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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봉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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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덕문화원 작성일19-04-25 11:53 조회56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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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on_arrow.gif석봉·신탄진동(石峰·新灘津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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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봉동(石峰洞)의 입지와 자연환경

석봉동은 대덕구 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용호동(龍湖洞), 남쪽은 덕암동과 평촌동, 서쪽은 목상동, 북쪽은 충북 청원군 현도면과 인접해 있으며, 경부선 철로를 경계로 서쪽은 석봉동, 동쪽은 신탄진동 지역으로 구분되어 있다.

 

예전의 석봉동지역은 동쪽으로는 구릉성 야산이고 서쪽은 야산아래 쭉 논과 밭이 펼쳐져 있었던 곳이다. 그러나 1905년 경부선 철도가 개통되면서 자연 촌락이 철도를 중심으로 동서로 나누어지게 되었으며, 신탄진역을 중심으로 인구가 점차 밀집하고 상업지역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처럼 석봉동 일대가 인구밀집의 상업 지역화되면서 문평동에 서던 3·8일 장이 신탄진역 서쪽 석봉동 지역으로 옮겨와 이 지역의 인구가 더욱 밀집하고 상업화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역전부락에서 동쪽으로 안골에 이르는 지역은 구획정리를 통해 상업지역과 주거지역으로 집중 개발되었는데, 상업지역에는 여관과 유흥주점 등이 밀집되어있다.

 

 

현재 석봉·신탄진 지역은 금강의 풍부한 수자원을 이용한 공업화로 남한제지공장·풍한방직·대한이연·쌍용양회 등의 제조업이 들어서면서, 인구가 밀집하여 예전의 농촌 모습은 사라지고 도시화·공업화되었다. 이 지역의 교육시설로는 새일고등학교·대덕여고·신탄진중학교·신탄진초등학교·용정초등학교·석봉초등학교·신탄진고등학교가 있고 공공기관으로는 ·신탄진우체국·대덕구보건소·대전보훈병원이 있다. 그리고 집단 주거시설로 원창빌라·서우아파트·유락아파트·성문아파트·새여울아파트·한신아파트·흥진아파트금강엑슬루타워아파트 등이 있다.

 

 

석봉동의 유래

봉우리에 돌이 많아서 석봉이라 했다는 송봉동은 신탄진역, 신탄진 시장, 우체국, 신탄진초등학교, 신탄진중학교 등이 있는 신탄진 지역의 중심지에 해당하는 동이다. 이 지역의 중심으로 경부선 철로가 지나가서 석봉동은 동서로 나뉘어져 있다. 신탄진초등학교, 신탄진중학교, 이문고등학교 및 장터 일부가 자리한 지역의 산이라고 보기는 그다지 높지 않은 지대일 뿐 나머지 지역은 거의 평지로 되어 있는데, 이곳에는 석봉, 역앞말, 장터, 초당모퉁이, 등마루, 망골 등의 마을들이 널려있다. 석봉(石峰)은 신탄진시장 근처가 되는데, 신탄진 시장 부근에 새로 이룩된 큰 마을을 가리켜 신촌(新村)이라고도 한다. 1929년 신탄진역이 신설됨에 따라 자연 촌락이 철도를 중심으로 동서로 나누어지게 되었으며, 신탄진역을 중심으로 인구가 점차 밀집하고 상업지역으로 바뀌게 되었다. 문평동에 서던 3,8일 장이 신탄진역 서쪽 석봉동 지역으로 옮겨 왔다. 시장 옆에는 소 말뚝이 많이 박혀있는 우시장도 있었다.

 

석봉동의 연혁

백제 때는 우술군(,述郡), 신라 때는 비풍군(比豊郡), 고려 초기에는 회덕현(懷德縣), 고려 현종 9(1018) 이후에는 공주부(公州府), 조선 초기에는 다시 회덕현, 조선 고종(高宗) 32(1895)에는 회덕군 북면(北面)에 소속되었다.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회덕군과 진잠군이 통합되어 대전군으로 되면서 석봉동은 신촌·내동·자암리·달송리·석봉리·덕운리·구직면 가작리 각 일부가 합하여져 대전군 북면 석봉리로 개편되었다. 1935111일에 대전읍이 부로 승격됨에 따라 대전부와 대덕군으로 분리되었는데, 이때 석봉동은 대덕군 북면 석봉리가 되었고, 1973년에는 북면이 신탄진읍으로 승격되면서 석봉리는 신탄진읍에 속하게 되었다. 198911일 대전직할시로 승격됨에 따라 대덕구에 속하게 된 석봉동 소재의 법정동으로 분리되었고, 다시 199511일 대전직할시가 광역시로 개칭됨에 따라 대전광역시 대덕구 석봉동이 되었다. 20092월 말 현재 행정동으로 되어있다.

 

조선 초기 태종 13(1413)에 전국을 8도제로 개편하면서 행정구역을 서울···(·)(·) 체제로 편성하였다. 이에 따라 회덕은 충청우도 공주목에 속하는 종6품의 현감이 다스리는 회덕현이 되었다. 이와같이 8도제의 실시와 더불어 소현의 병합이 이루어졌는데 이때에 유성현이 폐지되면서 그 영역이 회덕현과 진잠현에 속하게 되었다.

 

정조 13(1789){호구총수}에 의하면 지금의 석봉동이 회덕현 근북면 석봉리로 기록되어 있음을 볼 때, 조선 중기에 이미 석봉리라는 행정구역과 지명이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조선후기 고종 32(1895) 갑오개혁으로 인한 행정구역의 개편으로 태종 이래 실시되었던 8도제가 폐지되고, 전국이 23부제를 실시하면서, 종래의 부···현 등의 지방행정 단위를 모두 폐합하여 336개 군을 신설하여 이를 23개의 부에 속하게 하였다. 이로써 회덕현은 공주부에 속하는 27개 군의 하나인 회덕군으로 개편되었고, 석봉동도 회덕군 북면 석봉리가 되었다. 이 당시 회덕의 구역은 기존의 회덕의 7개 면(현내면, 동면, 외남면, 내남면, 서면, 근북면, 일도면)에 공주군의 5개 면(천내면, 유등면, 탄동면, 구즉면, 산내면)과 청원군 주안면이 편입되어 이전보다 크게 행정구역이 확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