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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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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덕문화원 작성일19-04-25 13:17 조회17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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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on_arrow.gif용호동(龍湖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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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호동의 입지와 자연환경
  • 용호동은 지리적으로 대덕구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삼정동과 갈전동, 서쪽은 신탄진동과 평촌동, 북쪽은 금강, 남쪽은 장동과 인접해 있는 동(洞)이다. 용호동은 용이 살고 있는 마을이라 하여 용호(龍湖)라 했고, 그 이름을 따서 용호리라 하였다. 일설에는 풍수 지리적으로 용의 형상이어서 용호라 하였다 하는데, 현재의 용호마을이 용의 꼬리가 되는 부분이고 머리가 되는 부분은 미호동 쪽이라 한다. 용호동은 신탄진에서 대청댐으로 가는 도로상의 신탄진동과 삼정동 사이에 있는 동(洞)이다. 금강 쪽은 도로를 끼고 단애로 되어 있어 토지의 이용을 할 수 없고 도로의 우측은 산으로 되어 있어 농경지가 16%정도밖에 되지 않으며, 임야가 전체의 77%를 차지하나 개발제한구역으로 되어 있다. 용호동의 자연마을로는 용호(하용호)와 상용호(하산디, 아랫산디) ·안골 등이 있다. 용호동은 예전에는 용호·상용호·안골 등이 북쪽의 금강 쪽으로 뻗어있는 조그만 내를 따라 좁게 발달된 계단식 논과 산쪽의 밭을 주로 경작하여 주민들이 생활하였던 곳이었다. 그러나 안골은 신탄진에 1905년 경부선철도가 개통되면서 신탄진 철도역이 건설되어 인구가 밀집하여 역전부락이 새로 발달하고, 또한 용호동의 안골에 인접한 금강변에 남한제지가 들어섰으며, 문평동과 목상동에 제3·4 산업단지가 건설되면서, 그곳의 주민들이 대거 신탄진의 지역으로 이주하자 안골은 주택단지로 개발되었다. 현재 안골에는 라이프 새여울아파트 및 현대아파트 등 대규모의 집단취락과 단독주택단지로 개발되어 도시화하였다. 용호와 상용호 마을은 안골과는 정반대로 이 지역 모두가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전혀 개발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 두 마을은 상대적으로 대덕구의 다른 지역에 비하여 아직은 옛 마을의 모습이 크게 훼손되지 않은 채 보존되고 있다. 그럼에도 두 마을은 농경지가 많지 않아 주민들의 생업은 점차 신탄진이나 대전 등의 도시화 된 지역에 생업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용호에 18호, 상용호에 40여호, 안골에 70여호 합하여 130호 이르렀다. 그러나 현재는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안골은 완전히 도시화되고, 용호와 상용호는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임으로 생활기반이 취약하고, 주거에 불편하여 점차 취락이 위축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용호마을은 예전에는 진주강씨와 경주이씨가 집성촌을 이루었고, 친족간의 유대도 강하였으나,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떠나고 타성이 이주해 오면서 부락 내 유대가 약화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용호동의 토지 이용실태를 『'99통계연감』을 통해 살펴보면 토지의 총 면적은 4,118,115㎡에 전(田)이 271,413㎡로 7%, 답(畓)이 375,009㎡로 9%, 임야가 3,173,149㎡로 77%, 대지가 31,075㎡로 1%, 하천이 169,711㎡로 4%이며 기타 도로 등이다. 전체 면적 중 77% 정도가 개발제한구역인 임야로 되어 있고, 논밭으로 이용되는 경지는 약 16%이며, 기타 7% 정도가 시가지, 도로 등을 볼 때 용호동은 산촌임(山村)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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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호동의 연혁
  • 용호동의 지역은 백제 때는 우술군이었다가, 신라시대에는 비풍군으로 개명하였고, 그 밑에 유성현과 적오현(뒤에 덕진현)을 그 속현으로 두었다. 고려초기에는 비풍군을 회덕현으로 읍호를 바꾸었고, 이후 고려 현종 9년(1018)에는 공주의 속현으로 귀속되었다. 그런데 고려시대에 유성현과 덕진현이 공주의 속현이었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현종 9년의 군·현 개편시 유성현과 덕진현이 회덕의 속현에서 벗어나 공주의 속현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후 회덕현은 고려 명종 2년(1172)에 처음으로 감무(조선시대의 현감과 같음)를 두게 되어 주현으로 승격하게 되었다. 조선초기 태종 13년(1413)에 전국을 8도제로 개편하면서 행정구역을 서울→도→주·부·군·현→면(방·사)→리(동·촌) 체제로 개편하였다. 이에 따라 회덕은 충청우도 공주목에 속하는 종6품의 현감이 다스리는 회덕현이 되었다. 이와 같이 8도제의 실시와 더불어 소현의 병합이 이루어졌는데, 이 때에 유성현이 폐지되면서 그 영역이 회덕현과 진잠현에 속하게 되었다. 정조 13년(1789)의 {호구총수}에 의하면 지금의 용호동이 회덕군 일도면 용호리로 되어있음을 볼 때, 조선중기에 이미 용호리라는 행정구역과 지명이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조선후기 고종 32년(1895) 갑오개혁으로 인한 행정구역의 개편으로 태종이래 482년간 실시해오던 8도제가 폐지되고, 전국이 23부제를 실시하면서, 종래의 부·목·군·현 등의 지방행정 단위를 모두 폐합하여 336개 군을 신설하고 이를 23개의 부에 속하게 하였다. 따라서 회덕현은 공주부에 속하는 27개 군의 하나인 회덕군으로 개편되었고, 용호동은 회덕군 일도면 용호리가 되었다. 이 당시 회덕의 구역은 기존의 회덕의 7개 면(현내면, 동면, 외남면, 내남면, 서면, 근북면, 일도면)에 공주군의 5개 면(천내면, 유등면, 탄동면, 구즉면, 산내면)과 청원군 주안면이 편입되어 이전보다 크게 행정구역이 확대되었다.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회덕군과 진잠군이 통합되어 대전군으로 되면서 용호리는 하산리·용호리·장동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대전군 북면 용호리로 개편되었다. 1935년 11월 1일에는 대전읍이 부로 승격되어 대전읍은 폐지되고 대전부와 대덕군으로 분리되었는데, 이때 용호동은 대덕군 북면 용호리가 되었다. 1973년 7월 1일 북면이 신탄진읍으로 승격함에 따라 신탄진읍 용호리가 되었고, 1989년 1월 1일 대전직할시의 확장에 따라 대덕군이 폐지되고 대덕구가 설치되면서, 용호동은 법정동이면서 신탄진동에 소속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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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호동의 전통마을과 씨족
  • ○ 용호(龍湖, 하용호) : 용호는 대청댐 역조정지댐 바로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용이 살고 있던 금강가에 자리잡고 있는 마을이라서 용호라 하였다. 또는 강건너 현도면에서 보면 이 마을이 들어선 곳이 용머리이며, 용의 눈에 해당되는 곳에 집을 짓고, 다리를 건너가서 마을을 바라보면 용이 입을 벌리고 있는 모습처럼 보이는데서 유래되었다고도 한다. 강가 낮은 쪽에 있다고 하여 하용호라 하기도 하였다. 옛날에는 용호의 총 호수는 18호 이었는데 진주강씨 16호, 곡산연씨 1호, 경주이씨가 1호이었고, 타성은 없었다. 현재는 15호인데 진주강씨 7호이고 나머지는 기타 성씨들이다. ○ 상용호(上龍湖, 하산디, 아랫산디) : 상용호는 하산디라고도 한다. 하산디는 덕고개 서쪽, 뒷산 동쪽, 돌고개 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장동에 산디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보다 아래쪽에 있는 마을이라서 하산디 혹은 아래산디라고 한다. 즉 상용호는 이 하산디 마을 일대를 말한다. 산 윗쪽에 있어서 상용호라 하는데, 금강 아래쪽의 마을을 다르게는 하용호라 한다. 하산디는 양지뜸과 음지뜸과 가운데뜸으로 나뉜다. 가운데뜸은 하산디 마을의 일부로서 하산디마을 북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위치로 보아 양지뜸과 음지뜸의 중간에 있는 마을이라고 하여 가운데뜸이라 하였다. 또 하산디 마을 동쪽 양지쪽에 있는 마을을 양지뜸이라고 한다. 그리고 하산디 양지뜸 서쪽 맞은편 용호천 건너 마을을 음지뜸이라고 한다. 남쪽으로 산날맹이가 가려 햇볕이 잘 들지 않아 음지뜸이라고 하였다 한다. 그리고 음지뜸에서 가운데뜸과 양지뜸으로 가는 길 양쪽으로 탑이 서 있다. 돌을 쌓아서 탑같이 만들었다 하여 탑제라 부른다. 이 마을은 풍수지리에 의하면 지네 혈이라고 한다. 그런데 용의 이빨 부분에 다리가 세워지자 동네의 젊은이들이 많이 죽어갔다고 한다. 이에 동네 어른들은 지네의 허리를 끊었기 때문이라 하여 지금의 위치에 돌을 쌓고 탑을 세웠다고 한다. 상용호 예전에는 총 40여 호로 경주이씨가 대부분이었고, 타성으로는 은진송씨 2호, 인동장씨가 1호 등이었다. 현재는 약 22호 정도인데 그 가운데 경주이씨가 15호, 은진송씨 2호, 기타성씨 들이 새로 이주해와 살고 있다. ○ 안골(內洞) : 안골은 모래방께 북쪽의 시내미골 안에 있는 마을이다. 이 곳에 마을이 형성된 것은 약 400∼500년 전으로 추정되며, 가장 먼저 터를 잡은 경주이씨가 18대째 살고 있다. 마을이 한창 번성했을 때에는 70여 호나 되었다 한다. 그리고 세거 성씨로는 경주이씨가 대부분이고, 밀양손씨. 함양박씨 등이 일부 거주하고 있다. 현재는 대우아파트·한신아파트 등이 들어서 이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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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호동의 세거성씨
  • ○ 진주강씨(晋州姜氏) : 진주강씨로 회덕에 입향조는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강문한(1464년∼1547년)이다. 강문한은 원래 세거지이었던 충남 온양에서 회덕의 석봉동으로 입향하였다. 강문한은 북청판관을 지낸 강자위의 아들로, 그의 선조는 고려시대 거란의 침입시 강감찬의 부장으로 출전하여 흥화진에서 적을 격하였고, 또한 개경에 처 들어온 적을 자산에서 대파하여 공신이 되었던 은열공 강민첨이다. 강문한이 회덕으로 이주하게된 연유는 잘 알 수 없으나 회덕에 정착하고 있던 생원 김숙준의 딸인 광산김씨와 혼인하였던 것으로 보아 처향으로 이주한 경우가 아닌가 한다. 회덕에 입향한 강문한의 후손들이 회덕에서 크게 번성하여 은진송씨와 더불어 회덕을 대표하는 성씨로 송시열의 {회덕향안서}에서는 남송북강(南宋北姜)이라 일컬어 졌다. 이처럼 회덕에 세거하였던 진주강씨가 족세를 회덕을 대표하는 성씨의 하나로 번성하게 된 것은 회덕 입향 후 후손들이 활발히 사로에 진출하였던 것이 그 배경이 되었다.

용호동에 세거하였던 진주강씨는 회덕에 입향하였던 강문한의 증손으로 즉 강문한-강린-강운상-강첨-강학년으로 이어지는 강학년의 후손들로 복천 강학년의 호를 따서 복천파라 한다. 그러나 정확히 언제, 누구로부터 용호동에 세거하게 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입향 시기도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강학년의 생년이 1586년(선조 18)이고 몰년이 1647년(인조 25)이었으므로 17세기 후반이었을 것이라는 점만은 말할 수 있다.

○ 경주이씨(慶州李氏) : 용호동의 경주이씨는 시조(始祖) 이알평(표암공)으로부터 17세 이천(국당공파 파조)의 3자 이달충(제정공파 파조)의 후손들이다. 그리고 용호동의 경주이씨들은 제정공파의 후손들 가운데서도 시조로부터 24세 되는 연산군과 명종 대에 병절교위를 지냈던 이성호의 후손들이다. 이성호의 후손들이 용호동에 입향하게 입향 연유와 입향 시기 등은 정확히 확인 할 수 없다. 이성호에게는 이인과 이굉 두 아들을 두었는데 이인의 후손들은 미호동에 세거하였고, 이굉의 후손들은 용호동과 석봉동에 세거하였다. 그런데 이굉의 생년이1536년(중종 31)이고 몰년이 1597년(선조 30)이어서 최소한 16세기 후반이후에 용호동에 입향하였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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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호동의 옛 지명
  • ● 가운데뜸 [마을] : 하산디 마을의 일부로 하산디 마을 북쪽에 있고, 음지뜸이 동북쪽, 양지뜸이 북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위치로 볼 때 양지뜸과 음지뜸의 중간에 있는 마을이라서 가운데뜸이라 하였다.

  • ● 달송고개(하산디고개) [고개] : 안골고개와 이어진 고개로 하산디에서 석봉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하산디에서 석봉동 달송(達宋)으로 넘어가는 고개라고 하여, 하산디 쪽 사람들은 달송고개라 하였고 석봉동 사람들은 이 고개를 통해 하산디로 넘어간다고 하여 하산디고개라 불렀다.

  • ● 대원사(大願寺) [사찰] : 절골 안에 있던 절이나 현재는 절이 없어졌다.

  • ● 덕골고개(덕고개) [고개] : 하산디 양지뜸이 동쪽 뒷산에 있는 고개로 하산디에서 갈전동 덕골로 넘어 다니는 고개라 하여, 덕골고개 혹은 덕고개라고 하였다.

  • ● 덕운고개(德雲고개) [고개] : 하용호에서 덕운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석봉동 덕운(한절구지) 뒷산의 고개라 하여 덕운고개라 하였다.

  • ● 도라뜸(도라뜸이) [들] : 하산디 가운데뜸 북서쪽, 썩은배미골 서쪽에 있는 들이다. 하산디 양지뜸과 음지뜸 마을에서 산모퉁이를 돌아서서 들이 있다고 하여 돌아서 뜸인데, 이것이 변하여 도라뜸이라 하였다.

  • ● 돌고개 [고개] : 하산디 남쪽, 장동 북쪽 사이에 있는 고개로 하산디에서 장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 ● 뒷산 [산] : 하산디 음지뜸 서쪽에 있는 뒷산으로, 하산디 음지뜸 바로 뒤에 있는 산이라 하여 뒷산이라 한다.

  • ● 뒷산골 [골] : 하산디 음지뜸과 뒷산 사이에 있는 골짜기이다. 하산디 뒷산 정상에서 동쪽으로 뻗은 골짜기이라서 뒷산골이라 한다.

  • ● 모래방께 [골] : 안골고개 서북쪽, 하산디고개(달송고개) 동남쪽 사이로, 이곳에 모래가 많이 있어서 모래방께라 하였다.

  • ● 배꼽논 [들] : 하산디 음지뜸의 북쪽으로 붙어 있는 작은 논이다. 위치로 보아 하산디 한가운데 있으며, 배꼽같이 솟아 있는 작은 논이라서 배꼽논이라 했다.

  • ● 불뭇골 [골] : 하용호 남쪽에 있으며 용호천에서 동쪽 산 사이의 골짜기이다.

  • ● 덕달이골[골] : 불뭇골 안에 있는 골짜기로 어린애들이 죽으면 나무에다 덕달이를 하였다고 하여 덕달이골이라 했다.

  • ● 붓당골(佛堂골) [골] : 뒷산골 북쪽, 시내미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장고개 넘어가는 길이 이 골짜기에 있다. 옛날에 이 골짜기에 불당이 있어서 불당골이라 하였으나 현재는 절터만 있고 불당은 없어졌다.

  • ● 삿갓봉(입봉) [산] : 갈전동의 갈밭 서남쪽, 이현동의 상봉(上峰) 서쪽, 장동의 징골 북동쪽, 용호동 하산디의 남쪽 사이에 있는 산봉우리이다. 산꼭대기 모양이 삿갓같이 생겼다고 하여 삿갓봉 또는 입봉이라 한다. 용호동, 갈전동, 장동의 경계를 이루는 산봉우리이다.

  • ● 상용호(上龍湖, 하산디, 아래산디) [마을] : 하산디 마을을 말하는데, 용호마을 위쪽에 있어서 상용호라 한다. 반대로 금강 아래쪽의 마을은 하용호라 한다.

  • ● 서당골고개 [고개] : 하산디 서쪽, 평촌(坪村)의 동쪽 사이에 있고, 뒷산 남쪽에서 동서로 가로놓인 고개이다. 하산디에서 평촌 서당골로 넘어가는 고개라서 서당골고개라 한다. 또는 하산디에서 신탄진과 회덕 장을 보러 다니는 고개라고 해서 일명 장고개라고도 한다.

  • ● 썩은배미 [들] : 하산디 북동쪽에 있는 논으로 농토에 걸음기가 많아서 농사가 잘되어서 썩은배미라 했다.

  • ● 썩은배미골 [골] : 하산디 북동쪽에 있고, 썩은배미가 있는 골짜기이다. 썩은배미 논 위쪽에 골짜기가 있어 썩은배미골이라 한다. 이 고개는 하산디와 삼정동을 잇는다.

  • ● 썩은배미고개 [고개] : 하산디 북동쪽에 있고, 썩은배미가 있고, 썩은배미 골짜기에 고개가 있어 이를 썩은배미고개라 한다.

  • ● 시내미골 [골] : 하산디 음지뜸 북서쪽, 안골고개 동쪽 있는 골짜기로, 용호천 서쪽으로 작은 시내가 흐른다고 시내미골이라 했다. 옛날에 어린아이가 죽으면 이 골짜기에 묻었다 한다.

  • ● 안골 [마을] : 모래방께 북쪽의 시내미골 안에 있는 마을이다.

  • ● 안골고개 [고개] : 하산디 음지뜸과 하산디고개 사이로, 안골 바로 남쪽에 있는 고개이다. 안골마을에 있는 고개라서 안골고개라 한다.

  • ● 양지뜸(양지뜸이) [마을] : 하산디 마을 안에 있는 마을로, 하산디 마을 중에서 동쪽 양지쪽에 있는 마을이라서 양지뜸이라 한다. 양지뜸이 서쪽 용호천 건너 마을을 음지뜸이라 한다.

  • ● 용머리(용두산) [산] : 하용호 앞에 있는 산인데, 산의 모양이 용의 머리처럼 생겼다고 하여 용머리 또는 용두산이라 하였다.

  • ● 용바우(용바위) [바위] : 대청댐의 역조정지 댐 바로 옆에 있는 바위이다. 용머리 산날맹이 끝에 있어서 용바우라 한다. 옛날 이곳에 강씨(강적 등 12종형제)가 정자를 세우고 놀던 곳이다. 자세한 일화는 강씨 가승에 전해온다.

  • ● 용수암(龍水庵) [사찰] : 용정초등학교 용호분교 남쪽 산중턱에 있는 암자이다.

  • ● 용호(龍湖, 하용호) [마을] : 대청댐의 역조정지 댐 바로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용이 살고 있던 금강가에 자리잡고 있는 마을이라서 용호라 하였다. 또는 강가 낮은 쪽에 있다고 하여 하용호라 하고, 용호 위쪽의 하산디 마을을 상용호라 한다.

  • ● 용호교¹[다리] : 용호 마을 서북쪽, 대청댐의 역조정지 댐 바로 남쪽에 있는 다리이다. 용호동의 용호천을 가로지르는 다리라 하여 용호교라 한다.

  • ● 용호교²[다리] : 용수암 동쪽 용호천을 건너는 다리이다.

  • ● 용호나루[나루] : 대청댐의 역조정지 댐 서쪽 아래, 용정초등학교 용호분교 앞 금강 변에 있던 나루터이다. 용호에 있던 나루터라서 용호나루터라 한다. 용호에서 충북 청원군 현도면 노산리로 건너다녔으나, 대청댐의 역조정지 댐 건설 후 나루가 없어졌다.

  • ● 용호천(용호내) [내] : 돌고개에서 하산디 용호로 흐르는 내로 용호동을 가로질러 흐른다 하여 용호천, 또는 용호내라 한다.

  • ● 음지뜸(음지뜸이) [마을] : 하산디 양지뜸 서쪽 맞은편에 있는 마을이다. 남쪽으로 산에 가려 햇볕이 잘 들지 않아 음지뜸(이)이라 하였다.

  • ● 임청약수터 [약수] : 산너머농장 북쪽, 용호분교 서쪽, 대청로 길옆에 있는 약수터이다.

  • ● 장고개¹(쟁고개) [고개] : 붓당골에서 평촌(坪村) 무지니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하산디에서 무지니를 거쳐 신탄진 장을 보러 다니는 고개라서 장고개라 한다.

  • ● 장고개²(서당골고개) [고개] : 하산디 음지뜸에서 평촌동 서당골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하산디에서 서당골 또는 무지니를 거쳐 신탄진 장을 보러 다니는 고개라서 장고개라 한다. 또는 서당골로 넘어가는 고개라서 서당골고개라고도 한다.

  • ● 절골 [골] : 모래방께 남쪽, 대원사가 있는 골짜기로 대원사란 절이 있는 골짜기라 하여 절골이라 한다.

  • ● 탑제 [탑] : 음지뜸과 양지뜸사이에 용호천이 흐르는데, 두 마을을 이어주는 하산교 옆에 할아버지탑과 할머니탑이 위치해 있다.

  • ● 할아버지탑 [돌] : 음지뜸과 양지뜸을 있는 다리(하산교) 옆에 할아버지탑(장군석)이 있고 그 옆에 할머니탑이 위치해 있다.

  • ● 하산교 [다리] : 음지뜸과 양지뜸 사이의 용호천에 놓여진 다리로 하산디의 '하산'을 따서 하산교라고 한다. 바로 옆에 할아버지탑과 할머니탑이 있다.

  • ● 하산디(상용호, 하산대, 하산뒤, 하산리, 아랫산디) [마을] : 덕고개 서쪽, 뒷산 동쪽, 돌고개 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산 뒤쪽에 위치하고 있어 산디라 하는데, 장동에 산디마을이 있기에 이 마을보다 아래쪽에 있는 산 뒤 마을이라서 하산디·아래산디라고 하며, 용호마을 위쪽의 마을이라 하여 상용호라고도 한다.

  • ● 하산디고개(덕고개, 덕골고개) [고개] : 하산디에서 덕골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하산디 쪽에서는 하산디고개라 하고, 덕골 쪽에서는 덕골고개 또는 덕괘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