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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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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덕문화원 작성일19-04-25 13:14 조회12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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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on_arrow.gif장동(長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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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의 입지와 자연환경

장동은 지리적으로 대덕구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법동, 서쪽은 연축동과 와동, 북쪽은 용호동과 상서동, 동쪽으로는 이현동과 동구 효평동의 경계를 이루는 법정동이다. 계족산과 성재산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산디(웃산디)·짚은골·새뜸·욕골·새골을 거쳐 용호동으로 흘러 내려가는 골짜기가 매우 길어서 긴골 또는 진골이라 하는데, 이와 같은 뜻의 한자표기로 장동(長洞)이라 하였다 한다.

이 지역에는 계족산과 계족산 봉수대가 있다. 계족산성은 장동 산디마을 뒷편에 위치하였으며, 상봉에는 봉수지로 추정되는 곳이 있으며, 건물지와 문지, 샘이 남아 있다. 장동에는 징골(진골)·욕골·새골(색골)·터골(턱골)·새뜸·산디의 자연마을들이 있다. 이 마을을 연결하여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하기도 한다. 그 내용은 “징골에 가서 징을 냅다 쳤더니, 욕골 놈들이 욕을 하므로 욕 얻어먹고, 색골(새골을 말함)로 가서 색색한다. 쳐다보니 턱골(텃골을 말함)이 보여 턱골로 올라와 턱 쉰 후 새뜸에서 한바탕 놀고, 산디로 와서 집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장동은 계족산을 배경으로 그 골짜기에 논과 밭 그리고 자연마을들이 발달한 동이다. 장동은 전체가 개발제한구역으로 되어있어 개발은 제한되었지만 아직도 옛 스러운 전통마을을 잘 보존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한국전쟁이후 한때 미군이 주둔하면서 기지촌이 된 적이 있었으나, 미군이 철수하고 그 자리에 한국군 부대가 자리하였으나 군과 관련된 기지촌의 모습은 현재는 전혀 찾아 볼 수 없고 한적한 도시주변의 마을의 모습이다.

현재 장동 사람들의 생업은 대부분 농업이고, 그 중에서도 논보다는 밭이 더 많은 실정이다. 최근 들어와 도시 주변의 전원지역으로 관광휴양시설로 장동 삼림욕장과 계족산성의 복원으로 관광객이 점차 많아지면서 음식점 등이 점차 많이 들어서고 있다. 그리고 마을주민의 일부는 대전시내에 직업을 같고 출퇴근하기도 한다. 현재의 장동의 토지이용의 실태를『'99통계연감』을 통해 살펴보면 총 7,572,697㎡에 전(田)이 416,886㎡로 6%, 답(畓)이 705,178㎡로 9%, 임야가 6,018,647㎡로 80%, 대지가 111,035㎡로 1% 등이고, 기타 하천, 도로 등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토지 이용실태는 장동의 토지의 약 80%가 임야로 되어 있어 풍치가 좋은 산간 마을지역임을 보여주고 있고, 또한 이 들 토지 대부분이 개발제한구역으로 되어 있어 취락의 시설이 열악한 실정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는 장동이 계족산을 끼고 북쪽 금강으로 빠지는 하천을 중심으로 길게 형성된 골짜기에 잘 발달한 마을임을 보여준다. 현재 장동은 법정동이고 행정동은 회덕1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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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의 연혁
  • 장동의 지역은 백제 때는 우술군이었다가, 신라시대에는 비풍군으로 개명하였고, 그 밑에 유성현과 적오현(뒤에 덕진현)을 그 속현으로 두었다. 고려초기에는 비풍군을 회덕현으로 읍호를 바꾸었고, 이후 고려 현종 9년(1018)에는 공주의 속현으로 귀속되었다. 그런데 고려시대 유성현과 덕진현이 공주의 속현이었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현종 9년의 군·현의 개편시에 유성현과 덕진현이 회덕의 속현에서 벗어나 공주의 속현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후 회덕현은 고려 명종 2년(1172)에 처음으로 감무(조선시대의 현감과 같음)를 두게 되어 주현으로 승격하게 되었다.

조선초기 태종 13년(1413)에 전국을 8도제로 개편하면서 행정구역을 서울→도→주·부·군·현→면(방·사)→리(동·촌) 체제로 편성하였다. 이에 따라 회덕은 충청우도 공주목에 속하는 종6품의 현감이 다스리는 회덕현이 되었다. 이와 같이 8도제의 실시와 더불어 소현의 병합이 이루어졌는데 이 때에 유성현이 폐지되면서 그 영역이 회덕현과 진잠현에 속하게 되었다.

정조 13년(1789)의 {호구총수}에 의하면 지금의 장동이 회덕현 일도면 장동리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조선중기에 이미 장동리라는 행정구역과 지명이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조선후기 고종 32년(1895) 갑오개혁으로 인한 행정구역의 개편으로 태종이래 482년간 실시되었던 8도제가 폐지되고 전국이 23부제를 실시하면서, 종래의 부·목·군·현 등의 지방행정 단위를 모두 폐합하여, 336개 군을 신설하고 이를 23개 부에 속하게 하였다. 이로서 회덕현은 공주부에 속하는 27개 군의 하나인 회덕군으로 개편되었고, 장동은 회덕군 일도면 장동리가 되었다. 이 당시 회덕의 구역은 기존의 회덕 7개 면(현내면, 동면, 외남면, 내남면, 서면, 근북면, 일도면)에 공주군 5개 면(천내면, 유등면, 탄동면, 구즉면, 산내면)과 청원군 주안면을 편입하여 이전보다 크게 행정구역이 확대되었다.

1914년에는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회덕군과 진잠군이 통합되어 대전군으로 되면서 장동은 상산리·장동리의 일부가 합하여져, 대전군 북면 장동리로 개편되었다. 1935년에는 대전읍이 부로 승격됨에 따라 대전부와 대덕군이 분리되었는데, 이때 장동은 대덕군 북면 장동리가 되었다. 그후 1973년에 북면이 신탄진읍으로 승격되면서 장동은 신탄진읍에 속하게 되었고, 1989년 1월 1일 대전직할시의 지역확대로 대덕군의 폐지와 동시에, 대덕구가 설치되면서 장동은 회덕1동에 소속된 법정동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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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의 전통마을과 씨족
  • ○ 산디마을(산뒤, 웃산디, 산대, 산북, 붤터) : 산디는 계족산 동북쪽, 성재 서쪽 아래, 앞산 바로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계족산 뒤에 있는 마을이라서 산디 또는 산북(山北)이라고 한것에서 유래한다. 계족산 북쪽 골짜기는 좁고 길어서 장동 계족산에서부터 용호동 하용호에 이르므로 열두 산디라고도 한다. 이는 계족산 뒤의 골짜기에 열두개의 마을이 자리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 중에서 계족산 골짜기 가장 위쪽에 있는 마을이 바로 산디마을이다.

  • 장동에는 징골(진골)·욕골·새골(색골)·터골(턱골)·새뜸·산디가 있는데 이 여섯마을 중 가장 깊은 골에 자리를 잡은 곳이 산디마을이다. 산디마을은 마을의 모습이 계단식으로 한층 한층 올라가면서 지어서 벌집처럼 생겼다 하여 벌터라고도 한다. 그리고 산디 서쪽 마을입구 탑거리는 탑이 위치해 있어 탑거리라 부른다. 현재도 할아버지 탑과 할머니 탑 앞의 제당에서 매년 탑제를 지낸다. 마을입구 탑거리에는 옥천전씨 세거지라 쓰인 애각과 "옥천전공종한조림불망비"가 있다. 그리고 산디마을에서는 음력 10월 3일에 가을걷이가 끝나면 산신제를 올린다. 이와 같이 산디마을은 민속이 잘 보존되어 있어 전통이 살아 숨쉬는 마을이다. 현재 산디 탑신제는 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그리고 산디 마을에는 옛 부터 산이 소리를 내면 비가 내린다는 전설이 전한다.

  • 산디마을에 가장 먼저 입향한 성씨는 정씨로 알려 졌으나, 이미 오래 전에 모두 마을을 떠나고 지금은 한가구도 살고 있지 않다. 산디마을에는 창녕조씨가 제일먼저 자리를 잡았고, 그 다음이 전주이씨, 경주최씨, 옥천전씨의 순으로 터를 잡았다. 현재 총 호구 수는 36호 정도인데 이 중에서 창녕조씨 7호, 경주최씨 8호, 옥천전씨 5호 밀양박씨가 5호 정도로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기타 경주김씨, 전주이씨, 은진송씨 등이 살고 있다.

○ 새뜸(新村)마을 : 새로 생긴 마을이라 새뜸이라 부르며, 산디에서 경주최씨와 옥천전씨가 이곳으로 분촌하여 형성된 마을이다. 마을 역사는 약 150년이 되며 경주최씨가 들어온 이후로 옥천전씨가 이주하여 왔는데 경주최씨는 6대째 살아오고 있다. 새뜸은 산디마을로 들어가는 길가 우측 산 아래에 위치한 마을로 산디에 비하면 농지가 냇가를 끼고 비교적 넓게 형성되어 있다. 그러나 해방 전에는 마을의 땅이 모두 산디마을의 대지주 전병직의 소유여서 주로 소작을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논이 많기는 하나 자갈 논이라서 농사 짓기에는 매우 어렵다고 한다. 새뜸은 산디마을과는 달리 거리제, 산제 등은 없으나 샘고사를 매년 정월 보름에 지내고 있다. 현재의 새뜸마을은 총 23호인데 이 가운데 경주최씨가 12호, 옥천전씨가 5호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 욕골(욧골, 묘동) : 욕골은 징골의 서쪽, 새골의 남쪽, 장승배기 북쪽, 장동초등학교 동쪽 사이에 있는 마을이다. 욕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라 골짜기 이름을 따서 욕골이라 하며, 또 산이 묘하게 생긴 그 아래에 마을이 있다 하여 묘동이라고도 한다. 욕골에는 산디에서 분촌한 경주최씨가 15호 정도 거주하였다.

○ 진골(징골, 긴골, 장동, 도장굴, 도장골) : 진골은 욕골 동쪽, 텃골 북쪽, 삿갓봉 서쪽, 새골 남쪽 사이에 있는 마을이다. 골짜기가 긴 곳에 있는 마을이라서 긴골 또는 장동이라 한다. 옛날에 복숭아꽃이 만발하여 감춰진 선경과 같은 골짜기라 해서 도장골이라고도 하였다. 마을의 발생의 시기는 오래되었다고 하나 정확한 것은 알 수 없다. 진골은 은진송씨 송창공파의 집성촌이다.

○ 텃골(기골, 기곡) : 텃골은 진골 남쪽, 안산 북쪽, 새말림 북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옛날에 절터가 있었으므로 텃골이라 하였다. 턱골에는 옥천에서 이주한 밀양박씨들이 15호 정도 살고 있는 집성촌이다.

○ 새골(개골, 샛골) [마을] : 진골에서 서북쪽, 먹뱅이 마을 남쪽, 욕골의 북쪽에 있는 마을로 욕골과 이어져 있다. 이 마을이 새로 생겨서 개골이라 한다. 또 삿갓봉에서 내려오는 샛골 끝에 있는 마을이라 새골·샛골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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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의 세거성씨
  • ○ 창녕조씨(昌寧曹氏) : 창녕조씨의 시조는 조계룡으로 진평황의 녀서로 신라 태사 부마도위 창성부원군이다. 산디에 거주하는 창녕조씨는 승지공파의 후손이다. 창녕조씨 시조 전설은 시조가 태어날 때 겨드랑이 밑에 조(曺)자 무늬가 있어서 신라 진평왕이 듣고 이상하게 여겨 성을 삼도록 하였다. 그후 7대조 설정공(휘 문수)이 운서에 기재된 글자의 모양을 따라 한 획을 첨가하여 조(曹)로 하였다 한다. 원래 산디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성씨는 정씨이었으나 후대에 타지로 이주하여 조선후기 이후에는 이곳에 거주하지 않았다. 그후 산디마을에 세거한 성씨는 창녕조씨가 가장 오래 되었다 한다. 산디에 세거하였던 경주최씨의 입향 년대가 1636년(인조 14년)이전이므로 창녕조씨의 입향 년대는 이보다 더 빨랐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입향조인 조명덕의 생몰년대가 병자 생에서 졸년이 무진년으로 되어있어 정확한 입향 시기는 알 수 없다.

○ 경주최씨(慶州崔氏) : 입향 전에는 청원군 문의면 열망골에 거주하다가 분가하여 장동 산디로 입향하였다. 입향조는 최의신으로 입향 시기는 족보상 최의신의 생년이 인조 14년(1636)이고 몰년이 1659년이므로, 17세기 전기에서 17세기후기 사이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 묘도 회덕 일도면 삼산리에 있다. 최의신의 증손이었던 최시병이 유성구 탑립으로 분가하였던 최한영에게 양자로 들어가 탑립동의 경주최씨도 같다. 경주최씨 화수공파 문창공자손. 최치원 문창후 21세손이 최의신이다.

○ 옥천전씨(沃川全氏) : 옥천전씨 대동보에 의하면 시조는 백제 온조왕 때의 십제공신이었던 전섭으로 되어있다. 옥천전씨 회덕의 입향조는 시조로부터 14세인 전상길이다. 정확한 입향시기는 알 수 없으나 상길의 생몰년대가 1678년(숙종 4년)에 출생하였고 1743년(영조 19년)이 몰년인 것으로 미루어보아 17세기후반에서 18세기 중기의 언제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회덕의 옥천전씨의 회덕 입향 전의 세거지는 충북 옥천이었다. 옥천에 세거하던 옥천전씨가 회덕에 입향하게된 정확한 연유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입향조의 전상길의 처가 이 지역의 대성인 은진송씨인 것으로 미루어 보아, 이와 관련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되지만 현재 이곳의 옥천전씨 집안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회덕일대의 옥천전씨를 현재의 {옥천전씨대동보}에서는 산디파(山垈派)라 하기도 한다.

○ 밀양박씨(密陽朴氏) : 밀양박씨는 텃골에 세거하였다. 밀양박씨 58세로 이조참의를 지낸 박승렬의 묘가 대덕군 북면 장동에 있고, 따라서 후손들은 이분이 회덕 장동의 입향조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정확한 입향조는 알 수 없다. 현재 회덕 장동의 텃골에 세거한 밀양박씨들을 파보에서는 '승지공휘안영손부정공휘신원증손 참의공휘승렬파'라하고 있다. 61세 박치필(기묘생, 병오9월 무과, 졸년 신사) 후손들은 지금 현재까지도 회덕 장동 텃골에 세거하고 있다. 그리고 박치창의 후손들은 분촌하여 진잠 세동리에 세거하고 있다.

○ 은진송씨(恩津宋氏) : 송창공파 송시윤의 후손들이 주로 세거하였다. 진골은 읍내동에서 지명나루로 가는 구 형강대로 변에 연해있으며, 마을 입구에는 도장동이라는 표석이 있다. 입향조는 송창공 송수록의 2남 송시윤이라 하나 정확한 것을 알 수 없고, 따라서 입향 시기도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송창공 송수록의 생년이 1579년(선조 12)이고 몰년이 1639년(인조 17)이었던 것으로 보아 17세기 중반이후에 입향하였을 것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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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의 옛 지명
  • ● 가마솥(가마바우산, 가마바위산) [산] : 와동약수터 남쪽, 새뜸 북쪽 사이에 있는 산으로 산꼭대기에 가마솥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 가마솥이라 한다.

  • ● 가마바위(가마바우) [바위] : 가마솥(가마바위산)에 있는 산꼭대기에 있는 바위로 가마솥처럼 생겼다고 하여 가마바위라 부른다.

  • ● 감남골 [골] : 산디마을 남동쪽, 소태배기 서쪽에 있는 골짜기로 감나무가 많은 골짜기라서 감나무골인데 이것이 변하여 감남골이 되었다.

  • ● 개장굴(개장골) [골] : 산디마을 서쪽의 골짜기로, 산디에서 산기슭을 돌면서 있는 골짜기이다.

  • ● 계족산(비수리, 닭다리산, 봉황산) [산] : 장동 서남쪽, 연축동 동남쪽, 읍내동 동쪽사이에 있는 산으로 산세(山勢)가 닭발과 같이 생겼다고 하여 계족산 혹은 닭다리산이라 하였다. 또한 가뭄이 심하게 들면 산이 울고, 산이 울면 비가 온다고 하여 비수리라고도 하였으며, 지형이 봉황의 모습과 같다하여 봉황산이라 한다.

  • ● 고내미 [산] : 돈소재 남쪽, 배나무들 서쪽, 모종날맹이 동쪽 있는 산이다.

  • ● 고내미고개 [고개] : 돈소재 남쪽, 배나무들 서쪽, 모종날맹이 동쪽에 있는 고내미산 능선을 따라 생긴 고개라서 고내미고개라 한다. 이 고개는 와동과 장동의 경계를 이룬다.

  • ● 고리짝 [골] : 웃들 남쪽, 방덩굴 남쪽 위에 있는 골짜기이다.

  • ● 고사래골 [골] : 계족산 동쪽, 민아편전 북동쪽과 뿔땅굴 편전 동쪽의 사이에 있는 골짜기로 고사리가 많이 나는 골짜기라서 고사래골이라 부른다.

  • ● 구레논 [들] : 텃골 서남쪽 바로 앞에 있는 논으로, 땅이 낮아서 항시 물이 고여 있는 논이라 하여 구레논이라 부른다.

  • ● 구녕배 [산] : 징골 동남쪽, 장구봉 서쪽, 산성골 남쪽 위의 능선을 말한다.

  • ● 굴바우(굴바위) [바위] : 삿갓봉 남쪽, 굴바위봉 서쪽, 징골 동쪽에 능선 위에 있는 바위다. 바위 옆에 굴이 있고 바위틈으로 굴이 보인다 하여 굴바위라고 했다.

  • ● 굴바우(굴바위능선) [산] : 굴바위봉 서쪽, 징골의 동쪽에 굴바위가 있는 능선이라 하여 굴바위능선이라 했다.

  • ● 굴바위봉 [산] : 삿갓봉 남쪽, 징골 동쪽, 이현고개 북쪽에 있는 산으로 굴바위가 있는 산봉우리라서 굴바위봉이다.

  • ● 노루골 [골] : 성재 남남서쪽, 동만산 남쪽, 상남배기 남동쪽 산 위쪽 골짜기로 옛날에 노루가 많이 살았으므로 노루골이라 했다.

  • ● 노루골능선 [산] : 동만산 남쪽, 노루골 위쪽의 능선으로, 노루골의 이름을 따서 노루골능선이라 하였다.

  • ● 달도지산 [산] : 계족산 북쪽, 안산 북쪽, 동소고개 남쪽사이로 산디마을 서쪽에 있는 능선인데, 연축동에서 볼 때 달이 뜨는 곳이라서 달도지라 하였고, 장동과 연축동의 경계가 된다.

  • ● 던바위산(던바우, 덕암) [산] : 돈소재 북쪽, 가마솥 남쪽, 새뜸 서남쪽에 있는 산봉우리로, 와동 동쪽에 던바위(덕암)가 있어서 그 이름을 따서 던바위산 또는 덕암산이라 한다. 와동과 장동의 경계가 되는 산봉우리이다.

  • ● 도둑굴(도둑골) [골] : 성재 남서쪽, 동만산 북쪽, 등잔거리날등 동쪽, 암소배 위쪽 골짜기이다. 옛날에 도둑들이 숨어살던 골짜기라서 도둑굴이라 한다.

  • ● 도장동비(桃長洞碑) [비] : 진골마을 앞 길가에 있다. 도장동의 지명을 표시하는 비석으로 진골은 복숭아꽃이 피는 긴 골짜기로 유추되기도 한다.

  • ● 돌감나무구렁 [골] : 산디마을 바로 북쪽 뒤, 섯밧재 오른쪽, 집뒤평전과 붙은 북쪽에 있는 작은 골짝기이다. 옛날에 돌감나무가 있어서 돌감나무구렁이라 한다.

  • ● 돌마루 [들] : 가마솥 동쪽, 장동골 북서쪽에 있는 들이다. 장동골에서 산성골로 돌아가는데 있어 돌마루라 하였다.

  • ● 동막골고개(장고개) [고개] : 새뜸 서쪽, 던바위 능선 위에 있는 고개로, 동남쪽에서 서북쪽으로 난 고개 길이다. 장동에서 와동 동막골로 넘어가는 고개이므로 동막골고개라고 하며, 산디와 새뜸 사람들이 회덕장을 보러 다니는 고개이었기에 장고개라고도 한다. 장동과 와동의 경계를 이루는 고개이다.

  • ● 동만산 [산] : 성재 남남서쪽, 산디 남남동쪽, 산버듬 북쪽의 산이다.

  • ● 동소고개(동소재, 돈소재, 장고개) [고개] : 새뜸 남쪽, 고내미고개 남쪽, 달도지 북쪽에 있는 고개이다. 산디 사람들이 회덕장에 농산물과 나무를 팔아 돈을 벌어오는 고개라서 돈소재라 한다. 또 산디 사람들이 회덕장 보러 다니는 고개라서 장고개라고도 한다. 장동·와동·연축동의 경계를 이루는 고개이다.

  • ● 둥굿재 [고개] : 성재 서쪽 치게골에서 성재 올라가는 고개이다.

  • ● 둥굿재평전 [평전] : 산제당 동쪽 위, 둥굿재 바로 남쪽에 있는 평전이다.

  • ● 뒷산 [산] : 욕골고개 서쪽, 와동약수터 북쪽, 장고개 남쪽에 있는 산으로 와동 뒤쪽에 있는 산이라서 뒷산이라 한다.

  • ● 등잔거리날등 [능선] : 성재 남서쪽, 동만산 북쪽의 등잔거리봉의 날등이다.

  • ● 등잔거리봉 [산] : 성재 남서쪽, 동만산 북쪽 사이에 있는 산으로, 산세의 모양이 등잔을 걸어 놓은 것 같아서 등잔거리봉이라 한다. 이곳에 괘등혈의 명당이 있다고 전한다.

  • ● 딤박굴 [골] : 산디마을 남쪽, 계족산 북쪽 사이로 밤남평전 바로 서쪽 옆에 있는 골짜기이다. 골짜기의 모양이 뒤웅박과 같다고 하여 딤박굴이라 하였다.

  • ● 말고래 [골] : 산디마을 동쪽, 민날과 소태배기 사이의 골짜기이다.

  • ● 말미덩굴 [골] : 동만산 남남동쪽으로 노루골 위에 있는 골짜기로 장동 산디에서 비래리로 넘어가는 고개 바로 옆에 있다. 옛날에 말의 무덤이 이곳에 있어서 말무덤골(말미덩굴)이라 한다. 또한 옛날에 계족산, 성재에서 말을 타고 훈련이나 전쟁을 하다가 죽은 말을 이곳에 묻었다 한다.

  • ● 망태울 [골] : 삿갓봉 서쪽, 작대울 남쪽, 샛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현재는 군부대 내에 위치하여 있다.

  • ● 먹뱅이 [들] : 장동 새골 북서쪽에 있는 들판으로, 주변 산이 가파르고 골이 깊어 항시 그늘에 가려서 어둠침침하여 먹뱅이라 하였다.

  • ● 먹뱅이 [마을] : 새골 북쪽, 먹뱅이들 앞쪽에 있는 마을로 먹뱅이들 안에 위치한 마을이라 하여 먹뱅이라 하였다.

  • ● 먹뱅이(먹뱅이산) [산] : 새골 북서쪽, 먹뱅이 서쪽에 있는 산으로 먹뱅이들 위에 있는 산이라서 먹뱅이산이라 한다. 먹뱅이 마을에서 평촌으로 넘어가는 장고개가 이 산봉우리에 있다.

  • ● 모개남골 [골] : 산디마을 동쪽, 말고래 남쪽의 골짜기이다. 모과나무가 있어서 모과나무골인데 변하여 모개남골이라 한다.

  • ● 묵밭평전 [평전] : 성재 서쪽 아래, 안산 남쪽, 장동 골 동쪽에 있는 벌판이다.

  • ● 민날 [산] : 산디마을 동쪽, 집뒤평전과 붙은 산날맹이다. 산날맹이가 날카롭게 생겼다고 해서 민날이라 한다.

  • ● 민아평전 [평전] : 계족산 동쪽, 방덩굴 서북쪽, 고사래골 남쪽 사이에 있는 벌판이다.

  • ● 바깥욕골(배깥욕골) [골] : 욕골에서 서남쪽, 장동고개 쪽에 있는 골짜기로 욕골에서 볼 때 욕골밖에 있는 골짜기라서 바깥욕골이라 한다.

  • ● 밤나무평전 [평전] : 산디마을 남쪽, 딤박골 입구에 있는 벌판이다. 밤나무가 많아 밤나무평전이라 부른다.

  • ● 밤접굴 [골] : 산디마을 동쪽, 말고래 동쪽과 빈터골 서쪽사이에 있는 골짜기로 밤나무가 많아서 밤접골이라 한다.

  • ● 방덩굴(방덩골) [골] : 산디마을 동쪽, 모개남골 바로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지형이 방둥이 같아서 방덩골이라 부르며, 이곳에 장판재로 올라가는 등산로가 있다.

  • ● 방덩굴평전 [평전] : 웃들 남쪽, 방덩굴 위로 계족산 능선 위쪽에 있는 벌판이다. 방덩굴 위쪽에 있어 방덩굴평전이라 한다.

  • ● 배나무들 [마을] : 고내미고개 동쪽, 웃낭골 서쪽 사이로, 들 안쪽에 있는 마을인데 배나무가 있어서 배나무들이라 하였다.

  • ● 부궐논 [들] : 새뜸 동남쪽, 돈소재 동쪽, 옹골 서쪽 사이에 있는 논이다.

  • ● 부드레골 [골] : 징골과 장구봉 사이에 있는 골짜기이다.

  • ● 뿔땅굴 [골] : 계족산 동쪽, 고사래골 북쪽, 웃들 옆에 있는 골짜기로 옛날에 불당이 있던 골짜기여서 뿔땅굴이라 했다.

  • ● 뿔땅굴날등 [산] : 산디마을 남쪽, 뿔땅굴 서쪽에 있는 능선이다. 뿔땅굴을 따서 붙인 이름이다.

  • ● 뿔땅굴평전 [평전] : 계족산 동쪽, 뿔땅골에 있는 벌판이라서 뿔땅굴평전이라 하였다.

  • ● 빈터골평전 [평전] : 성재 남서쪽, 산제당 남쪽의 벌판이다.

  • ● 사기점골(사기점굴) [골] : 삿갓봉 서북쪽, 작대울 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옛날에 사기를 구웠다고 하여 사기점골이라 하였다. 현재는 부대 안에 있다.

  • ● 산디(산뒤, 산듸, 웃산디, 산대, 산북, 뷜터) [마을] : 계족산 동북쪽, 성재 서쪽 아래, 앞산 바로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계족산 뒤에 있는 마을이라서 산디, 또는 산북(山北)이라 부른다. 계족산 북쪽 골짜기가 좁고 길어서 4㎞가량 되는데, 장동 계족산에서 용호동 하용호에 이르기까지 열두 산디라고도 하는데, 그 중에 계족산 정상 제일 가까운데 있는 마을로 산디마을의 집집마다가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면서 집을 지어 벌집처럼 생겼다고 하여 뷜터라고 한다.

  • ● 산디서낭당 [제당] : 산디마을 입구 숲거리에 있는 서낭당이다. 매년 이곳에서 탑신제를 지낸다.

  • ● 산버듬 [골] : 성재 남남서쪽, 동만산 바로 남쪽의 골짜기이다.

  • ● 산성골(살구올, 살골) [골] : 진골 동남쪽, 장구봉 서쪽 아래에 있는 골짜기인데 계족산성이 있어서 산성골이라 하였다.

  • ● 산제당(山祭堂) [제당] : 성재 서남쪽, 소태배기 바로 동쪽 산제당평전 안에 있는 제당이다. 산신에 대한 제사를 지내는 집이므로 산제당이라 한다. 매년 음력 10월 3일에 살아있는 돼지를 제당까지 끌고 가 직접 잡아서 제를 지낸다.

  • ● 산제당평전 [평전] : 성재 서남쪽, 소태배기 바로 동쪽 위 산제당이 있는 평평한 곳이다. 산제당이 있는 평전이므로 산제당평전이라 한다.

  • ● 삿갓봉(입봉) [산] : 이현동 상봉 서쪽, 진골 북동쪽 사이에 있는 산봉우리로 장동·이현동·용호동의 경계가 된다. 산 모양이 삿갓처럼 생겼다고 해서 삿갓봉, 입봉이라 했다. 또한 마을 사람들은 삿갓봉이 이름 그대로 삿갓처럼 생긴 봉우리인데 미군이 주둔하면서, 산 중턱에 길을 내면서 더욱 띠를 두른 삿갓모양으로 변했다고 한다.

  • ● 상남배기 [골] : 성재 남남서쪽, 동만산 남쪽, 산버듬 옆에 있는 골짜기이다.

  • ● 새골(개골, 샛골) [마을] : 진골 서북쪽, 먹뱅이 마을 남쪽, 욕골 북쪽에 있는 마을로 욕골과 이어져 있다. 마을이 새로 생겨서 새골이라 하며 또는 삿갓봉에서 내려온 샛 골짜기 끝에 있는 마을이라 새골이라 한다. 군부대 부근에 있다.

  • ● 새뜸(신촌) [마을] : 산디마을을 가다가 우측 편에 위치한 마을로, 새로 생겼다고 하여 새뜸 또는 신촌이라 한다.

  • ● 새뜸교 [다리] : 새뜸마을 동쪽, 옹골 서쪽에 놓인 다리로서 산디와 욕골, 징골로 이어지는 다리이다.

  • ● 샛골 [골] : 삿갓봉에서 새골 마을 쪽으로 내려 뻗은 골짜기이다.

  • ● 선들바위(샌들바우) [바위] : 텃골 남쪽, 산디 북쪽, 묵밭평전 동쪽, 성재 서쪽으로 안질바위 아래쪽의 골짝기에 있는 바위이다.

  • ● 섯밧재 [고개] : 성재와 장판재 사이의 고개이다.

  • ● 성재 [고개] ; 계족산 북쪽, 계족산성의 남북으로 난 고개이다. 산에 산성이 있어서 고개를 성재라 한다. 이 고개는 동구와 대덕구의 경계선이 된다.

  • ● 성재(봉우재, 봉수재) [산] : 계족산 북쪽, 산디 동쪽에 있는 산봉우리인데 계족산성이 있는 고개라서 성재가 되고, 성재가 있는 산이어서, 산 이름도 성재라 하였다. 또한 봉수대가 있어서 봉우재 또는 봉수재라고도 한다.

  • ● 세멘구렁 [골] : 계족산 동쪽, 소롱굴날등 북쪽 아래에 있는 작은 골짜기이다.

  • ● 소태배기 [산] : 산디 동남쪽, 성재 서남쪽, 산제당 바로 서쪽에 있는 능선이다.

  • ● 소롱굴 [골] : 계족산 동쪽, 소롱굴날등 서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 ● 소롱굴날등 [산] : 계족산 동쪽, 소롱굴 동쪽, 고리짝 서쪽 사이에 있는 능선으로, 소롱굴의 이름을 따서 소롱굴날등이라 하였다.

  • ● 솔모랭이샴(소모랭이샘) [샘] : 산디 동남쪽, 소태배기 능선 남쪽 아래에 있는 샘이다.

  • ● 안산¹[산] : 계족산 북쪽, 산디마을 서남쪽 딤박골 상봉이다. 산디마을 앞에 있는 산이라 안산이라 한다.

  • ● 안산²[산] : 텃골 남쪽 앞, 묵밭평전 동쪽에 있는 산이다. 텃골에 있는 산이라 안산이라 하였다.

  • ● 안욕골 [골] : 장동초등학교가 있는 골짜기이다. 욕골 안쪽에 있는 골짜기라서 안욕골이라 한다.

  • ● 안정바위(안정바우) [바위] : 요강바위 남쪽, 산성골 북쪽에 있는 바위이다.

  • ● 안질바우 [바위] : 텃골 남쪽, 산디 북쪽, 묵밭평전 동쪽, 성재 서쪽에 있는 바위로 바위가 방만큼 크고 넓어서 나무꾼이나 성재로 올라가는 사람들이 앉아서 쉰다고 해서 안질바우라 한다.

  • ● 암소배 [골] : 성재 남남서쪽, 등잔거리봉 남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 ● 약먹골(약먹골) [골] : 새골의 먹뱅이 바로 북쪽에 있는 골짜기로서 서북쪽에 위치한다.

  • ● 옷낭골(옻남골, 옻나무골) [골] : 고내미고개 동남쪽, 산디 서쪽에 있는 골짜기로 옛날 이곳에 옻나무가 많아서 옻나무골이라 했는데, 변하여 옷낭골이 되었다.

  • ● 옻샴 [샘] : 성재 남서쪽, 소태배기날등 남쪽 기슭에 있는 샘이다. 물이 몹시 차서 옻이 오르면 이곳에서 목욕을 하면 낫는다 하여 옻샘이라 부른다.

  • ● 왕재산 [산] : 진골 남쪽, 산디 북쪽 사이에 있는 산이다.

  • ● 요강바위(요강바우) [바위] : 어사 홍철주 불망비 남쪽, 안정바위 북쪽에 있는 바위로 모양이 요강처럼 생겼다고 하여 요강바위라 부른다.

  • ● 욕골 [골] : 욕골 마을 서남쪽으로 장동고개에 이르는 큰 골짜기이다. 이 고개는 욕골 마을에 가까운 쪽을 안욕골이라 하고, 먼 쪽을 바깥욕골이라 한다. 옛날에는 내요동이라고도 하였다.

  • ● 욕골(욧골, 묘동) [마을] : 진골 서쪽, 새골 남쪽, 장승배기 북쪽, 장동초등학교 동쪽 사이에 있는 마을이다. 욕골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라 골짜기 이름을 따서 욕골이라 한다. 또는 산이 묘하게 생긴 마을이라서 묘동이라고도 한다.

  • ● 용호천(용호내) [내] : 계족산의 계곡에서 발원하여 산디, 짚은골, 새뜸, 욕골, 새골을 거쳐 용호동의 하산디와 하용호로 흘러가는 하천이다. 장동에서 용호동을 거쳐 금강으로 흐르는 내를 용호천이라 한다.

  • ● 웃들 [들] : 산디마을 동남쪽 위쪽에 있는 넓은 들 전체에서 가장 위쪽에 있는 들이라서 웃들이라 한다.

  • ● 웅골(움골) [골] ; 새뜸 동쪽, 산디 북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옛날에 이곳에 움막이 있어서 움막골이 움골로 변했다가 웅골로 되었다.

  • ● 일골 [골] : 징골 남쪽, 중구재 북쪽 사이에 있는 골짜기이다.

  • ● 이현고개(장고개, 큰재) [고개] : 진골에서 동쪽으로 이현동 배오개로 넘어가는 고개라서 이현고개라 하며, 이현동에서 신탄 장이나 회덕 장을 보러 가는 고개라는 뜻에서 장고개라고도 한다. 또한 진골에서 동쪽으로 넘어가는 고개 중 가장 길고 크다고 하여 큰재라고도 한다.

  • ● 작대울 [골] : 삿갓봉 서북쪽, 사기점골 남쪽, 망태울 북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 ● 장고개¹[고개] : 장동 새골 북쪽에서 신탄진 장을 보기 위해 넘어가는 고개라고 해서 장고개라고 한다. 장동에서 평촌동 새터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 ● 장고개²[고개] : 장동 새골 북쪽에서 신탄진 장을 보러 가기 위해 넘어가는 고개이다. 두 번째 고개로서 평촌동의 철도차량 정비창 뒤쪽으로 넘어간다.

  • ● 장고개³[고개] : 장동 새골과 약먹골에서 신탄진 장을 보러 다니는 고개이다. 장동 약먹골과 새골에서 평촌동의 철도차량 정비창 뒤쪽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 ● 장고개⁴[고개] : 장동 욧골에서 신탄진 장을 보러 다니는 고개이다. 장동 욧골(묘동) 남서쪽 안욧골에서 덕암동 방두마루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 ● 장동교¹[다리] : 장동우체국 동쪽, 보건소 서북쪽, 마을회관 북쪽 사이에 있는 진골 마을을 잇는 다리로 장동교라 한다.

  • ● 장동교²[다리] : 욕골 남쪽, 장승배기 북쪽 사이에 있는 다리로 진골과 텃골을 잇는다.

  • ● 장동교³ [다리] : 욕골 남쪽, 산성골 서쪽, 새뜸 북쪽에 있는 다리로서 욕골과 새뜸 또는 산디 마을을 잇는다.

  • ● 장구봉 [산] : 배산과 왕재산 사이에 있는 산봉우리로 장동과 이현동의 경계가 된다.

  • ● 장승배기 [들] : 진골 서쪽, 욕골 동쪽, 장동교와 장동교의 사이에 있는 들이다. 들가에 장승이 서 있있다 하여 장승배기라 하였다.

  • ● 장판재 [고개] : 산디마을 동쪽의 소태배기와 방덩굴 사이에 있는 고개로, 산디마을에서 웃산디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성재로 올라가는 섯밧재 고개와 갈라지는 삼거리가 있다.

  • ● 절터골 [골] : 계족산 동쪽, 소롱굴 바로 서쪽에 있는 골짜기로, 옛날에 이 골짜기에 조선시대의 사찰이 있던 곳이라 하여 절터골이라 부른다.

  • ● 절터골평전 [평전] : 계족산 동쪽, 절터골 위에 있는 평전으로 옛날 이곳에 절이 있어서 절터골평전이라 하였다.

  • ● 중구재 [산, 고개] : 텃골 북쪽, 일골 남쪽 사이에 있는 산 또는 고개이다.

  • ● 지장바우 [바위] : 성재 바로 서쪽 밑에 있는 바위이다.

  • ● 집뒤평전 [평전] : 산디마을 동쪽 바로 뒤에 있는 평전으로 산디마을 집들 뒤에 있는 평평한 곳이어서 집뒤평전이라 한다.

  • ● 진골(징골, 긴골, 장동, 도장굴, 도장골) [마을] : 욕골 동쪽, 텃골 북쪽, 삿갓봉 서쪽 샛골 남쪽 사이에 있는 마을인데, 골짜기가 긴 곳에 있는 마을이라서 긴골, 장동이라 한다. 또한 옛날에 복숭아꽃이 만발하여 감춰진 선경과 같은 골짜기라 하여 도장골이라 하였다.

  • ● 짚은골 [골] : 산디마을 서쪽, 안산 동북쪽 사이에 있는 골짜기로, 골짜기가 크고 깊어서 짚은골이라 한다.

  • ● 참새골고개(장고개) [고개] : 던바위 남쪽, 고내미고개 북쪽, 와동의 참새골, 동쪽에 있는 고개로, 산디와 새뜸 사람들이 회덕 장을 보러 다니므로 장고개라 하며 와동 참새골 위에 있는 고개라서 참새골고개라 한다. 산디와 새뜸에서 와동 오얏골로 넘어 다니는 고개이다.

  • ● 철환골 [골] : 삿갓봉 옆에 있는 골짜기이다. 철환골의 철환은 총탄을 뜻하는데 이 철환골에 미군이 주둔하고서 미사일을 저장한 곳으로 변했으니, 이 지명 역시 우연한 것은 아니라고 마을사람들은 말한다.

  • ● 청견도(챙견도) [들] : 웃산디 바로 남쪽 앞에 있는 들이다.

  • ● 치게골 [골] : 성재 서쪽으로 길게 뻗어 내린 골짜기인데 동굿고개가 있다.

  • ● 탑거리 [거리] : 산디 서쪽 바로 마을 어귀에 있는 거리로 탑이 있어서 탑거리라 하였다. 이곳에 탑과 비석이 있고 매년 탑제를 지낸다.

  • ● 태악산 [산] : 먹뱅이산 서쪽, 장동초등학교 북쪽, 방두마루 동쪽 사이에 있는 산으로 장동과 덕암동, 상서동의 경계가 되는 산이다.

  • ● 텃골(기골, 기곡) [마을] : 진골 남쪽, 안산 북쪽, 새말림 북서쪽에 있는 마을인데, 옛날에 조선시대의 절터가 있기에 텃골이라 하였으며, 옛날에는 한문으로 대동(垈洞)이라 표기하기도 하였다.

  • ● 토끼울(퇴께울) [골] : 삿갓봉 서쪽에서 약먹골 쪽으로 내려간 골짜기인데 이 골짜기에 토끼가 많이 살았다고 해서 토끼울이라 하였다.

  • ● 행저골 [골] : 새뜸(신촌) 마을 뒤의 골짜기로서 가마솥 쪽에 있다.

  • ● 홋족골 [골] : 성재 서쪽 아래, 새뜸 동쪽 용호천 건너, 웅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 ● 황서방고개 [고개] : 양먹골과 먹뱅이에서 시작되어 평촌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황서방이 나무를 지고 가다 이 고개에서 죽었다 하여 황서방고개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