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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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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덕문화원 작성일19-04-25 11:51 조회15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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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on_arrow.gif비래동(比來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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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래동의 입지와 자연환경
  • 비래동은 지리적으로 대덕구 동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동구 비룡동과 추동, 남쪽은 동구 가양동, 서쪽은 송촌동, 북쪽은 동구 효평동에 인접해 있다. 비래동은 마을 북동쪽 골짜기에 비래암이라는 암자가 일찍부터 있었으므로, 비래암의 아래에 자리한 마을이라 하여 마을 이름도 비래리라 하였다. 일설에는 꿩이 매에게 쫓겨 이 곳에 날아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리고 비래리에 대한 표기를 현재는 비래리(比來里)라 쓰고 있는데 비래(飛來)가 비래(比來)로 바뀌게된 시기는 일제시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로 볼 수 있는데 바뀐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당시 무지한 행정서기가 쉬운 비(比)자를 골라 기록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예전의 비래리는 응봉산 남쪽, 백두산 서쪽으로 골짜기를 따라 발달한 마을이었다. 이곳 주민들은 산아래 계곡을 끼고 비교적 잘 발달한 논밭을 경작하여 생활하였다. 옛날 비래리에는 비럭골·새터·댕이 등의 자연촌락이 있었다.


  • 현재의 비래리는 1969년도 경부고속도로의 개통과 대전의 급격한 시세의 확장으로 크게 변모하였다. 비래리는 경부고속도로의 개통으로 고속도로에 의하여 동서로 양분되었다. 경부고속도로 동쪽의 비래본동(원비래)은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되어 옛날의 주변환경은 물론 500여 년을 이어온 고성이씨 동족부락도 잘 남아 있다. 그러나 경부고속도로 서쪽은 도시화되어 더 이상 옛날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옛날의 신촌(새터)지역은 지금은 금성백조아파트가 들어서 있고, 댕이지역은 현대·삼호·삼익아파트 등이 들어서 있다. 기타 지역도 대전시의 급속한 팽창으로 지금은 도심과 연결된 주택가가 되어 있어 예전의 마을 모습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 현재의 비래동의 토지이용실태를 대덕구에서 발행한 『'99통계연보』를 통해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총 3,441,100㎡의 면적에 전(田)이 99,062㎡으로 3%이고, 답(畓)이 70,705㎡로 2%이며, 임야가 2,181,567㎡로 63%이고, 대지가 552,430㎡로 16% 이며 기타 도로 등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사실은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비래동은 경부고속도로가 남북으로 지나 동서로 양분되면서 비래동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동쪽이 임야로, 개발제한구역인 것과 경부고속도로 서쪽은 거의 대부분이 대지로 개발 된데 기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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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래동의 연혁
  • 비래동 지역은 백제시대에는 우술군이었다가, 신라시대에는 비풍군으로 개명하였고, 그 밑에 유성현과 적오현(뒤에 덕진현)을 그 속현으로 두었다. 고려초기에는 비풍군을 회덕현으로 읍호를 바꾸었고, 이후 현종 9년(1018)에 공주의 속현이 되었다. 그런데 {고려사} 지리지에 회덕현과 더불어 유성현과 덕진현이 공주의 속현이었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현종 9년의 군·현의 개편시에 유성현과 덕진현이 회덕의 속현에서 벗어나 공주의 속현이 되었던 것이라 생각된다. 그후 회덕현은 명종 2년(1172)에 처음으로 감무(조선시대 현감과 같음)를 두게 되어 주현으로 승격하였다.


  • 조선초기에 태종 13년(1413)에 전국을 8도제로 개편하면서, 행정구역을 서울→도→주·부·군·현→면(방·사)→리(동·촌) 체제로 편성하였다. 이에 따라 회덕은 충청우도 공주목에 속하는 종6품의 현감이 다스리는 회덕현이 되었다. 이와 같이 8도제의 실시와 더불어 소현의 병합이 이루어졌는데 이때 유성현이 폐지되면서 그 영역이 회덕현과 진잠현에 속하게 되었다.


  • 정조 13년(1789)의 {호구총수}에 의하면 지금의 비래동이 회덕현 현내면 비래동리(飛來洞里)로 기록되어 있음을 볼 때 조선중기에 이미 비래동리라는 행정구역과 지명이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 조선후기 고종 32년(1895) 갑오개혁으로 인한 행정구역의 개편으로 태종이래 실시되어왔던 8도제가 폐지되고 전국이 23부제를 실시하면서, 종래의 부·목·군·현 등의 지방행정 단위를 모두 폐합하여 336개 군을 신설하고 이를 23개의 부에 속하게 되었다. 이로서 회덕현은 공주부에 속하는 27개 군의 하나인 회덕군으로 개편되었고, 이에 비래동도 회덕군 내남면 비래리가 되었다. 이 당시 회덕의 구역은 기존의 회덕의 7개 면(현내면, 동면, 외남면, 내남면, 서면, 근북면, 일도면)에 공주군의 5개 면(천내면, 유등면, 탄동면, 구즉면, 산내면)과 청원군 주안면이 편입되어 이전보다 크게 행정구역이 확대되었다.


  •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회덕군과 진잠군이 통합되어 대전군으로 되면서 비래동은 대양리·신촌·비래리 각 일부를 합쳐서 대전군 내남면 비래리로 개편되었다. 그런데 비래리에 대한 표기가 조선 영조 때 『호구총수』에는 비래동리(飛來洞里)에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에는 비래리(比來里)로 한자표기가 바뀌었다. 아마도 이러한 사실은 특별한 어떤 사연이 있어서 바뀐 것이 아니라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구역 개편시의 오기에 의해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한다. 1935년 대전읍이 부로 승격됨에 따라 대전군이 대전부와 대덕군으로 분리되었는데, 이때 비래동은 대덕군 내남면 비래리가 되었다. 1983년 2월 15일에는 대전시 지역 확장에 의한 개편에 따라 대전시 동구 비래동이 되었고 1989년 대전직할시의 확장에 따라 대덕군이 폐지되고 대덕구가 신설되자 비래동은 대덕구에 편입되었다. 1994년에는 대덕구 비래동의 일부(흥룡)지역이 동구 가양동으로 편입되었다. 현재 비래동은 법정동이고, 행정동은 회덕2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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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래동의 전통마을과 씨족
  • ○ 비래골(비래리, 비래본동, 비럭골, 원비래) : 중심마을은 고성이씨의 동족마을인 원비래(元比來)이다. 이는 이웃에 마을이 생기자 이 곳이 원래의 비래마을이라 하여 원비래라 부르게 된 것이며, 비래리는 경부고속도로 대전인터체인지와 비래암 사이에 있는 마을로 비래리의 골짜기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어 비래골이라고도 하였는데 비래골이 세월이 지나면서 음이 변하여 비럭골이라 하였다. 또 일설에는 거지들이 이곳에 와서야 비로소 밥을 빌어먹을 수 있었다 하여 비럭골이라 하였다고 한다.

  • 이 마을에 가장 먼저 들어온 사람들이 마을입구에 심었다는 약 500여년 된 느티나무 두 그루가 지금도 있어 마을의 고풍스런 운치를 더하여 주고 있다. 특히 이 마을은 고성이씨 집성촌으로 고성이씨가 이 지역에 입향하여 동족마을을 이룬 이래로 50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동족부락을 유지하고있는 보기 드문 마을이다. 고성이씨 40호 정도가 살았다.


  • ○ 새터(新村 신촌) : 새터는 경부고속도로 대전인터체인지 요금징수소와 진마루등에서 바로 남쪽에 위치한 마을이다. 원비래에서 분촌하여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하여 새터 또는 신촌이라 불렀다. 진마루등은 경부고속도로 대전인터체인지 요금징수소에서 검문소까지의 남쪽 산등성이를 말한다. 지형상 산등성이가 길다하여 긴마루 등, 진마루등이라 하였는데, 이곳에 몇 가구가 거주하였다. 새터는 고성이씨 집성촌으로 대략 고성이씨 20∼30호가 거주하였다.


  • ○ 대양(대양리, 댕이) : 대양은 새터에서 동남쪽, 가양공원 입구 쪽으로 있는 마을이다. 옛날에는 대양 또는 대양리라 부르던 것을 지금은 댕이라고 부른다. 옛날에는 마을 앞으로 내가 흐르고 있었으며, 집들이 내를 따라 동서로 길게 늘어서 있는 배산임수형 마을이었다고 한다. 또한 마을의 형성과 관련하여서 '역주골’이라는 전설도 전한다. 총 5∼6호 정도이었고, 이 가운데 고성이씨는 3호 정도이고 기타 성씨가 2∼3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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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래동의 세거성씨
  • 고성이씨(固城李氏) 시조(始祖)는 고려 ‘덕종(德宗)’때 문과급제 후 밀직부사와 호부상서에 올라 철령군(鐵嶺君) 봉호를 받으신 ‘황(璜)’이시다.

  • 중흥조인 7세 문희공(文僖公) ‘존비(尊庇)’는 고려 ‘충렬왕’ 7년 일본징벌 삼도도순문사(三道都巡問使)(별정직 군사령관), 진현관대제학, 판밀직사사를 지내시고, 산소는 대청댐 옆 문의면 소전리(왕묘동)에 모셨다.(그외 자세한 내용은 비래동 청원재 사적비에 기록 되어 있다.)


  • 12세 동추공파(同樞公派) 파조(派祖)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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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께서는, 11세 용헌공 ‘원(源)’의 아드님 7분이 각 파조(派祖)이신데, 四子로 1400년 출생 무과에 급제, ‘세종’ 2년 1420년 강계판관이 되시고, ‘세조’ 1년 1455년 원종공신 1등에 녹적 되시고, ‘세조’ 2년 행상호군과 동지중추부사에 오르셨다.

  • 경기양평은 동추공파 집성촌 이였고, 長子 숙천부사공 ‘의(儀)’집안 마을이 6.25동란으로 비통하게 파괴되어, 12세 동추공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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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次子 황해관찰사공 ‘위(偉)’, 진사공 ‘신(申)’ 설단비(設壇碑)를 대전 비래동 선산에 모셨다.

  • 12~20세 12위 선조를 위선(爲先)하는 동추공파 청원재가 있다.


  • 낙향시기로 13세 관찰사공 ‘위(偉)’의 집안이 연산군 때 1498년 무오사화 1504년 갑자사화에 온 집안이 고초를 격고, 중중 2년(1507년) 정 5품 사의에서 증광시에 급제 후 정 4품 사헌부 장령에 제수되고, 1510년 사헌부 집의, 1513년 구황경차관, 1514년 명망 높은 선비 28명중 1인에 선발, 1520년 사간원대사관, 장예원판결사를 거쳐 1521년 황해관찰사에 오르셨다. 이후 행적을 알 수 없는 변고가생기고, 관찰사공 손자 ‘계종(繼宗)’공 께서 낙향, 계족산 남쪽 양지바른 비래동에 터를 잡아 동추공파 중흥조(中興祖)로 후손들의 추앙을 받으며, 고성이씨 집성촌으로 490년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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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래동의 옛 지명
  • ● 길치고개(길티고개, 질티고개, 질현) [고개] : 비래동 댕이마을에서 동구 추동의 가래울과 주산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경부고속도로 대전터널의 북쪽에 있다. 고개가 길다 하여 길치고개, 땅이 질퍽거리는 고개라서 질티고개 라 부르며, 질현성이 부근에 위치해 있어 질현이라고도 한다.

  • ● 길치골(길티골, 질티골) [골] : 경부고속도로 대전육교에서 북동쪽, 길치고개 밑에 있는 골짜기로 길치의 이름을 따서 길치골, 길티골, 질티골이라 부른다.

  • ● 길티성재(길터성재) [고개] : 경부고속도로 대전육교 밑에 있는 길치골에서 동구 추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길치고개에서 북쪽에 있다. 고개에 산성을 쌓았다 하여 길티성재라 부른다. 또한 이곳은 옛날 백제의 영토로 신라군과 자주 접전을 벌였는데, 단 한차례도 신라군에게 패한 적이 없는 길한 터라 하여 길터라고도 한다.

  • ● 남녘골(달바위골) [골] : 우족봉과 황소봉 사이로 비래마을에서 보면 남쪽에 위치해 있어 남녘골이라 하며, 이 골짜기에 달바위가 있어 달바위골이라고도 부른다.

  • ● 남녘골약수터(내며골약수터) [약수] : 남녘골짜기 안에 약수터가 있다하여 남녘골약수터 또는 내며골약수터라 부른다.

  • ● 달바위 [바위] : 남녘골 즉 달바위골 안에 있는 바위로 모양이 달(반달)같이 생겼다 하여 달바위라 부른다.

  • ● 대양리(댕이) [마을] : 새터에서 동남쪽, 가양공원 입구 쪽으로 있다. 옛날에는 대양리라 부르던 것을 지금은 댕이라 부른다.

  • ● 돌정개 [들] : 비래마을 입구에서 북서쪽, 경부고속도로 지하도 입구에서 바로 상행선 쪽 부근이다. 정자나무가 있고 돌이 많다고 해서 부른 이름인데, 옛날에는 들이었으나 지금은 대부분이 경부고속도로에 편입되었다.

  • ● 두루봉 [산] : 비래방죽과 꽃산 사이에 있다. 산봉우리의 모양이 둥글다 해서 두루봉이라 부른다.

  • ● 망바우(망바위, 말바위, 마암, 망암) [바위] : 비래암과 평풍바위 사이로 큰 바위가 우뚝 서 있는 것이 마치 말모양 같다 하여 말바우, 마암이라 부른다. 또 바위 위에서면 사방이 잘 보인다고 하여 망바위라고도 한다.

  • ● 바탕골 [골] : 길치터널과 꽃산 사이에 있는 골짜기로, 현재 가양공원이 조성되는 곳이다.

  • ● 백두산 [산] : 비래마을과 평풍바위 사이, 비래마을 뒤편의 동쪽에 있는 산인데, 마을에서 바라보면 매우 높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백두산이라 부른다.

  • ● 버드나무골(북당골) [골] : 비래마을 북쪽과 백두산 사이로, 백두산으로 올라가는 골짜기인데 옛날에 버드나무가 많이 있다고 하여 버드나무골이라 부른다.

  • ● 복호(복키) [골] : 황소봉과 백두산 사이에 있는 골짜기이다. 비래마을에서 동쪽 뒷산으로 이어지는 골짜기인데, 이 골짜기에 호랑이가 엎드린 모습의 복호(伏虎)혈 명당이 있다 하여 부르는 이름인데, 이것이 변하여 복키라고도 한다.

  • ● 복호고개 [고개] : 복호골에서 동쪽으로 능선 넘어가는 고개를 말한다.

  • ● 부무굴(부엌굴 [골] : 우족봉에서 남쪽 바로 옆에 있는 골짜기이다.

  • ● 비래골 [골] : 비래마을과 비래암 사이에 있는 골짜기로, 비래암으로 올라가는 골짜기인데 비래암의 이름을 따서 부른 것이다.

  • ● 비래골(비래리, 비럭골, 비락골, 원비래) [마을] : 송촌동 5단지 동쪽 산아래 위치해 있으며 비래골짜기에 마을이 있어 비래골이고, 비래리의 중심지였다 하여 원비래, 거지가 이 마을에 와서야 빌어먹을 수 있다하여 비럭골이라 한다.

  • ● 비래방죽 [못] : 가양공원 입구, 비래동 삼익아파트 앞에 있다.

  • ● 비래암 [암자] : 비래골짜기 옥류각 뒷편에 위치했던 암자이다. 이곳은 송씨문중에서 자제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16세기말에서 17세기초경에 건립한 암자로, 불승에게 기거하며 지키게 하였는데 언제부터인지 사찰로 변하였고 지금은 비래사 마당으로 변하여 흔적을 찾을 수 없다.

  • ● 비래암약수터 [약수] : 비래암과 절고개 사이로 비래암에서 산등성 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약수터가 있는데, 암자의 이름을 따서 비래암약수터라 부른다.

  • ● 상수골 [골] : 한국도로공사 대전지사와 비래마을 사이에 있다. 옛날에는 이 골짜기가 주로 논이었으며, 그 중에는 물이 많이 고인 둠벙도 있어 여름철에는 수영도 하였다고 한다. 현재는 일부가 밭이고, 여러 공장과 회사가 들어서 있다.

  • ● 새터(신촌) [마을] : 경부고속도로 인터체인지 요금징수소와 진마루등에서 바로 남쪽에 위치한 마을로 새로 마을이 생겼다 하여 새터 또는 신촌이라 부른다.

  • ● 시루봉(증봉, 중봉) [산] : 우족봉에서 동쪽, 달바위에서 남쪽 능선에 시루봉이 있다. 비락골 마을에서 동쪽에 있는 산봉우리 가운데 하나인데, 봉우리의 모양이 떡시루를 엎어놓은 것과 같다 하여 시루봉 또는 증봉이라 부른다. 비락골 마을에서 남녘골로 올라가다 보면 산봉우리에 많은 돌로 둥그렇게 쌓았다. 옛날에 이곳은 적의 동태를 파악하여 길티성재로 연락하는 봉수대였다고 한다.

  • ● 우족봉 [봉우리] : 남녘골과 부엌굴 사이에 있다. 산 모양이 소의 발과 같이 생겼다 하여 우족봉이라 부른다.

  • ● 절고개(비래암고개, 용자암고개, 용자암현) [고개] : 비래암과 비래암약수터를 지나 동구 추동 가래울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이 고개는 매우 큰 고개인데, 비래암의 절 이름을 따서 절고개라 부르고, 또 비래암고개, 용자암고개, 용자암현이라고도 부른다. 옛날에는 대전에 볼일이 있으면 이 고개를 넘어왔으며, 현재도 이 고개를 가끔 이용한다고 한다.

  • ● 절골(절앞골) [골] : 망바위와 백두산 사이에 있는 골짜기이다. 망바위가 있는 골짜기로, 비래암 앞에 있기 때문에 절골, 절앞골이라고 부른다. 또 이 골짜기는 동춘 송준길선생이 옥류각을 건립하고 선비들과 교유하던 곳이다.

  • ● 주막거리 [거리] : 현대아파트와 삼익아파트 사이로, 가양공원 입구를 말하는데 옛날 이곳에 술집(주막)이 있어서 주막거리라고 부른다.

  • ● 진가장들(긴가장들) [들] : 비래 주공아파트에서 동쪽, 롯데칠성음료에서 남쪽에 있는 들인데 산밑에서부터 길게 뻗은 들이라서 진가장이들이라 부른다.

  • ● 진등마루 [들] : 가양동과의 경계를 중심으로, 삼호아파트에서 동남쪽, 성일맨숀에서 서쪽에 위치한 들인데 지형이 매우 길어서 진등마루라 부른다.

  • ● 긴마루등(진마루등, 진마루동) [마을] : 경부고속도로 인터체인지 요금징수소에서 검문소까지의 남쪽 산등성이를 긴마루등이라 하는데 산등성이가 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옛날에는 몇 가구가 있었으나 현재는 진마루등 남쪽으로 많은 주택이 들어서 있다.

  • ● 질티찬물(질티냉천) [샘] : 질티골(대전육교)과 질티고개 사이로 물이 매우 차기 때문에 땀띠와 피부병에 좋다고 하여 질티찬물 또는 질티냉천이라 부른다.

  • ● 평바우골 [골] : 병풍바위가 있는 골짜기로 병풍바위가 있어 평바우골이다.

  • ● 평풍바위(평바위, 편바위, 병풍바위) [바위] : 망바위에서 동쪽으로 산등성이에 있는데 바위모양이 평평하여 평바위, 편바우라고 부른다. 또 바위 모양이 병풍 같다 하여 병풍바위, 평풍바위라 부른다.

  • ● 황소봉 [산] : 북호와 남녘골 사이에 있다. 산봉우리의 모양이 황소무리 같다고 하여 황소봉이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