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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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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덕문화원 작성일19-04-25 11:43 조회15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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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동의 입지와 자연환경
  • 와동은 지리적으로 대덕구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유성구 탑립동, 동쪽으로는 장동, 남쪽으로는 신대동과 연축동, 북쪽으로는 상서동과 접하고 있다. 와동은 예전에는 갑천의 동쪽 태악산 서쪽의 들판에 주로 농사가 활발하였던 마을이다. 와동이라는 지명은 이 지역에서 기와를 구웠기 때문에 왯골 또는 와곡이라 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와동이라 하였다.


  • 현재는 경부고속도로, 17번 국도, 경부선철도 등이 지나고 있으며, 경부선철도를 기준으로 동쪽은 산이고 서쪽은 마을과 들로 되어 있다. 그리고 경부선 철도 서쪽에 형성된 마을도 남쪽과 북쪽의 발전이 크게 차이가 난다. 즉 북쪽 마을인 동구말과 들말은 뒤로는 경부선철도가 앞으로는 대전·신탄진간 국도가 남북으로 지나가고 있다. 이곳에는 최근 대형차 매매소 등이 들어서 있으나 도시기반시설이 취약하고, 현재도 폐가가 그냥 방치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사정으로 인하여 아직도 옛 마을의 자연취락의 모습을 아직도 많이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와동의 남쪽 연축동 지역에 인접한 마을인 남월·와골 등은 인접한 연축동에 수자원공사가 들어오고, 와동 주공아파트와 현대아파트가 건설되면서 도시화되었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더 이상 옛 마을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 와동의 토지이용 실태를 『'99통계연감』을 통해 살펴보면 총 2,499,151㎡의 면적 중에서 전(田)이 126,962㎡로 5%, 답(畓)이 217,037㎡로 9%, 임야가 1,261,870㎡로 50%, 대지가 255,657㎡로 10%이며 기타 토지로는 공장용지·학교용지·도로용지·철도용지 등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사실은 와동은 총면적의 1/2 이 임야로, 임야의 대부분은 와동의 동쪽에 있으며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다. 그리고 와동 임야의 대부분은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되어있다. 따라서 대덕구 지역의 다른 동은 신탄진 대청댐 주변의 동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주거밀집과 공장지대로 개발되었으나, 와동에는 공장용지 등이 거의 없으며 주거밀집 지역도 다른 동에 비하여 매우 적다. 즉 와동은 대도시이면서도 상대적으로 인접지역에 비해 발전이 늦은 곳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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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동의 연혁
  • 와동 지역은 백제 때는 우술군이었다가, 신라시대에는 비풍군으로 개명하였고, 그 밑에 유성현과 적오현(뒤에 덕진현)을 그 속현으로 두었다. 고려초기에는 회덕현으로 읍호를 바꾸었고, 이후 고려 현종 9년(1018)에 공주의 속현이 되었다. 그런데 고려시대에 유성현과 덕진현이 공주의 속현이었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현종 9년의 군·현의 개편시 유성현과 덕진현이 회덕의 속현에서 벗어나 공주의 속현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후 회덕현은 고려 명종 2년(1172)에 처음으로 감무(조선시대의 현감과 같음)를 두게 되어 주현으로 승격하게 되었다.


  • 조선초기 태종 13년(1413)에 전국을 8도제로 개편하면서, 행정구역을 서울→도→주·부·군·현→면(방·사)→리(동·촌) 체제로 편성하였다. 이에 따라 회덕도 충청우도 공주목에 속하는 종6품의 현감이 다스리는 회덕현이 되었다. 이와 같이 8도제의 실시와 더불어 소현의 병합이 이루어졌는데 이 때에 유성현이 폐지되면서 그 영역이 회덕현과 진잠현에 속하게 되었다.


  • 정조 13년(1789)의 {호구총수}에 의하면 지금의 와동(瓦洞)이 회덕현 현내면 와동리로 나타나 있음을 볼 때, 조선중기에 이미 와동이라는 행정구역과 지명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후기 고종 32년(1895) 갑오개혁으로 인한 행정구역 개편으로 태종이래 실시되어오던 8도제가 폐지되고, 전국이 23부제를 실시하면서 종래의 부(府)·목(牧)·군(郡)·현(縣) 등의 지방행정 단위를 모두 폐지하여 336개 군을 신설하고 이를 23개의 부에 속하게 하였다. 이로서 회덕현은 공주부에 속하는 27개 군의 하나인 회덕군으로 개편되었고, 와동도 회덕군 현내면 와동리가 되었다. 이 당시 회덕의 구역은 기존의 회덕의 7개 면(현내면, 동면, 외남면, 내남면, 서면, 근북면, 일도면)에 공주군의 5개 면(천내면, 유등면, 탄동면, 구즉면, 산내면)과 청원군 주안면이 편입되어 이전보다 크게 행정구역이 확대되었다.


  •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혁으로 회덕군과 진잠군이 통합되어 대전군으로 되면서 와동은 평촌·목동·와동 각 일부를 합하여 대전군 내남면 와동리가 되었다. 1931년에는 대전군 대전면이 읍으로 승격하여 대전군 1읍 11개 면으로 되었으며, 1935년 11월 1일에는 대전읍이 대전부로 승격됨에 따라 대전부와 대덕군으로 분리되었는데, 와동은 대덕군에 소속되었다가 1983년 2월 15일 대전시 지역 확장에 의한 개편에 따라 대전시 동구로 속하게 되었다. 그후 1989년 1월 1일 대전시가 대전직할시로 승격됨에 따라 대덕군이 폐지되고 대덕구가 신설되면서 와동은 대덕구의 소속이 되었다. 현재의 와동은 법정동으로 행정동은 회덕 1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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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동의 전통마을과 씨족
  • ○ 남월(목동 木洞) 마을 : 회덕중학교에서 북동쪽, 와동 현대아파트 뒤쪽에 있는 마을이다. 옛날에 이 마을 입구에서부터 버드나무가 많이 있어 나무골, 또는 남월이라고 부르며, 남월이 변하여 나멀이라고도 한다. 이 마을에는 광산김씨 20호, 은진송씨 2호, 풍신임씨 1호, 화순최씨 1호 등이 거주하였다. 남월 마을은 광산김씨 집성촌이었다.


  • ○ 들말(평촌 坪村) : 회덕 과선교에서 베룩산 사이에 있는 마을을 들말이라 한다. 들 가운데 있는 마을이라 해서 들말 또는 평촌이라 하는데, 이 지역은 아랫마을·윗마을·기와집마을·동구마을 이렇게 4개의 조그만 자연촌락으로 이루어졌었다. 신탄진 방향으로 북쪽마을은 아랫말, 회덕방향으로 남쪽마을은 동구말 그리고 중심이 되는 마을은 웃말이라 부른다. 뒷산 밑이 기와집마을이다. 들말에는 전체 총 30∼40호 정도가 있었는데, 그 가운데 충주박씨가 가장 대성으로 30호 정도이었으며, 순창설씨 5∼6호, 기타 안동김씨, 고령신씨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따라서 들말은 충주박씨의 집성촌이라 할 수 있다. 현재 들말은 대전·신탄진 사이 중간지점에 위치한 들판으로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전원적인 마을이었다. 그러나 최근 대전·신탄진간의 국도가 4차선을 확장되고 교통이 좋아지면서 대형차동차 매매소 등이 들어와 있다. 들말의 대성인 충주박씨는 고려말부터 조선 초까지 도마동에 세거하였던 충주박씨 9세 박소의 외가인 합천이씨가 회덕에 거주하는 연유로 이곳에 입향하게 되었다. 따라서 충주박씨는 은진송씨와 더불어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성씨 중에 하나이다. 순창설씨도 와동에 세거한 성씨 가운데 오래된 성씨의 하나이다. 순창설씨가 와동에 입향하게 된 것은 충주박씨와 혼인관계가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짐작된다. 그리고 들말에는 예전에 은행나무정자가 있었는데 은행나무는 열아름 세뼘 정도가 되었는데 경부선이 부설되면서 베어 버렸다. 그후 동네사람들은 이 때문에 동네가 발전하지 못하였다고 생각하고 있다.


  • ○ 동구말(동구촌) : 회덕 과선교에서 북쪽, 대추마루와 바탕골 사이에 있는 마을이다. 옛날에 들말의 입구에 마을이 있다해서 이를 동구말이라 불렀다. 동구말에도 충주박씨 7∼8호만이 세거하였던 충주박씨 집성촌이었다.


  • ○ 오얏골(왯골, 왓골, 와곡 瓦谷, 와동 瓦洞) : 오얏골은 와동주공아파트 입구와 회덕 과선교 사이로 회덕역 동쪽의 안동네를 말한다. 옛날 이곳에 와가가 있었기 때문에 왓골이라 불렀다고도 하며, 옛날에 이곳에서 기와를 구워서 왓골이라 부른다고도 한다. 현재는 오얏골 동네 가운데 있던 산을 깎아 내려 대지를 조성하고 현대아파트를 건설하면서 옛날 오얏골 마을은 대부분은 없어졌다. 따라서 현재 현대아파트 위치가 예전의 오얏골 자리이다. 오얏골 마을에는 모두 40∼50호 정도가 거주하였는데 그 가운데 진주강씨가 대성으로 승지공파 후손들이 약 15호 정도로 집성촌을 이루고 있었고, 순창설씨도 4∼5호 정도 있었다. 와동 주공아파트는 예전에 논이 있던 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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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동의 세거성씨
  • ○ 충주박씨(忠州朴氏) : 충주박씨가 이 지역에서 세거하기 시작한 것은 충주박씨의 시조로부터 8세가 되는 박광리에서 부터이다. 박광리가 대전지역에 입향하게 된 계기는 그의 처가가 유등천 상류에 살던 합천이씨이었던 것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즉 합천이씨는 두문동현인으로 알려진 이춘계의 고조인 이신손이 충청방호사를 역임한 것을 계기로 유등천 지역에 입향하였던 고려말의 권문세족이다. 그런데 이춘계의 사위가 충주박씨로 회덕의 입향조이었던 박광리였다. 따라서 충주박씨가 현 대전지역에 입향하게된 계기는 처향을 따라 입향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런데 박광리가 대전지역에 입향한 것이 정확히 언제인지 알 수 는 없다. 그러나 박광리의 첫째 아들 박진의 출생 년대가 고려 공민왕 15년(1366)인 것으로 보아 14세기 이후의 일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대전지역에 입향한 충주박씨는 판서공파에 속한다.

  • 대전지역에 입향한 박광리는 두 아들을 두었는데 첫째 아들 박진의 묘가 서구 도마동에 있다. 현재 도마동에 세거하였온 충주박씨들은 모두 박진의 후손들이다. 박광리의 둘째 아들 박소는 회덕의 입향조이다. 소가 회덕에 입향한 정확한 연유는 알 수 없으나 그의 묘가 회덕 서면 문지동(유성구 문지동)에 있는 것으로 보아 충주박씨가 14세기부터 회덕에 세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회덕에 세거한 충주박씨는 모두 박소의 후손들이다. 이후 박소의 후손들이 번성하여 그 일파가 전라남도 광주에 세거하고 있다. 광주에 세거한 박소의 후손들로 가장 현창한 인물은 중종·명종 때 영의정을 지낸 사암 박순을 꼽을 수 있다.


  • ○ 순창설씨(淳昌薛氏) : 순창설씨의 시원은 신라의 6부 촌장의 한 사람이었던 명활산 고야촌장 호진(일명 거백)이다. 그후 유리왕이 6촌을 6부로 개칭하고 촌장들에게 사성함에 따라 명활산 고야촌이 습비부로 고쳐지고 설씨가 되었다. 습비부가 후에 경주에 속하게 되어 경주를 본관으로 하였다. 후에 36세 설자승이 고려 인종 때 예부시랑으로 순화백(순창)에 봉해짐으로써 그의 후손들을 순창설씨라 하였다. 순창설씨가 와동에 입향하게 된 것은 충주박씨와 혼인관계가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짐작된다. 와동에 세거를 시작한 설광린의 생몰년이 1603년(선조 36)∼1684년(숙종 10)이었던 것으로 보아 17세기 초기를 지난 어느 시기에 회덕에 입향하였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리고 순창설씨의 회덕 입향은 회덕의 입향조로 알려진 52세 설사도의 처가 충주 박유의 딸이었던 점으로 보아 처향과 관련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와 관련하여 후손들과 충주박씨들도 처향과 관련하여 입향하였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리고 순창설씨가 회덕 입향 전에 세거하였던 곳은 입향조 설사도의 부친이었던 51세 설광린과 설광린의 장자의 묘가 충북 보은군 회남면 사음리에 있었던 것으로 보아 이곳과 관련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나 구체적인 것을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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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동의 옛 지명
  • ● 가마솥바위산(가마바위) [산] : 동막골에서 동쪽, 와동과 장동의 경계부근 상봉에 가마솥 모양의 바위가 있어 이를 가마솥바위산이라 부른다.

  • ● 남월(나무골, 나멀, 목동) [마을] : 회덕중학교에서 북동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에 이 마을 입구에서부터 버드나무가 많이 있었기에 나무골, 목동이라고 부른다. 또 이것이 변하여 남월, 나멀이라고도 한다.

  • ● 대추마루 [들] : 회덕인터체인지에서 북쪽에 있는 들을 말하는데 동구말에서 서남쪽에 위치해 있다. 옛날에 대추나무가 많아 대추마루라 불렀으며 이 곳에 몇 가구가 있었으나, 현재는 대추나무도 없고 집도 없으며 다만 대추마루를 중심으로 경부고속도로가 놓여있을 뿐이다.

  • ● 덕암사(덕절) [사찰] : 동막골과 바탕골 사이에 위치해 있는 절로 1959년에 건립되었고 절 옆에 큰 바위가 있다. 덕암사는 덕림사로 바뀌었다.

  • ● 덕절 [마을] : 동막골과 바탕골 사이에 위치한 덕암사 아래에 있는 마을을 덕 절이라 부른다. 덕암사는 현재는 덕림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 ● 덕절골 [골] : 덕절이 있는 골짜기를 덕절골이라 한다.

  • ● 던바위골 [골] : 남월과 덤바위산 사이로 이 골짜기에 덤바위가 있어 던바위골이라 한다.

  • ● 덤바위산(덕암바우산, 덕암산) [산] : 남월마을에서 동쪽에 있는 산인데 이 산 중턱에 덕암이라는 바위가 있어 덤바위산라 부르며 이 산봉우리는 와동과 장동의 경계가 된다.

  • ● 덕암바위(덕암) [바위] : 덤바위산 중턱에 있는 바위로 이 바위가 매우 덕이 있다하여 덕암이라 부른다.

  • ● 동구말(동구촌) [마을] : 회덕 과선교에서 북쪽, 대추마루와 바탕골 사이에 있는 마을로 옛날에 들말의 입구에 마을이 있다하여 동구말이라 부른다.

  • ● 동막골 [골] : 지금의 주유소가 있는 골짜기로 마을의 입구에 동산이 있는데 이것이 동네 길을 막고 있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옛날에는 1가구가 거주하였다.

  • ● 뒷금말(뒤검말) [골] : 황새봉에서 서쪽, 텃골과 부엉굴 사이에 위치해 있는 마을인데 동네에서 보면 뒤쪽 끝에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옛날에는 1가구가 살았다.

  • ● 뒷산 [산] : 아랫말에서 보면 동쪽, 황새봉에서는 남쪽에 있는 마을로 들말부락이 서쪽을 향하고 있어, 이 마을의 뒤쪽은 산이다. 그러므로 마을 뒤에 산이 있다 하여 뒷산이라 부른다. 이 산 능선이 와동과 장동의 경계가 된다.

  • ● 들말(평촌) [마을] : 회덕 과선교에서 베룩산 사이에 있는 마을을 들말이라 하는데 들에 있는 마을이라 해서 들말 또는 평촌이라 한다. 이 지역은 세 마을로 이루어지고 있다. 신탄진 방향으로 북쪽마을은 아랫말, 회덕방향으로 남쪽마을은 동구말 그리고 중심이 되는 마을은 웃말이라 부른다.

  • ● 들말들 [들] : 웃말에서 서쪽에 있는 들을 말하며, 들말부락 앞에 들이 있어 들말들이라 부른다. 현재는 이 들말들을 중심으로 하여 경부고속도로가 놓여 있다.

  • ● 목동[마을] : 옛날에 총술원이 있던 마을로 왯골 남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 ● 바탕골 [골] : 동구말에서 동쪽, 동막골에서 북쪽, 덕절 너머 장동 쪽의 골짜기이다.

  • ● 베룩산(벼룩산) [산] : 와동과 상서동의 경계 부근에 경부고속도로와 갑천 사이에 위치해 있는 산이다.

  • ● 부엉굴(범골) [골] : 아랫말과 뒷산사이에 있는 골짜기로 옛날에 부엉이가 많이 울어서 부엉굴이라 하였고 일설에는 바위가 범의 머리가 입을 벌리고 있는 것처럼 생겨서 범골이라고도 하였다.

  • ● 샘뱀이 [들] : 아랫말과 텃골 사이에 있는 들로 들 가운데에 샘이 있어 이를 샘뱀이라 부른다.

  • ● 석천약수터 [약수] : 찬샘골에 약수터가 있는데 바위틈에서 물이 나온다고 해서 석천약수터라 부른다.

  • ● 선바위고개 [고개] : 베룩산 밑 동쪽에서 시작하여 상서동 선바위 마을까지를 말하는데 이 고개 옆에 바위가 많이 있고 그 바위 이름이 선바위이기 때문에 선바위고개라 한다. 현재는 이 도로가 4차선으로 확장되어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다.

  • ● 수멍돌이 [들] : 웃말에서 서쪽, 들말들과 짐대마루 사이에 있는데 이 들에 물이 많기 때문에 수멍돌이라 부른다. 일설에는 동네의 하수가 흘러 들어가는 곳이라 하여 수멍돌이라 한다.

  • ● 오얏골(왯골, 왓골, 와곡, 와동) [마을] : 와동주공아파트 입구와 회덕 과선교 사이를 말한다. 옛날 이곳에 와가가 있어 왓골, 기와를 굽던 기와가마가 있다하여 왓골이라 하였다. 또한 진주강씨가 이곳에서 살았는데 그 집에 큰 오얏나무가 있어 오얏골이라 부르던 것이 변하여 왯골이 되었다 한다.

  • ● 오얏골들 [들] : 오얏골에 있는 들로 현대아파트와 회덕우체국 사이에 있다. 현재 이곳은 행정상 신대동에 속한다.

  • ● 와동제방 [둑] : 대추마루들과 갑천사이의 둑을 말한다.

  • ● 장동고개(장고개) [고개] : 장동 입구에서 시작하여 뒷산과 가마솥바위산을 연결하는 능선과 교차되는 곳까지를 말하는데 옛날에 이 고개를 이용하여 장을 다녔기 때문에 이를 장고개라고도 한다. 또 장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장동고개라고 한다.

  • ● 짐대마루(진펄동네) [들] : 아랫말에서 서북쪽, 들말들과 베룩산 사이가 된다. 예전에는 갑천이 이곳으로 흘러 진흙이 많은 곳이라 하여 진펄마루라 하였다.

  • ● 찬샘골 [골] : 돈소재와 수자원공사 사이로 이 골짜기 바위에서 찬물이 나온다고 하여 찬샘골이라 부른다.

  • ● 텟골 [골] : 베룩산 동쪽, 경부선 철도 건너 아랫말의 북쪽에 있다.

  • ● 황새봉 [산] : 뒷산에서 서북쪽, 뒷검말에서 동북쪽에 있다. 산의 모양이 황새처럼 생겨서 황새봉이라 하며 황새가 우렁을 찍는 모양이 있는 곳에 묘를 쓰니 손자가 돌을 맞아서 눈을 다쳤다 한다.

  • ● 휑계 [들] : 삼일화학 공업사에서 북서쪽 부근을 말하는데 터의 모양이 황계가 훼를 치고 우는 형국이라 휑계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