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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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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덕문화원 작성일19-04-25 13:11 조회15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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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on_arrow.gif상서동(上書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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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서동의 입지와 자연환경
  • 상서동은 지리적으로 대덕구 북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장동, 남쪽은 와동, 서쪽은 신일동, 북쪽은 덕암동과 평촌동과 인접해 있다. 옛날 이 곳에는 지형상 위쪽과 아래쪽 두 곳에 서당이 있었는데, 이 중에서 위쪽에 있는 서당을 웃서당 또는 상서당(上書堂)이라고 하고, 아래쪽에 있는 서당을 아래서당(下書堂)이라 하였다.

상서당의 자연촌락으로는 방두마을·산막·상서당·숫금때·다랑이·윗지수·선바위·새말 등이 있다. 상서동은 북에서 남으로 뻗어 있는 성재산을 뒤로 하고 서쪽으로 낮게 자리잡은 구릉지역에 자연촌락이 발달되어 있었던 곳이다. 그러나 철도차량 정비창이 들어오면서, 정비창 관련된 직원들의 사택으로 대창아파트가 들어서 있고, 그 앞으로 예전의 상서동의 원주민이 이주하여 집단취락을 형성하고 있다. 따라서 상서동의 집단취락의 주민들은 아직도 대부분 상서동과 평촌동의 원주민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현재의 상서동의 취락구조는 이곳이 준 공업지대로서, 공장들이 대거 들어와 공업단지에 의하여 포위된 것과 같은 형상이다. 상서동은 예전에는 서쪽으로 잘 발달된 들을 중심으로 밭농사와 논농사가 활발한 지역이었다 한다. 그래서 과수농사도 일부 행해지고 있었던 곳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준 공업지역으로 지정되어 대부분 공장이 들어서서 공업단지가 되었다.

상서동의 토지지목별 현황을 대덕구에서 발행한 『'99통계연감』을 통해서 살펴보면 총 면적이 2,403,663㎡이고, 그 중에 전(田)이 270,566㎡로 11%, 답(畓)이 191,390㎡로 8%, 임야가 806,528㎡로 34%, 대지가 249,418㎡로 10%, 공장용지가 131,813㎡로 5%, 도로가 275,022㎡로 11%, 철도용지가 234,688㎡로 10%이며, 그리고 기타 용지로 되어 있다. 이와 같은 토지이용실태를 볼 때 상서동은 한올제약 등 30여 제조업체가 입지하고 있어 공업이 비교적 발달한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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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서동의 연혁
  • 상서동의 지역은 백제 때는 우술군이었다가, 신라시대에는 비풍군으로 개명하였고, 그 밑에 유성현과 적오현(뒤에 덕진현)을 그 속현으로 두었다. 고려초기에는 비풍군을 회덕현으로 읍호를 바꾸었고, 이후 고려 현종 9년(1018)에는 공주의 속현으로 귀속되었다. 그런데 고려시대에 유성현과 덕진현이 공주의 속현이었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현종 9년의 군·현의 개편시 유성현과 덕진현이 회덕의 속현에서 벗어나 공주의 속현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후 회덕현은 고려 명종 2년(1172)에 처음으로 감무(조선시대의 현감과 같음)를 두게 되어 주현으로 승격하게 되었다.

조선초기 태종 13년(1413)에 전국을 8도제로 개편하면서 행정구역을 서울→도→주·부·군·현→면(방·사)→이(동·촌) 체제로 개편하였다. 이에 따라 회덕은 충청우도 공주목에 속하는 종6품의 현감이 다스리는 회덕현이 되었다. 이와 같이 8도제의 실시와 더불어 소현의 병합이 이루어졌는데, 이 때에 유성현이 폐지되면서 그 영역이 회덕현과 진잠현에 속하게 되었다.

정조 13년(1789)의 {호구총수}에 의하면 지금의 상서동은 회덕현 근북면 서당리(書堂里)로 되어있다. 그러나 서당리가 상서당리·하서당리로 나뉜 것은 언제인지 확실치는 않지만 조선후기 고종 32년(1895) 갑오개혁 때로 짐작된다. 이처럼 서당리가 상서리로 바뀐 것은 이 마을에 서당이 있었는데, 아래마을 평촌에도 서당이 있었으므로 이곳을 웃서당 또는 상서당이라 하고, 평촌에 있는 서당을 아랫서당 또는 하서당이라 한데서 연유한다. 현재는 이 상서당이 있었던 지역을 상서동이라 부른다. 조선후기 고종 32년(1895) 갑오개혁으로 인한 행정구역의 개편으로 태종이래 482년간 실시해오던 8도제가 폐지되고, 전국이 23부제를 실시하면서, 종래의 부·목·군·현 등의 지방행정 단위를 모두 폐합하여 336개 군을 신설하고 이를 23개의 부에 속하게 하였다. 따라서 회덕현은 공주부에 속하는 27개 군의 하나인 회덕군으로 개편되었고, 상서동은 회덕군 북면 상서리가 되었다. 이 당시 회덕의 구역은 기존의 회덕의 7개 면(현내면, 동면, 외남면, 내남면, 서면, 근북면, 일도면)에 공주군의 5개 면(천내면, 유등면, 탄동면, 구즉면, 산내면)과 청원군 주안면이 편입되어 이전보다 크게 행정구역이 확대되었다.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회덕군과 진잠군이 통합되어 대전군으로 되면서 상서동은 죽림리·입암리·상서당리·송암리·방등리·평촌·덕암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대전군 북면 상서리가 되었다. 1935년에는 대전읍이 부로 승격되면서 대전읍은 폐지되고 대전부와 대덕군으로 분리되었는데, 이때 상서동은 대덕군 북면 상서리가 되었다. 1973년 에 북면이 신탄진읍으로 승격함에 따라 신탄진읍 상서리가 되었고, 1989년 1월 1일에는 대전직할시의 확장에 따라 대덕군이 폐지되고 대덕구가 설치되면서, 상서동은 법정동이면서 행정동인 덕암동에 소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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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서동의 전통마을과 씨족
  • ○ 방두마을(방두말, 방두마루, 방등) : 방두마을은 대창아파트에서 바로 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이 마을의 지형은 와우형(臥牛形)으로 소가 누워 있는 형국이라 한다. 따라서 아래뜸은 소의 유방이고, 솔밭은 응취(엉덩이)라고 한다. 또한 마을에 있는 고가(古家)와 8대조 묘는 위치상 서로 맞짐을 실어놓은 형태라 한다. 이러한 이치에 따라 묘에 돌을 많이 세우면 무거워서 기운다고 하므로, 상석과 비석만을 세웠다고 한다. 이곳의 지형이 방둥이처럼 생겼다해서 '방등'이라고 불렀는데 지금은 방두마루·방두말이라고 부른다. 평촌동과 상서동의 자연촌락 모두를 합하여 열두 방두마루라고 하였다. 옛날에는 여기에 호수가 있었고 이 호수에 그림처럼 아름다운 연꽃이 피었다고 하여 이 호수를 방호(芳湖)라 불렀으나, 그 뒤 호수가 메워자 마을이름이 변하여 '방등'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 지역이 예전에는 전부 마을이었으나, 현재는 공장이 많이 들어서 있다. 공업지대가 되기 전에는 40여 호가 농사를 지으며 살았으나, 지금은 원주민들 다수가 떠나고 새로 이주해온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데, 마을주변에 공장이 많은 까닭에 공장에 다니는 사람들이 많고, 농사를 짓는 원주민들은 얼마 되지 않는다. 이곳의 주민은 예전에는 대부분 은진송씨가 세거하는 마을이었으나 지금은 각성받이이다.

○ 산막(山幕, 죽림 竹林) : 산막은 새일초등학교 옆에 있는 마을인데, 옛날에 마을에 산막이 있었으므로 이를 산막이라 부른다. 이곳은 지대가 높고, 덕암리를 통해 서울로 향하는 길목이다. 옛날에는 이곳에 노강정 나무가 있어 노강정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또한 조선시대에 선비들이 글을 배우기 위해 산에 막을 쳤다고 하는데서 산막이란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또 마을에 대나무 숲이 있었으므로 이를 죽림이라고 하였다. 현재는 대나무 숲은 없고 새로이 도로 4차선이 놓여 있다. 예전에는 이 도로로 지나가는 부근에 조그만 방죽과 샘이 있었다고 하는데, 방죽의 소유자가 '기살이' 라는 사람이라서 샘의 이름도 '기살이샘’이라고 하였다. 산막에 도로가 개설되기 이전에는 약 30호가 살았는데 특정 성씨가 집성하지는 않았고, 각성받이 마을이었다. 그 중에 보성오씨가 약간 있었고, 본관을 알 수 없는 설씨 등이 살았다.

○ 상서당(上書堂, 웃서당, 서당) : 상서당은 대창아파트와 서낭당고개 사이에 있는 마을이다. 이곳에 서당이 있고 또 아래마을 평촌에도 서당이 있었으므로 이곳을 웃서당 또는 상서당이라 하고, 평촌에 있는 서당을 아랫서당 또는 하서당이라 하였다. 현재는 이 상서당을 서당이라고도 부른다. 상서당 내의 자연촌락인 새말은 대창아파트에서 서쪽, 봉수골에서 바로 북쪽에 있다. 옛날에는 낮은 산이었으나 새로 마을이 형성되어 이를 새말이라고 부른다. 당시 상서당에는 약 20호가 거주하였는데 은진송씨 집성촌이었다.

○ 숫금때 : 숫금때는 산막에서 서쪽에, 상서동과 신일동의 경계에 위치한 마을이다.

○ 선바위(섬바위, 입암, 입바위) [마을, 바위] : 산막과 와동 베룩산 사이로 신탄진 방향의 국도와 산막으로 들어가는 옛 국도 사이에 위치한 마을인데, 마을 부근에 큰 바위가 서 있어 이를 선바위, 섬바위 또는 입바위라 부르며 이곳의 마을을 선바위 마을이라 한다.

○ 다랑이 : 다랑이 마을은 웃다랑이는 봉수골에서 동쪽, 지금의 철도차량 정비창 남쪽 부근에 위치한 마을이다. 다랑이 위쪽에 있는 마을이므로, 이를 웃다랑이라고 부른다.

○ 웃다랑이(내다랑, 송암) : 웃다랑이는 다랑이 윗쪽에 위치하고 있다하여 웃다랑이라고 부른다. 또 솔밭에 큰 바위가 있었으므로 이를 송암(松岩)이라고도 한다. 옛날에는 자연부락이었으나 현재는 철도차량 정비창의 외곽도로로 마을은 없어졌다.

○ 윗지수 : 윗지수는 산막에서 서쪽으로 경부고속도로 상행선 너머에 있는 마을이다. 지숫골 위쪽에 있는 마을이라 해서 윗지수라고 부른다. 현재 신탄진 방향의 국도에서 산막부근 신설된 산업도로를 들어서면 산업단지 입구 좌측으로 지수골에 위치한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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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서동의 세거성씨
  • ○ 은진송씨(恩津宋氏) : 회덕 송촌에서 분촌하여 상서동에 입향한 사람은 사헌부 집의를 지낸 송세면이다. 입향 시기는 송세면의 생년이 1487년(성종 18)이고 몰년이 1539년(중종 34)이었던 것으로 보아 15세기 후반에서 16세기 전반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송세면의 차자 송연의 손자 송유록이 송창공파의 파조가 된다. 송창공 송유록의 장자 송시정은 두 아들을 두었는데 첫째 송명신의 후손들은 진잠현 기성면에 주로 세거하였고, 둘째 송중신의 후손들은 상서동에 세거하였다. 그리고 송유록의 차자 송시윤의 후손들은 장동·상서동·오정동·유성 등지에 세거하였으며, 3남 송시양의 후손들은 논산 연무대에 세거하였다. 즉 회덕 일대 상서·장동·평촌 등에 세거하였던 은진송씨는 송창공파로 송시정의 둘째아들 송중신의 후손들과 송시윤의 후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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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서동의 옛 지명
  • ● 구수밭(구유밭) [들] : 서당마을과 황새봉 사이의 들로, 밭의 지형이 소의 먹이를 담는 구유 같다고 하여 구유밭, 구수밭이라고 부른다.

  • ● 다랭이(다랑이) [마을] : 상서당 동북쪽 골짜기에 있는데, 높고 층층으로 된 작은 논배미가 많은 지역에 마을이 있어 다랑이라고 부른다. 지금은 철도차량 정비창이 들어와 마을이 없어졌다.

  • ● 대추구레 [들] : 산막에서 동남쪽에 있는 들로 마을에 대추나무가 있어, 이를 대추구레라 하였는데 당시에는 마을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지고 신탄진 국도와 공장들이 들어 서 있다.

  • ● 덕암천 [내] : 뒷산과 서낭당고개에서 발원하여 망골천으로 흐르는 하천이다. 전에는 덕암천의 발원지가 행정구역상 상서동이었으나 현재는 평촌동으로 바뀌었다.

  • ● 두리봉 [산] : 선바위고개와 와동 베룩산 사이에 있다. 산봉우리의 모양이 둥글다해서 이를 두리봉이라 부른다.

  • ● 방두마루(방두말, 방등) [마을] : 평촌교에서 남쪽에, 새말과 대창아파트에서 바로 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마을의 지형이 와우형이고 이곳의 지형이 방둥이처럼 생겼다하여 방등이라고 불렀으나 현재는 방두마루, 방두말이라고 부른다. 옛날에는 마을이었으나 현재는 공장이 많이 들어서 있다. 또한 상서동과 평촌동의 자연촌락을 일컬어 열두방두마루라 불렀다. ● 봉수골 [골] : 새말에서 바로 남쪽, 대창아파트에서 서쪽에 있다. 옛날에는 이곳의 낮은 산골짜기에 봉이 살았다하여 봉수골이라 불렀다. 평촌에 철도차량 정비창이 들어서자 평촌에 거주하던 주민이 이곳으로와 정착하여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

  • ● 산막(죽림) [마을] : 새일초등학교 옆에 있는 마을로 산막이 있었다하여 산막이라 부르며 또 대나무 숲이 있었으므로 이를 죽림이라고도 부른다. 지금은 대나무 숲은 없어륵고 4차선 도로가 놓여 있다

  • ● 상서당(웃서당, 서당) [마을] : 대창아파트와 서낭당고개 사이에 있는 마을이다. 이곳에 서당이 있고 또 아래마을 평촌에도 서당이 있어 이곳을 웃서당, 상서당이라 하고, 평촌에 있는 서당을 아랫서당, 하서당이라 하였다. 현재는 상서당을 서당이라 부른다.

  • ● 새말 [마을] : 대창아파트에서 서쪽, 봉수골에서는 바로 북쪽에 있다. 옛날에는 낮은 산이었으나, 새로 마을이 형성되어 이를 새말이라고 부른다.

  • ● 서당고개(서낭당고개) [고개] : 상서동과 와동이 경계하는 위치의 고개로 베룩산에서 동쪽, 와동 텃골에서 북쪽에 있다. 상서당 마을에 있는 고개라서 서당고개라고 부르며 또 이 고개에 서낭당이 있었다하여 서낭당고개라고도 한다. 이 고개는 회덕읍내를 왕래하는 고개였으나, 지금은 이 고개와 베룩산 사이에 고속도로·경부선철도·고속철도·국도가 놓여 있다.

  • ● 서당방죽(서당저수지, 내다랑제) [못] : 철도차량 정비창의 남쪽에 있다. 조선시대 때는 내다랑제라 하였고, 1975년에 다시 수축하였다. 이 못이 서당마을에 있기 때문에 서당방죽, 서당저수지라고 불렀으나 지금은 철도차량 정비창이 들어서면서 방죽은 없어졌다.

  • ● 선바위(섬바위, 입암, 입바위) [바위, 마을] : 산막과 와동 베룩산 사이로, 이 마을 부근에 큰 바위가 서 있어 이를 선바위라고 부른다. 또 바위가 마을에 있기 때문에 이 마을을 선바위 마을이라고 한다.

  • ● 선바위고개 [고개] : 선바위마을 부근에 있다. 이 고개에 선바위가 있으므로 이를 선바위고개라고 부른다.

  • ● 숫금때 [마을] : 산막에서 서쪽, 상서동과 신일동의 경계 부근이다.

  • ● 웃다랑이(내다랑, 송암) [마을] : 다랑이 위쪽에 있는 마을이라 웃다랑이라 부르며 또 솔밭에 큰 바위가 있어 송암이라고도 한다. 옛날에는 자연부락이었으나 현재는 철도차량 정비창 외곽도로이다.

  • ● 윗지수 [마을] : 윗지수는 산막에서 서쪽으로 경부고속도로 상행선 너머에 있는 마을이다. 지숫골 위쪽에 있는 마을이라 해서 윗지수라고 부른다. 현재 신탄진 방향의 국도에서 산막부근 신설된 산업도로를 들어서면 산업단지 입구 좌측으로 지수골에 위치한 마을이다.

  • ● 지숫골 [골] : 윗지수와 매봉재 사이에 있는 골짜기이다.

  • ● 장고개 [고개] : 서낭당에서 덕암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옛날에 신대리(신일동)의 장을 보러 넘어 다닌 고개라 하여 장고개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