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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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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덕문화원 작성일19-04-25 11:46 조회19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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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on_arrow.gif법동(法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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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동의 입지와 자연환경
  • 법동은 지리적으로 대덕구 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송촌동과 동구 효평동, 남쪽은 중리동, 서쪽은 읍내동, 북쪽은 장동과 인접해 있다. 법동의 동북쪽에 계족산과 매봉의 높은 산, 깊은 골짜기에 찬 샘물이 솟아나 법천동이라 하였다 한다. {회덕읍지}에 "법천동(法泉洞)은 법천사 밑에 있으며 암석이 널찍한데 둘레가 수십보이고 개울물이 돌 위로 흐른다. 법천석종(法泉石淙) 4글자가 암석면에 새겨져 있는데 문정공 송준길의 글씨다" 라고 기록된 것을 볼 때 법천동이 법천사 밑에 있었고, 바위 위로 물이 흐르던 곳임을 알 수 있다. 그 후에 법천동이 법동으로 되었다 하며, 또한 법동에 범적골이라는 동네가 있었는데 이 마을 동쪽으로는 높고 험한 산이 있었다. 이산의 산제당의 형상이 호랑이 형이라서 범적굴이라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본래는 법동이 아니고 범동인데, 이것이 변하여 법동이 되었다고도 한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한다. 조선초에 송유의 어머니 류씨부인이 22살의 젊은 나이에 홀로 되어 4살 난 아들(송유)을 업고 개성에서부터 시댁인 회덕까지 천리길을 호랑이의 안내를 받으며 왔다고 하는데, 이 곳이 바로 호랑이가 유씨부인을 안내하여 넘어온 곳이라 하여 마을 이름을 범골이라 하였고, 뒤에 법동으로 가차하여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 법동 지역은 응봉산과 계족산, 성재산 등 높은 산과 깊은 골짜기에서 발원하는 법동천이 흐르고 있어 그 주위에는 넓은 농경지가 분포하고 있었다. 예전에는 농업을 주로하는 조용한 농촌이었으며 논과 밭이 계족산 줄기 골짜기를 따라 잘 발달된 곳이었다. 그러나 법동은 1960년대 경부고속도로가 지나게 되면서 경부고속도로 서쪽은 점차 택지로 개발되어 현재와 같은 아파트 밀집단지가 되었고, 경부고속도로 동쪽은 계족산 줄기의 산악지역으로 개발제한 구역이라서 자연경관이 잘 보존되어 왔다. 도시화된 남서쪽지역은 근래에 아파트단지로 개발된 지역이다. 따라서 아파트단지의 조성비율이 98%이상으로 완전히 아파트촌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법동에는 동부경찰서·동부소방서·대전지방국세청 등의 행정기관들이 들어서 있다.


  • 1970년대 중반 경 만하여도 법동은 멀리 계족산을 뒤로 하고 있는 작은 농촌이었다. 그러던 것이 인근의 대화동·읍내동 지역에 공업단지가 건설되면서 이주민이 늘어나기 시작하자 농촌마을이었던 범천골에 아파트단지가 조성되고 많은 인구가 유입되어, 예전의 마을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법동의 토지이용 실태를『'99통계연보』에 의해 살펴보면 총 2,634,048㎡ 중에서 전(田)이 115,065㎡로 4%, 답(畓)이 106,901㎡로 4%, 임야가 1,410,814㎡에 54%, 대지가 564,136㎡에 21%이며 기타 도로·하천·철도용지 등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사실은 현재 법동이 개발제한구역인 임야와 경부고속도로 서남쪽의 도시화된 지역으로 대별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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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동의 연혁
  • 법동지역은 백제 때는 우술군이었다가, 신라시대에는 비풍군으로 개명하였고, 그 밑에 유성현과 적오현(뒤에 덕진현)을 그 속현으로 두었다. 고려초기에는 비풍군을 회덕현으로 읍호를 바꾸었고, 현종 9년(1018)에는 공주부의 속현으로 귀속되었다. 그런데 고려시대에 유성현과 덕진현이 공주의 속현이었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현종 9년 군·현의 개편시 유성현과 덕진현이 회덕의 속현에서 벗어나 공주의 속현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후 회덕현은 명종 2년(1172)에 처음으로 감무(조선시대의 현감과 같음)를 두게 됨에 따라 주현으로 승격하였다.


  • 조선초기 태종 13년(1413)에 전국을 8도제로 개편하면서, 행정구역을 서울→도→ 주·부·군·현→면(방·사)→리(동·촌) 체제로 편성하였다. 이에 따라 회덕은 충청우도 공주목에 속하는 종6품의 현감이 다스리는 회덕현이 되었다. 이와 같이 8도제의 실시와 더불어 소현의 병합이 이루어졌는데 이때 유성현이 폐지되면서, 그 영역이 회덕현과 진잠현에 속하게 되었다.


  • 정조 13년(1789)의 {호구총수}에 의하면 지금의 법동은 회덕현 현내면 법천리(法泉里)로 기록되어 있었음을 볼 때 조선중기에 이미 법천리(법동의 옛 이름)라는 행정구역과 지명이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 조선후기 고종 32년(1895) 갑오개혁으로 인한 행정구역의 개편으로 태종이래 실시되었던 8도제가 폐지되고, 전국에 23부제를 실시하면서 종래의 부·목·군·현 등의 지방행정 단위를 모두 폐합하여 336개 군을 신설하고 이를 23개의 부에 속하게 하였다. 이로서 회덕현은 공주부에 속하는 27개 군의 하나인 회덕군으로 개편되었고, 이에 법동(法洞)도 회덕군 내남면 법천리가 되었다. 이 당시 회덕의 구역은 기존의 회덕 7개 면(현내면, 동면, 외남면, 내남면, 서면, 근북면, 일도면)에 공주군의 5개 면(천내면, 유등면, 탄동면, 구즉면, 산내면)과 청원군 주안면이 편입되어 이전보다 크게 행정구역이 확대되었다.


  •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회덕군과 진잠군이 통합되어 대전군으로 되면서 법동은 법동 일부가 떨어져 나와 대전군 내남면 법동리로 되었다. 1931년에는 대전군 대전면이 읍으로 승격하여 대전군 1읍 11개 면으로 되었고 1935년에 대전읍이 대전부로 승격됨에 따라 대전부와 대덕군으로 분리되었는데 이 때 법동은 대덕군 내남면 법동리가 되었다. 1983년에는 대전시 영역확장에 따라 법동은 대전시 동구에 소속되었다가 1989년 1월 1일 대전시가 직할시로 승격됨에 따라 대덕군의 폐지와 동시에 대덕구가 설치되면서 법동은 대덕구에 속하게되었다. 현재의 법동은 대전광역시 대덕구에 소속 된 행정동이면서 법정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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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동의 전통마을과 씨족
  • ○ 범샛골(범적골, 법동 法洞) [마을] : 뒷들에서 남쪽에 있는 큰 마을이었으나, 현재는 도시개발로 인하여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즉 법동보람아파트 북쪽, 법동초등학교, 삼익소월아파트 북쪽이 범샛골마을에 해당된다. 한마음아파트에서 남쪽으로 4차선도로 건너가 된다. 이 마을 동쪽으로는 높고 험한 산이 있다. 산제당의 형이 호랑이형이라서 범적굴이라고 하는데, 본래는 법동이 아니고 범동인데 이것이 변하여 법동이 되었다 한다. 혹은 범적골이라 하였는데 한일합방 후 법동으로 바뀌었다고 도 한다. 범샛골에는 해방 전까지 약 110호 정도 되는 마을이 있었고 그 가운데 김해김씨 10호, 전주최씨 10호, 영양천씨가 10호, 천안전씨가 6∼7호, 전주이씨가 5∼6호 이었고, 나머지는 기타 각성들이 거주하였다.

법동의 세거성씨
  • 법동은 해방 전 까지만 하여도 약 110호가 거주하던 큰 마을이었다. 이 마을에는 김해김씨 10호, 전주최씨 10호, 영양천씨가 10호, 천안전씨가 6∼7호, 전주이씨가 5∼6호 이었고, 나머지는 기타 각성들이 거주하였다. 그런데 이들이 법동에 입향한 시기는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이 마을에서는 김해김씨·전주최씨·영양천씨 등이 비교적 오래 세거한 성씨들이었다 한다. 그런데 이들의 입향 시기가 언제인지 정확하지 않다. 영양천씨의 후손 천유흠씨의 증언에 의하면 영양천씨가 약 5대째로 약150년을 세거하였고, 오래 세거하였다고 말하는 다른 성씨들도 대체로 비슷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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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동의 옛 지명
  • ● 고래장골(고려장골) [골] : 매봉골과 법동저수지 사이로 옛날에 이 골짜기에 고려장이 많아서 고려장골, 고래장골이라 부른다. 현재도 묘가 있다.

  • ● 까죽남배기(까죽나무배기, 가죽남배기) [들] : 산소골과 경부고속도로 사이에 있다. 옛날에 이 들에 개가죽 나무가 많이 있어 이를 가죽남배기, 까죽남배기라고 하는데 본래는 가죽나무배기이다.

  • ● 느티나무굴멍(느티나무구렁) [골] : 큰소롱골과 질마고개 사이로 옛날에 절터였다. 이곳에 느티나무가 있어 느티나무굴멍이라고 한다.

  • ● 돌고개(독고개, 길막고개) [고개] : 느티나무굴멍에서 동쪽, 산 능선에 있는 고개이다. 법동에서 장동 산디마을로 넘어가는 고개로 절고개와 계족산 사이에 있다. 이 고개에 돌이 많기 때문에 돌고개, 독고개라 한다. 또한 이 고개는 길이 막힐 정도로 험하다고 하여 길막고개, 질막고개라고도 한다.

  • ● 돈돌배기(돈돌막) [들] : 뒷들과 동산너머 사이로, 현재는 한마음아파트 부근이다. 옛날에 논가에 큰 바위가 박혀 있었는데, 그 바위의 모양이 마치 돈대를 짊어진 형상이라 이를 돈돌배기 또는 돈돌막이라 불렀다. 돌을 대전지역 방언으로 독, 돌막 이라 한다.

  • ● 동산너머 [들] : 범샛골과 무너머고개 사이로 현재는 삼익소월아파트에서 바로 북쪽이 된다. 범샛골 마을에서 동쪽으로 바라보면 낮은 산이 있는데, 이 산 너머에 들이 있다 하여 동산너머라고 부른다.

  • ● 뒷들 [들] : 범샛골마을과 화당이 사이에 있다. 범샛골 마을의 북쪽, 즉 이 마을 뒤에 들이 있다하여 이를 뒷들이라고 한다.

  • ● 매봉(응봉) [산] : 법동에서 동쪽, 계족산과 비래동의 망바위 사이에 있다. 산봉우리가 영특하고 수려하여 마치 매와 같아 이를 매봉산 또는 응봉산이라고 부른다.

  • ● 무너머 [고개] : 동산너머와 산소골 사이에 있다. 법동저수지 쪽에서 산소골로 흐르는 물이 고개를 넘어간다고 하여 무너머고개라고 부른다.

  • ● 박파대굴멍(박파대구렁) [골] : 소룡골과 부첫골 사이에 있는 골짜기이다.

  • ● 범바위(호암) [바위] : 산소골과 무너머고개 사이에 있다. 옛날에 계족산에 호랑이가 엎드린 명당, 즉 복호형이 있다고 하여 이를 범바위 또는 호암이라고 한다.

  • ● 범샛골(범적골, 법동) [마을] : 뒷들의 남쪽에 있는 큰 마을이었으나, 현재는 도시개발로 인하여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지금의 보람아파트 동북쪽, 법동초등학교, 삼익소월아파트 북쪽이 범샛골 마을에 해당된다. 이 마을 동쪽으로는 높고 험한 산이 있고 산제당의 지형이 호랑이형이라서 범적골이라 고도하며 본래는 법동이 아니고 범동인데 이것이 변하여 법동이 되었다.

  • ● 법동내 [내] : 한마음아파트의 남쪽에 있다. 법동저수지에서 흐르는 물이 범샛골 마을 한가운데로 흐르기 때문에 이를 법동내라고 부른다. 현재는 복개되어 있다.

  • ● 법동들[들] : 범샛골과 화댕이 사이의 들을 법동들이라 하는데 범샛골에 들이 있으므로 이를 법동들이라고 부른다.

  • ● 법동저수지(법동소류지) [못] : 매봉산에서 서쪽으로, 부첫골과 산소골 사이에 있다. 이 저수지는 약수굴에서 내려오는 물과 소롱골에서 내려오는 물을 담수 한 것인데, 옛날에는 이 물을 이용하여 법동들의 농사를 지었고, 저수지가 법동에 위치하고 있어 법동저수지라고 부른다. 또 물의 흐르는 양이 적음에 따라 담수량도 적기 때문에 소류지라고 한다.

  • ● 베락골(벼락골, 베락수골) [골] : 삽작골에서 산 위쪽으로, 증척골과 약수골 사이에 있다. 옛날에 이 골짜기가 벼락을 맞았다고 해서 이를 벼락골 또는 베락골이라고 부른다.

  • ● 부첫골(보첫골) [골] : 법동저수지와 소롱골 사이에 있다. 옛날에 이 골짜기에 부처가 있어, 이를 부첫골 또는 보첫골이라고 부른다.

  • ● 비선거리 [들] : 범샛골 마을과 삽작골 사이에 위치하여 있고 옛날에 이곳에 비석이 3개가 서있어 비선거리라 부른다.

  • ● 산솟골(산소골) [골] : 범바위가 있는 골짜기로, 법동저수지와 소록골 사이에 있다. 이 골짜기에 산소(묘)가 많다고 해서 이를 산소골이라 부른다.

  • ● 산제당[제] : 범샛골과 동산너머 사이의 산 중턱에 있다.

  • ● 삽작골(삽잡골, 삽줏골) [골] : 베락골과 경부고속도로 사이에 있다. 옛날에 이 골짜기에서 한약재로 쓰이는 삽주(백출, 창출)가 많이 나서 이를 삽줏골, 삽작골, 삽잡골이라 한다. 옛날에는 5가구가 살고 있었는데, 경부고속도로가 생기면서 없어졌다. 현재 집터는 밭으로 바뀌었다.

  • ● 샘실골(샴실골) [골] : 한촌에서 북쪽, 현재 중리주공아파트 1단지와 2단지 사이가 된다. 이 골짜기에 샘이 있어 이를 샘실골이라 하는데 지금도 약수터가 있다.

  • ● 석장승 [장승] : 법동사거리에서 보람아파트 입구 양쪽에 있다. 대전의 장승 중 가장 오래된 것이며 장승으로는 유일한 문화재이다.

  • ● 소록골(소롱골, 소로곡, 소릿골) [골] : 범샛골과 소리고개 사이에 있다. 현재는 그린타운아파트의 부근이 소록골이다. 범샛골에서 남동쪽으로 소리고개가 있는데, 이 사이의 골짜기를 소리고개의 이름을 따서 소릿골, 소롯골이라 부른다. 이 골짜기는 큰소롱골과 작은소롱골로 나눠진다.

  • ● 약수골 [골] : 탑거리평전과 법동저수지 사이에 있다. 이 골짜기에 약수터가 있어 이를 약수골이라고 하며, 이 골짜기의 지형이 서출동류형이라서 약수가 나온다고 한다. 현재도 인근주민들이 이 약수터를 이용하고 있다.

  • ● 용두골 [골] : 부첫골에서 북쪽, 고래장골에서 서쪽에 있다. 이 골짜기의 모양이 용의 머리와 같이 생겼다고 해서 이를 용두골이라고 부른다.

  • ● 작은소롱골 [골] : 고래장골에서 매봉산 쪽으로 있다. 소롱골은 큰소롱골과 작은소롱골로 나누어지는데, 큰소롱골은 고래장골에서 돌고개 사이가 되고, 작은소롱골은 고래장골에서 매봉산 사이가 된다. 골짜기의 크기에 따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 ● 장군바위(장군암) [바위] : 큰소롱골 입구에 있다. 투구같은 큰 바위에 장군이 책을 펴놓은 자리와 앉은자리도 있고 또 손·무릎·발의 자국도 있다. 현재도 이 바위가 있다.

  • ● 정문재 [고개] : 효녀 정문에서 바로 남쪽에 있는 낮은 고개이다. 이 고개 부근에 효녀 정문이 있기 때문에 이를 정문재라고 부른다.

  • ● 즘절(점절) [들] : 범샛골과 화루박게 사이에 있다. 현재의 보람아파트 부근이 된다. 들 가운데 점을 보아주는 절집이 있었다 하여 이곳을 점절들이라 한다.

  • ● 증척굴(종척굴) [들] : 삽작골에서 북서쪽, 읍내동 뒷골에서 동남쪽에 있다.

  • ● 큰소롱굴 [골] : 고래장골과 돌고개 사이에 있다. 소롱골 중에서 골짜기가 크기 때문에 이를 큰소롱골이라 한다.

  • ● 탑거리편던(탑거리버덩) [평전] : 약수골에서 산등성이 쪽으로 있다. 이 평전(평평한 밭=편던=버덩)에 탑이 있었으므로 이를 탑거리편던이라 한다.

  • ● 화댕이(화당이, 학댕이) [들] : 한마음아파트에서 북쪽에 있다. 옛날에 서당이 있어서 유래되었다.

  • ● 화루박게(화루박기) [들] : 점절에서 남쪽, 효녀 정문에서는 북쪽에 있는 들로 옛날에는 들이었으나 현재는 주택이 들어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