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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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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덕문화원 작성일19-04-25 11:39 조회16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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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on_arrow.gif연축동(連丑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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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축동의 입지와 자연환경
  • 연축동은 지리적으로 대덕구 중앙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장동, 남쪽으로는 읍내동, 서쪽은 신대동, 북쪽은 와동과 인접해 있다. 남쪽 읍내동의 연축동 산성과 동쪽 장동의 계족산성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지금의 수자원공사가 있는 곳과 그 뒤쪽을 연축동이라 하는데 이 지역에 연방죽이 있어 연축골이라 하였고, 연와부수(蓮臥浮水) 형국의 명당이 있어서 연축골이라 하였다고 한다. 또 일설에는 옛날 이곳에 있던 집들이 모두 축좌(丑坐)로 이어져 있었기 때문에 연축좌가 줄어서 연축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 연축동은 현재와 같이 개발되기 이전의 1970년에는 약 70∼80호 정도가 세거하던 마을이었고, 자연마을은 어둠골, 연축리(장여골·윗골·어듬이골·밭뒤로 이루어짐), 웃골 등으로 되어 있었다. 당시 연축동의 주민들은 대부분 은진송씨이었으나 연축동에 수자원공사와 주공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은진송씨들은 대부분 이곳을 떠나 대전·신탄진 등지로 이주하였다.


  • 이와는 반대로 연축동에는 주공아파트 건설로 대규모의 주민이 이주해왔고, 또 수자원공사가 들어서 상업시설이 새로이 건설되면서 여러 성씨들이 들어오게 되었다. 이제 연축동에서도 예전의 마을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 연축동 연축골 마을의 중앙에 약 500년 된 나무가 있고, 옛날에는 이 나무에 많은 정성을 들였다 한다. 이 나무 바로 앞에 공회당이 있어 마을에서 일어나는 큰 일은 여기에서 논의되었다. 그리고 예전에 주민들은 주로 밭보다는 계족산 쪽에서 서쪽으로 펼쳐진 구릉 상에 계단식으로 되어있는 논에서 벼농사를 많이 지었다. 그러나 현재는 이곳의 주민들의 대전시내에 직장을 두고 출퇴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현재 연축동의 토지이용 실태를 {99통계연보}에 의하여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총 2,004,341㎡에 전(田) 208,334㎡로 10%, 답(畓) 196,497㎡로 10%, 임야가 1,196,386㎡ 60%, 대지가 131,983㎡로 7% 등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사실로 볼 때 연축동은 임야가 전체 면적의 60%나 차지하며 개발제한구역으로 되어있고, 전답이 합하여 약 20%, 대지가 7%등으로 주거환경은 대덕구의 도시화된 지역에 비하여 매우 좋은 편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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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축동의 연혁
  • 연축동 지역은 백제시대에는 우술군이었으나 신라시대에 비풍군으로 개명하였고, 그 밑에 유성현과 적오현(뒤에 덕진현)을 그 속현으로 두었다. 고려 초기에는 비풍군을 회덕현으로 읍호를 바꾸었고, 이후 고려 현종 9년(1018)에는 공주의 속현으로 귀속되었다. 그런데 고려시대 유성현과 덕진현이 공주의 속현이었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현종 9년의 군·현의 개편시에 유성현과 덕진현이 회덕의 속현에서 벗어나 공주의 속현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후 회덕현은 고려 명종 2년(1172)에 처음으로 감무(조선시대의 현감과 같음)를 두게 되어 주현으로 승격하게 되었다.


  • 조선초기 태종 13년(1413)에 전국을 8도제로 개편하면서 행정구역을 서울→도→주·부·군·현→면(방·사)→리(동·촌) 체제로 편성하였다. 이에 따라 회덕은 충청우도 공주목에 속하는 종6품의 현감이 다스리는 회덕현이 되었다. 이와 같이 8도제의 실시와 더불어 소현의 병합이 이루어졌는데 이 때에 유성현이 폐지되면서 그 영역이 회덕현과 진잠현에 속하게 되었다.


  • 정조 13년(1789)의 {호구총수}에는 회덕현 현내면 연축동리로 되어 있어 조선중기에 연축동리라는 행정구역과 지명의 존재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 조선후기 고종 32년(1895) 갑오개혁으로 인한 행정구역의 개편으로 태종이래 실시되었던 8도제가 폐지되고, 전국이 23부제를 실시하면서, 종래의 부·목·군·현 등의 지방행정 단위를 모두 폐합하여 336개 군을 신설하고, 이를 23개 부에 속하게 하였다. 이로서 회덕현은 공주부에 속하는 27개 군의 하나인 회덕군으로 개편되었고, 연축동도 회덕군 현내면 연축동리가 되었다. 이 당시 회덕의 구역은 기존의 회덕의 7개 면(현내면, 동면, 외남면, 내남면, 서면, 근북면, 일도면)에 공주군의 5개 면(천내면, 유등면, 탄동면, 구즉면, 산내면)과 청원군 주안면이 편입되어 이전보다 크게 행정구역이 확대되었다.


  •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회덕군과 진잠군이 통합되어 대전군이 되면서 연축동의 일부가 대전군 내남면 연축리가 되었다. 1931년에는 대전군 대전면이 읍으로 승격하여 대전군 1읍 11개 면으로 되었으며, 1935년 11월 1일 대전읍이 부로 승격됨에 따라 대전부와 대덕군으로 분리되는데, 이때 연축동은 대덕군 연축리가 되었다. 1983년 대전시 확장으로 유성읍과 회덕면 일원이 대전시에 편입되면서 연축동도 대전시 동구에 편입되었다. 1989년 1월 1일에는 대전직할시의 확대로 대덕군의 폐지와 동시에 대덕구가 설치되면서 연축동은 대덕구에 속한 법정동으로 행정동은 회덕1동에 속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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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축동의 전통마을과 씨족
  • ○ 어둠골 : 어둠골 방죽에서 동쪽으로 계족산 봉황정을 향해 오르면서 지나는 마을이다. 이 마을은 봉은암 밑에 있는 마을로 계족산 아래에 위치하여 산이 높아 아침에 해가 늦게 떠서 어둡기 때문에 어둠골이라 하였다. 또한 이 마을에 괘등혈(掛燈穴)의 명당이 있었기 때문에 유래되었다고 한다. 어둠골은 마을이었다고는 하나 현재는 본관을 파악할 수 없는 약 2∼3호가 거주하고 있다.


  • ○ 연축골 : 윗골과 주공아파트 사이에 있다. 연방죽이 있었기에 연축골이라 부른다. 연축골은 장여골·윗골·어둠이골·밭뒤 이렇게 4개의 자연마을로 되어있었다. 연축리는 개발되기 이전에 약 30∼40여호 정도가 거주하였다. 연축골에는 인동장씨 3호, 은진송씨 5호 정도가 거주하였고, 기타는 여러 성씨들이 거주하였다. 연축리에도 은진송씨가 비교적 많이 거주하였으나 주도하는 성씨나 집성촌은 없었다.


  • ○ 웃골(윗골, 상곡) : 연축골과 달도지 사이에 있다. 연축골에서 계족산 능선 북쪽으로 있는데, 지형 상 연축골 보다 높은 위치에 마을이 있기 때문에 윗골(웃골)이라 부른다. 웃골은 경주김씨 집성촌으로 약 6호 정도 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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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축동의 세거성씨
  • ○ 경주김씨(慶州金氏) : 연축동 윗골은 경주김씨 집성촌이다. 경주김씨로 이곳에 입향한 입향조는 경주김씨 계림군파의 김권집이다. 입향 전의 거주지는 논산 성북동이었을 것이라 한다. 정확한 입향 년대는 알 수 없지만 후손은 대략 200년 정도 되었다 한다. 그러나 세거 호수가 적은 것은 윗골의 지형이 산중턱의 골짜기에 해당하여 많은 씨족이 세거할 수 없어 회덕의 여러 지역으로 나뉘어 살았기 때문이라 한다.

연축동의 옛 지명
  • ● 계족산(봉황산) [산] : 산의 지형이 닭의 발 모양처럼 생겼다하여 계족산이라 하는데 이 명칭은 고려시대부터 사용되어 왔고 문헌에도 나타나 있으나 주민들 사이에는 이 산이 봉황의 형상이라 하여 봉황산이라 부르고 있다.

  • ● 고래안골 [골] : 윗골에서 계족산 정상 쪽으로 이어진 골짜기인데 큰 골짜기 안에 또 골짜기가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 모종날맹이 [마루] : 연축골과 와동의 참새골로 넘어가는 날망이다.

  • ● 바른골 [골] : 계족산 꼭대기의 북서쪽에 위치한 마을로 작은골과 쪽지박골 사이에 있다.

  • ● 방산재 [산] : 밭재와 연축골 사이로 옛날에 어른들이 많이 놀던 곳이다.

  • ● 밭뙤들(밭퇴들) [들] : 사직고개와 어둠골 사이에 있는데 지형이 평평한 들에 밭이 있어 밭뙤들, 밭퇴들이라 부른다.

  • ● 밭디(밭뒤, 전후) [마을] : 신대육교와 밭재 사이로 밭뒤에 마을이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이 부근에 지금도 전답을 일구며 몇 가구가 거주해오고 있다.

  • ● 밭재 [고개] : 밭재와 방산재 사이로, 밭으로 이루어진 고개라 해서 밭재라고 부른다.

  • ● 산제당골 [골] : 애기편산과 달도지 사이로 이 골짜기에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산신제를 올리는 산제당이 있기 때문에 이를 산제당골이라 부른다.

  • ● 안산 [산] : 계족산 꼭대기에서 북쪽, 토골에서 동쪽에 있는 능선으로 연축동과 장동의 경계가 된다.

  • ● 애기편산 [골] : 쪽지박 골과 산제당 사이에 있는 골짜기이다.

  • ● 약방거리 [거리] : 조선말기 은진송씨 한사람이 이곳에서 한약방을 시작하면서 자손들이 한약방의 대를 이었다. 때문에 약방이 있는 곳이라 하여 약방거리라 한다.

  • ● 어둠골 [마을] : 어둠골 방죽에서 동쪽으로 계족산 봉황정을 향해 오르면서 지나는 마을이다. 이 마을은 봉은암 밑에 있는 마을로 계족산 아래에 위치하여 산이 높아 아침에 해가 늦게 떠서 어둡기 때문에 어둠골이라 하였다. 또한 이 마을에 괘등혈(掛燈穴)의 명당이 있었기 때문에 유래되었다고 한다.

  • ● 어둠골방죽 [못] : 어둠골 산아래 쪽에 있기 때문에 어둠골방죽이라 부르며 지금도 방죽은 있다.

  • ● 연방죽(연암저수지, 연축방죽, 쟁여골방죽, 장여방죽) [못] : 주공아파트와 수자원공사 입구 부근으로, 옛날에는 이 방죽에 연꽃이 많아서 연방죽이라 불렀으며 또 연축골 내에 있어 연축방죽이라고도 불렀다. 그리고 장여골에 있다 하여 장여방죽이라고도 부른다. 산에서 모래가 내려와 방죽을 메웠기 때문에 현재는 전답으로 변했고 지금은 마을이 형성되었다. ● 연방죽거리 [거리] : 회덕정수장에서 연축골까지의 거리를 말한다.

  • ● 연방죽골 [골] : 연방죽이 있는 골짜기라서 연방죽골이라 부른다. 지금은 복개해서 노인복지회관이 있다.

  • ● 연축골 [마을] : 윗골과 주공아파트 사이로, 연방죽이 있었기에 연축골이라 부른다. 연축골은 장여골, 윗골, 어둠이골, 밭뒤 이렇에 4개의 자연마을로 되어있었다.

  • ● 연축들(연축평) [들] : 연축골과 밭퇴들 사이로 연축골 앞에 들이 있어 이를 연축들이라 부른다. 대부분이 논으로 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주유소가 들어서고 특수장물을 주로 심고있다.

  • ● 웃골(윗골, 상곡) [마을] : 연축골과 달도지 사이로, 연축골 보다 산 쪽으로 높은 위치에 마을이 있기 때문에 윗골이라 부른다. 경주김씨 집성촌이다.

  • ● 작은골 [골] : 큰골과 바른 골 사이에 있다. 계족산 꼭대기에서 북서쪽 능선을 따라 내려오면서, 큰골 옆에 있는 작은 골짜기로 작은골이라고 부른다.

  • ● 쟁여골(장여골) [골] : 주공아파트와 수자원공사 사이로 옛날에는 골짜기였다. 이곳에 재인(광대)이 많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쟁이골(재인골)이라 부르다가 변하여 쟁여골, 장여골이라 한다.

  • ● 쪽지박골 [골] : 바른골과 애기편산 사이에 있다.

  • ● 초막골 [골] : 연축골과 어둠골 사이에 있다. 이 골짜기에 초막이 있다고 해서 초막골이라 부른다.

  • ● 큰골 [골] : 톳골과 작은골 사이에 있다. 계족산 꼭대기에서 연축골 방향으로, 제일 큰 골짜기를 큰골 또는 큰굴이라 한다.

  • ● 톳굴(토골, 토옥동) [골] : 계족산 아래 골짜기로 어둠골과 큰골 사이에 있다.

  • ● 회나무 [나무] : 연축골 마을에 있는 약 500년 된 나무로서, 옛날에는 이 나무에다 많은 정성을 들였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