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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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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덕문화원 작성일19-04-25 13:18 조회15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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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on_arrow.gif이현동(梨峴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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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동의 입지와 자연환경
  • 이현동은 지리적으로 대덕구의 동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동구 효평동, 서쪽은 장동과 용호동, 남쪽은 장동과 동구 효평동, 북쪽은 갈전동과 접하고 있는 동(洞)이다. 이현동은 뒷산 모양이 둥글넓적한 배(梨)와 같이 생겼다고 하여 배산이라 하였다. 배산 동쪽 아래 갈밭에서 심곡으로 넘어오는 고개를 배오개라 했는데 이 고개의 이름을 따서 이현(梨峴)이라 하였다. 또한 심곡에서 동북쪽 장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에 돌배나무가 많아 배고개라 하였다고 한다. 이현동은 이현(梨峴)·심곡(深谷) 2개의 마을로 구별되는데 신탄진에서 동구 직동으로 가는 길을 중심으로, 동쪽으로 대청호를 끼고 있는 마을이 이현이다. 이곳에는 동래정씨가 누대에 걸처 세거하고 있는 동래정씨 집성촌이다. 그리고 도로의 서쪽 마을은 심곡마을로 경주김씨 판윤공파가 주로 세거하고 있는 마을이다. 심곡 마을과 이현 마을은 동서로 계곡을 따라 길게 취락이 형성되어있다.

이현동은 대청댐을 막기 전에는 심곡의 골짜기에서 금강으로 빠지는 하천을 따라 계단식으로 발단된 논과 주위에 밭을 가지고 있던 마을이다. 심곡 마을 주위는 밭이 많고 아직도 돌담이 있으며, 가을에는 마을과 동구 직동으로 넘어가는 길가에 감나무가 많아, 가을이 되면 정취와 풍요로움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대청댐 건설로 이현동의 동쪽으로 금강으로 흘러가던 하천변의 농토는 대부분 수몰되었으나, 현재의 심곡 마을과 이현 마을은 지대가 높은 곳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수몰되지 않아, 옛 취락의 형태를 잘 보존하고 있다. 이현 마을은 심곡 마을에 비하여 새로 건립된 주택들이 많은 편이다. 그리고 대청호반 주변의 마을이 점차 관광휴양지로 변하여 음식점의 영업이 활발하지만 이현동에는 음식점이 두 곳밖에 없다.

현재 이현동의 토지 이용현황을 살펴보면 총 2,337,142㎡에 전(田)이 213,146㎡로 9%. 답(畓)191,419㎡로 8%, 임야가 1,645,444.㎡로 70%와 기타 토지로 되어 있다. 이를 볼 때 마을 대부분이 임야이고 전답이 17%에 불과하여 영세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곳은 상수원 보호구역이고 개발제한구역이라 아직은 옛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주민들의 생업은 아직도 논과 밭농사 등에 크게 의지하고 있으나 주민들의 일부분은 대전이나 신탄진 등의 도시지역에 직장을 갖고 출퇴근하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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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동의 연혁
  • 이현동 지역은 백제 때는 우술군이었다가, 신라시대에는 비풍군으로 개명하였고, 그 밑에 유성현과 적오현(뒤에 덕진현)을 그 속현으로 두었다. 고려초기에는 비풍군을 회덕현으로 읍호를 바꾸었고, 이후 고려 현종 9년(1018)에는 공주의 속현으로 귀속되었다. 그런데 고려시대 유성현과 덕진현이 공주의 속현이었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현종 9년의 군·현의 개편시에 유성현과 덕진현이 회덕의 속현에서 벗어나 공주의 속현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후 회덕현은 고려 명종 2년(1172)에 처음으로 감무(조선시대의 현감과 같음)를 두게 되어 주현으로 승격하게 되었다.

조선초기 태종 13년(1413)에 전국을 8도제로 개편하면서 행정구역을 서울→도→주·부·군·현→면(방·사)→리(동·촌) 체제로 편성하였다. 이에 따라 회덕은 충청우도 공주목에 속하는 종6품의 현감이 다스리는 회덕현이 되었다. 이와 같이 8도제의 실시와 더불어 소현의 병합이 이루어졌는데 이 때에 유성현이 폐지되면서 그 영역이 회덕현과 진잠현에 속하게 되었다.

정조 13년(1789)의 {호구총수}에 의하면 지금의 이현동이 회덕현 일도면 이현리로 기록되어 있어 조선중기에 이미 이현리라는 행정구역과 지명이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조선후기 고종 32년(1895) 갑오개혁으로 인한 행정구역의 개편으로, 태종이래 482년간 실시되었던 8도제가 폐지되고 전국이 23부제를 실시하면서, 종래의 부·목·군·현 등의 지방행정 단위를 모두 폐합하여, 336개 군을 신설하고 이를 23개 부에 속하게 하였다. 이로서 회덕현은 공주부에 속하는 27개 군의 하나인 회덕군으로 개편되었고, 이현동은 회덕군 일도면 이현리가 되었다. 이 당시 회덕의 구역은 기존의 회덕 7개 면(현내면, 동면, 외남면, 내남면, 서면, 근북면, 일도면)에 공주군 5개 면(천내면, 유등면, 탄동면, 구즉면, 산내면)과 청원군 주안면을 편입하여 이전보다 크게 행정구역이 확대되었다.

1914년에는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회덕군과 진잠군이 통합되어, 대전군으로 되면서 이현동은 심곡리·이현리 일부가 합하여져, 대전군 북면 이현리로 개편되었다. 1935년에는 대전읍이 부로 승격됨에 따라 대전부와 대덕군이 분리되었는데, 이때 이현동은 대덕군 북면 이현리가 되었다. 그후 1973년 북면이 신탄진읍으로 승격되면서 이현동은 신탄진읍에 속하게 되었고, 1989년 1월 1일 대전직할시의 지역확대로 대덕군의 폐지와 동시에, 대덕구가 설치되면서 이현동은 신탄진동에 소속된 법정동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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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동의 전통마을과 씨족
  • ○ 심곡(짚은골) : 고래골 남쪽, 서낭당고개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양달과 음달로 나뉜다. 심곡은 산골 깊숙한 곳에 마을이 있기 때문에 깊은골이라 했고, 이것의 한자표기가 심곡(深谷)이다. 심곡 마을은 세부적으로 양달마을과 음달 마을로 나뉜다. 양달마을은 심곡 마을 중간의 골짜기에 물이 흐르는데 그 북쪽을 양달이라 하였다. 즉 심곡 마을에서 햇볕을 많이 받는 쪽의 마을을 양달마을이라 하였다. 음달 마을은 양달마을 맞은 편 남쪽에 있는 마을로, 음지쪽에 위치해 있어 햇볕이 잘 들지 않기 때문에 음달 마을이라 하였다. 심곡 마을은 아직도 담이 대부분 돌담으로 되어 있을 만큼 예전의 자연촌락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대덕구의 자연촌락이라 할 수 있다. 심곡 마을은 경주김씨 판윤공파의 집성촌으로 경주김씨가 약 20호 정도이다. 경주김씨로 이현동의 입향조는 김덕음으로 되어 있는데 그의 묘비를 보면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 때 의병을 모집하여 싸웠다고 되어있는 것으로 보아 17세기 전반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정확한 입향 사유는 알 수 없다. 심곡에서 이현 마을로 가는 중간에 경주김씨 제실인 심곡사(深谷祠)가 자리하고 있다

○ 이현마을 : 이 마을의 뒷산 모양이 둥글넓적한 배(梨)와 같이 생겼다고 하여 배산이라 하였다. 배산 동쪽 아래 갈밭에서 심곡으로 넘어오는 고개를 배오개라 했는데 이 고개의 이름을 따서 이현(梨峴)이라 하였다. 또한 심곡에서 동북쪽 장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에 돌배나무가 많아 배고개라 하였다고 한다.

이현동 배오개 고개에 있는 길을 비선거리(비성거리)라고 하는데, 이 길가에 비석들이 서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리고 비선거리 옆에 있는 큰 느티나무를 서낭당나무라고 하는데, 이는 나무 아래에 서낭당이 있어 유래된 것이다. 이현은 심곡에 비해 밭은 적으나, 논이 많은 편에 속하고 지형에 있어서도 심곡보다는 비교적 탁 트인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이현 마을을 음달과 양달로 구분할 수 있는데 음달 마을은 논이 많은 지역이고, 양달 마을은 촌락이 자리한 지역이다. 예전에는 돌담이 많고 담배농사로 인한 담배 건조장이 있었다. 이 마을은 주로 벼농사를 지었으나 많은 논이 수몰되면서 밭농사에 대한 비중이 커졌다. 이현에는 동래정씨가 10호로 누대에 걸쳐 세거하는 집성촌이고, 청송심씨 1호, 진주하씨가 1호 정도 살고 있다. 동래정씨의 입향 시기는 약 450여년 전쯤으로 후손들은 말하고 있으나, 정확한 입향조와 입향시기 그리고 입향 사유는 알 수 없었다. 이현동에서 갈전으로 넘어가는 우측 산마루에 동래정씨 제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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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동의 세거성씨

  • ○ 경주김씨(慶州金氏) : 이현동의 심곡은 경주김씨 계림군파 11세 김덕음의 후손들이 세거하는 집성촌이다. 김덕음이 이현동에 입향하기 전에 세거하였던 곳은, 족보상 김덕음의 선조들의 묘가 충청북도 청원군 남일면 지역에 있는 것으로 보아, 그곳에서 세거하다 회덕 이현동로 입향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입향 시기는 김덕음의 몰년이 인조 14년(병자, 1636)이었던 것으로 보아 17세기 전반에 이현동에 입향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덕음이 입향하게된 연유는 정확하게 상고하기는 어렵다.

○ 동래정씨(東來鄭氏) : 동래정씨가 회덕의 이현동에 입향한 시기와 입향조가 누구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동래정씨의 회덕 입향조를 정복시로 말하기도 하나, 정확하게 고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복시가 회덕의 입향조라고 할 수 있다면 동래정씨의 회덕 입향 시기는 정복시의 생몰년이 1522년(중종 17)∼1595년(선조 28) 이었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16세기에 해당된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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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동의 옛 지명
  • ● 개미산[산] : 심곡과 동구 소들의 경계에 있으며, 중봉 남서쪽과 뽁쪽개산 동북쪽 사이에 있는 산이다. 산봉우리와 능성이 가파르고 개미처럼 잘록한 형상을 지니고 있어 개미산이라고 한다.

  • ● 고래골[골] : 배오개에서 양지뜸, 배오개 마을에서 피골모랭이로 뻗어 내려간 골짜기이다. 갈전동에서는 갈밭 쪽의 고래골을 앞고래골이라 하고, 이현 쪽의 고래골을 뒷고래골이라 한다. 그러나 이현동에서는 반대로 이현쪽을 앞고래골, 갈전쪽을 뒷고래골이라 한다.

  • ● 네거리고개[고개] : 깊은골 서남쪽에 있는 고개로 뽁쪽개산에 있는 고개이다. 이 고개에서 장동의 징골과 웃산디, 이현의 깊은골, 동면의 갓점으로 가는 네거리가 있어 네거리고개라 했다.

  • ● 느티나무(둥구나무, 정자나무)[나무] : 이현 양지뜸 마을 앞 입구에 있는 오래된 고목이다.

  • ● 당산고개[고개] : 심곡 음달에서 동구 소들의 참새골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대덕구와 동구의 경계되는 고개로 이 곳에 서낭당이 있어 당산고개라 한다.

  • ● 도장골(도장굴)[골] : 배오개 마을 북쪽, 재성골 남쪽 사이에 있는 골짜기로, 상봉 동쪽 아래로 뻗어 있다. 이 들을 감싸고 있는 것이 그림 같이 아름답다고 해서 도장골이라 한다.

  • ● 물뻔들[들] : 심곡 남서쪽, 회가마골 남쪽, 뽁쪽개산 북쪽에 있는 논이다.

  • ● 방체뚝(방제뚝)[제방] : 피랑바위 남쪽, 선지 북쪽 사이에 있는 제방이다. 현재는 대청댐으로 인해 수몰되었다. 배오개 마을 앞 피골모랭이로 흘러내리는 물을 막아 가두어 농수로 쓰기 위해 쌓은 제방이다.

  • ● 배산[산] : 심곡 서북쪽의 산으로 모습이 먹는 배와 같이 생겨서 배산이라 했다. 이 산으로 인해 이현동이라는 명칭이 나오게 되었다 한다.

  • ● 배오개(배고개, 이현) [고개] : 상봉 서남쪽, 배산 동북쪽 사이의 골짜기에 있는 고개이다. 배산 아래에 있는 고개라서 배오개라 했다. 또는 옛날에 돌배나무가 많이 있는 고개라서 배오개라 했다.

  • ● 배오개 [마을] : 배오개고개에서 뻗어 내린 고래골이 끝나는 위치한 마을로, 도장골 마을이 있다. 배오개고개 이름과 연관이 있는 마을 이름이다.

  • ● 뽁쪽개산 [산] : 심곡 남서쪽, 개미산 서쪽에 있는 산으로 모양이 뾰족하게 생겼다 하여 뽁쪽개산이라 부른다.

  • ● 붉은뎅이 [들] : 배오개 북서쪽, 갈전동 고래골 남쪽에 있는 들판으로 주위의 산 빛이 붉다고 하여 붉은뎅이라 하였다.

  • ● 비선거리(비성거리) [거리] : 배오개고개에 있는 길로, 비석들이 서 있는 길이란 뜻이다.

  • ● 상봉 [산] : 배오개 마을 서북쪽, 배오개고개 동북쪽에 있는 산이다.

  • ● 서낭당고개(당산고개, 숫골고개, 효평고개, 할미성) [고개] : 심곡 동남쪽, 동구 소들의 참새골 서북쪽, 중봉 동북쪽에 위치한 고개로 심곡과 효평을 잇는 고갯길로 이곳에 서낭당이 있어서 서낭고개 또는 당산고개라 했다.

  • ● 서낭당나무 [나무] : 배오개고개 비석거리 옆에 있는 느티나무인데, 나무 밑에 서낭당이 있어서 서낭당나무라 했다.

  • ● 선지터 [터] : 안산 동쪽 함박골 밑에 있는 금광터이다.

  • ● 숫들(물가리) [들] : 피골모랭이 북쪽, 방체뚝 남쪽, 함박골 동쪽에 있는 들로, 농수가 많았기 때문에 숫(水)들이라 했다. 현재는 대청댐으로 인해 수몰되었다.

  • ● 심곡(짚은골) [마을] : 고래골 남쪽, 서낭당고개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양달과 음달로 나뉜다. 산골 깊숙한 곳에 마을이 있기 때문에 깊은골이라 했고, 이것의 한자 표기가 심곡이다.

  • ● 안산 [산] : 배오개 마을 동남쪽, 동구 소들 북쪽에 있는 작은 산이다. 대덕구와 동구의 경계가 된다.

  • ● 양달 [마을] : 심곡마을 중간을 골짜기 물이 흐르는데, 그 북쪽을 양달이라 한다. 심곡 마을에서 햇볕을 많이 받는 마을을 양달이라 하고, 햇볕이 적게 드는 마을을 음달이라 한다.

  • ● 양지뜸 [마을] : 이현마을 북쪽 마을로 햇볕이 잘 들기 때문에 양지뜸이라 한다.

  • ● 용굴[굴] : 심곡 쪽으로 뽁쪽개산 아래쪽에 있는 굴이다. 옛날에 이 굴속에 물이 많고 용이 살았다고 해서 용굴이라 했다. 지금은 그 입구를 막아 놓았다.

  • ● 음달 [마을] : 심곡의 양달 맞은편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음지쪽에 햇볕이 잘 받지 못하는 마을이라 하여 음달이라 한다.

  • ● 음지말 [마을] : 이현의 양지말 맞은편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음지쪽이어서 햇볕을 잘 받지 못하는 마을로 음지말이라 한다.

  • ● 이현 [마을] : 배오개 마을 서남쪽에 있는 마을로, 양지쪽은 양지말, 음지쪽은 음지말이라 한다.

  • ● 이현고개(큰재, 장고개) [고개] : 배오개 고개에서 장동 진골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이현동에서 가장 넓고 긴 고개이다. 또한 진골을 거쳐 회덕 장을 보러 다니는 고개라서 장고개라 한다.

  • ● 장구봉 [산] : 배산 서쪽, 이현고개와 장고개 사이에 있는 산봉우리이다.

  • ● 재상골(재성골) [골] : 함박골 남쪽, 도장골 북쪽 사이의 골짜기인데, 안산 봉우리에서 남쪽으로 쭉 내리 뻗은 골짜기이다. 이 골짜기 안에 작은 골짜기들이 여러 개가 있는데, 그 중 가장 큰 골짜기라 하여 재상골이라 한다.

  • ● 제비산 [산] : 심곡과 장동 웃산디 사이에 있는 산이다.

  • ● 제비산성 [성] : 심곡과 장동 웃산디 사이로 제비산에 위치한 산성이다.

  • ● 중봉 [산] : 심곡의 남쪽, 서낭당고개와 개미산 중간에 있는 산인데, 대덕구와 동구의 경계되는 산봉우리이다. 큰 산봉우리와 작은 산봉우리의 중간 산봉우리라서 중봉이라 한다.

  • ● 중의절터 [터] : 배오개고개와 붉은댕이 사이에 있는 절터로 옛날에 절이 있어 중이 살던 터라는 뜻으로 중의절터라 한다.

  • ● 지장터골 [골] : 심곡 동쪽 앞, 서낭당고개에서 북쪽으로 뻗어 내린 골짜기인데, 옛날에 지(池)씨와 장(張)씨가 터를 잡고 살던 곳이라 지장터골이라 하였고, 산세가 높고 가파르며 계곡이 좁고 깊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 ● 짚은골(심골, 심곡) [골] : 심곡마을이 위치한 골짜기로, 산세가 높고 계곡이 좁고 깊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심곡(深谷)은 한자표기이다.

  • ● 피골모랭이 [모롱이] : 배오개 마을 바로 동쪽 앞에 있는 모랭이로, 배오개 마을에서 동구 직동 피골로 가는 곳이라서 피골모랭이라 했다. 모롱이란 산모퉁이 휘어 돌아가는 곳을 말한다. 지금은 대청댐 건설로 수몰되었다.

  • ● 피랑바위(피랑바위, 벼랑바우, 벼랑바위) [바위] : 안산 북동쪽, 안산 너머 동쪽, 함박골 북쪽에 있는 바위로 벼랑에 있는 바위란 뜻이다. 지금은 수몰되었다.

  • ● 함박골 [골] : 안산 동쪽의 골짜기로 재상골 북쪽에 있다.

  • ● 황새봉능선 [산] : 이현동과 동구 직동 사이의 산능성으로 대덕구와 동구의 경계가 되며, 이곳의 묘를 쓴 자리에서 황새형상으로 김이 서리며 날아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 회가마골 [골] : 짚은골에서 장고개로 올라가는 골짜기로, 옛날에 이곳에 회굽는 가마가 있었다 하여 회가마골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