ● 황소(황우, 황수, 황률) [마을] ; 구만이 마을에서 동쪽으로 옛날부터 이 마을에 황우형의 명당이 있다고 하여, 이를 황소, 황우, 황수라고 부른다. 또한 이 마을에 밤나무가 많아서 황률 이라고도 하였다. 현재는 공단에 편입되어 있다.

  • ● 농골 : 원산모퉁이에서 공구상가 쪽의 신호등이 있는 곳이 농골이다.

  • ● 읍호정 [유적] : 구만이에 있는 정자로 조선당대 최고의 유학자 동춘 송준길의 부친 송이창이 건립하여 선비들과 교유하며 후학들에게 강론하던 곳인데 후에 동춘 송준길이 물려받아 중수한 정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