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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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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덕문화원 작성일19-04-25 13:25 조회15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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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호동(渼湖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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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호동의 입지와 자연환경
  • 미호동은 지리적으로 대덕구 북동쪽의 끝부분에 위치하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삼정동, 동쪽은 대청호·충북 청원군 문의면, 서쪽은 금강·청원군 현도면, 북쪽은 대청댐·충북 문의면과 현도면의 경계와 인접해 있는 동(洞)이다. 미호동은 대청댐 건설 이전에는 금강 연안에 비교적 넓은 농경지와 금강 변을 끼고 그 주변에 마을들이 잘 발달되어 있었다. 대덕구 지역 가운데 금강 변에 연해 있던 동(洞)들은 대부분이 대청댐 건설로 수몰되었으나, 당시 미호동은 약 15호 정도와 삼호초등학교 그리고 일부의 전·답이 수몰되었을 뿐,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현재의 미호동 주민들 가운데 삼사십대들은 아직도 어릴적 조그마한 시골학교이었던 삼호초등학교의 추억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삼호초등학교란 교명은 이 학교에 미호·황호·용호동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자녀가 다니기에 삼호초등학교라 하였다. 미호동이라는 동명의 유래는 금강이 미호동의 동쪽에서 북서쪽으로 휘돌아 흘러내리는 모습이 호수 같고, 매우 아름다워 물결무늬 미(渼)자와 호수 호(湖)자로 이름을 지었다고 하며, 혹은 아름다운 호수와 같은 강가의 마을이라서 미호라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대청댐 건설로 호수가 생겨나자, 주민들은 미호라는 지명의 의미가 맞았다고 한다.

미호동의 자연마을로는 벌말·새터말·숫굴·안골·동현 등이 있다. 벌말은 웃뜸, 송뜸, 웃말, 평촌으로도 불리우며, 이곳은 은진송씨의 집성촌이다. 새터말은 양달과 음달의 자연촌락으로 나눠지는데 이 마을은 연안차씨 집성촌이며, 숫굴 마을은 아랫말, 수굴, 수곡이라고도 부르며 숯을 구웠던 곳이라 하여 숫굴이라 한다. 이외에도 내동이라 불리는 안골, 구리고개라 불리며 구리가 난다하여 붙여진 동현이 있다. 동현은 수몰 된 삼호초등학교 부근이다.

미호동의 토지이용 현황은 총 면적이 4,296,348㎡로 이 중에서 전(田)이 468,190㎡로 11%, 답(畓)이 350,595㎡로 8%, 임야가 1,537,471㎡로 36%, 대지가 108,102㎡로 3% 이고, 나머지는 도로, 하천 등으로 되어있다. 현재 미호동의 전체가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있어 주민들의 주거환경이 매우 열악하여, 취락과 주거를 개선하려 해도 불가능하다고 불만스러워 하고있다. 그럼에도 금강 도로변에는 대형의 음식점들이 들어서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개발제한의 조건은 역설적으로 미호동이 옛 마을의 정취와 문화를 잘 간직하게 된 조건이 되기도 하였다.

미호동의 연혁
  • 미호동의 지역은 백제 때는 우술군이었다가, 신라시대에는 비풍군으로 개명하였고, 그 밑에 유성현과 적오현(뒤에 덕진현)을 그 속현으로 두었다. 고려초기에는 비풍군을 회덕현으로 읍호를 바꾸었고, 이후 고려 현종 9년(1018)에는 공주의 속현으로 귀속되었다. 그런데 고려시대 유성현과 덕진현이 공주의 속현이었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현종 9년의 군·현의 개편시에 유성현과 덕진현이 회덕의 속현에서 벗어나 공주의 속현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후 회덕현은 고려 명종 2년(1172)에 처음으로 감무(조선시대의 현감과 같음)를 두게 되어 주현으로 승격하게 되었다.

조선초기 태종 13년(1413)에 전국을 8도제로 개편하면서 행정구역을 서울→도→주·부·군·현→면(방·사)→리(동·촌) 체제로 편성하였다. 이에 따라 회덕은 충청우도 공주목에 속하는 종6품의 현감이 다스리는 회덕현이 되었다. 이와 같이 8도제의 실시와 더불어 소현의 병합이 이루어졌는데 이 때에 유성현이 폐지되면서 그 영역이 회덕현과 진잠현에 속하게 되었다.

정조 13년(1789)의 {호구총수}에 의하면 지금의 미호동이 회덕현 일도면 미호리로 나타나 있음을 볼 때, 조선중기에 이미 미호리라는 행정구역과 지명이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조선후기 고종 32년(1895) 갑오개혁으로 인한 행정구역의 개편으로 태종이래 482년간 실시되었던 8도제가 폐지되고 전국이 23부제를 실시하면서, 종래의 부·목·군·현 등의 지방행정 단위를 모두 폐합하여, 336개 군을 신설하고 이를 23개 부에 속하게 하였다. 이로서 회덕현은 공주부에 속하는 27개 군의 하나인 회덕군으로 개편되었고, 미호동은 회덕군 일도면 미호리가 되었다. 이 당시 회덕의 구역은 기존의 회덕 7개 면(현내면, 동면, 외남면, 내남면, 서면, 근북면, 일도면)에 공주군 5개 면(천내면, 유등면, 탄동면, 구즉면, 산내면)과 청원군 주안면을 편입하여 이전보다 크게 행정구역이 확대되었다.

1914년에는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회덕군과 진잠군이 통합되어 대전군으로 되면서 미호동은 미호리·동현리·삼정하리의 각 일부가 합하여져, 대전군 일도면 미호리로 개편되었다. 1935년 11월 1일에는 대전읍이 부로 승격됨에 따라 대전부와 대덕군이 분리되었는데, 이때 미호동은 대덕군 북면 미호리가 되었다. 그후 1973년 7월 1일 북면이 신탄진읍으로 승격되면서 미호동은 신탄진읍에 속하게 되었고, 1989년 1월 1일 대전직할시의 지역 확대로 대덕군의 폐지와 동시에, 대덕구가 설치되면서 미호동은 신탄진동에 소속된 법정동이 되었다.

미호동의 전통마을과 씨족
  • ○ 벌말 : 벌말은 웃뜸 또는 송씨 들이 많이 살고 있다고 하여 송뜸으로 불리우던 미호동 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새터말의 동쪽, 아래말의 북쪽, 안골에서는 남쪽 벌판에 있으며 현재의 행정구역으로는 미호동 28통이다. 벌말은 아래마을(29통)의 윗쪽에 있어 웃뜸·웃말이라고도 하였고, 평평한 들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평촌(平村)이라고도 하였다. 이 마을은 약 500년 전부터 은진송씨가 거주해오던 마을로 은진송씨 집성촌이다. 옛날에는 은진송씨 30여가구 정도가 집성촌을 이루었으나 지금은 은진송씨가 4가구, 보성오씨가 1가구, 우봉이씨가 4가구 정도 거주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 이주하여온 약간의 타성들이 거주하고 있다.

○ 새터말(신촌 新村) : 아랫말 북서쪽, 벌말과 금강 사이에 위치한 오래된 마을이다. 이 마을을 다시 나누면 북쪽의 양지쪽을 양달, 음지쪽을 음달이라 하였는데, 지금도 이와 같이 부른다. 새터말은 연안차씨의 집성촌이다. 예전에는 연안차씨가 약 20호가 넘었으나 병술년(1946) 홍수로 일부가 떠나고, 그후에는 10호 정도가 집성촌을 이루었다 한다.

○ 숫굴 : 벌말을 웃말이라 하는데 반하여, 숫굴은 벌말의 아래쪽 즉 남서쪽에 위치하여 아래말이라 부른다. 숫굴을 수굴·숫골·수곡이라고도 하는데, 숫골이란 지명은 예전에 이 동네서 숯을 굽고, 기와도 구워서 숫골이라 하였다 하는데, 혹은 물이 많아 농사가 잘 된다고 하여 숫골(水谷)이라 하였다고 한다. 지금도 숫굴 마을 뒷산 아래에서는 기와를 구웠던 흔적으로 기와편이 나온다.

숫굴의 자연촌락으로는 양지쪽에 위치한 양달마을과, 음지쪽에 위치한 음달 마을이 있다. 양달마을에는 12호 정도의 경주이씨들이 집성촌을 이루었고, 음달 마을에도 10호 정도의 경주이씨들이 세거하였다. 따라서 숫굴은 경주이씨들의 집성촌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숫굴 마을의 위쪽을 불당골이라고 불리는데, 옛날 이곳에 불당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불당골에도 5호 정도가 거주하였는데, 경주이씨 2호, 연안이씨 1호, 김씨가 1호, 은진송씨 재실집이 1호가 있었다.

○ 안골 : 벌말의 북쪽, 새터말의 북동쪽에 있는 마을로, 산 안쪽에 있는 마을이라서 안골·내동(內洞)이라 하였다. 현재 전원식당이 있는 곳이 안골이다. 안골에는 각성 6호 정도가 살았는데, 본관을 알 수 없는 이씨 2호, 진주강씨가 1호, 기타 성씨들이 있었다.

○ 동현(銅峴) : 수몰된 삼호초등학교 부근에 있던 마을이다. 동현의 옛 지명은 구루고개 또는 구리고개라 하였는데, 이곳의 산언덕에서 구리가 많이 나서 구리고개·구루고개라 하였다. 그리고 동현이라는 지명은 구리고개의 한자식 지명이다. 또한 마을이 동쪽 언덕 너머 있다고 하여 동현이라 하였다고도 한다. 이 마을에는 곡산연씨 5호, 은진송씨 2호 정도가 거주하였고 본관을 잘 알 수 없는 안씨·김씨 등이 세거하였다. 동현은 대청댐 건설로 인해 수몰되었다.

미호동의 세거성씨
  • ○ 은진송씨(恩津宋氏) : 벌말의 은진송씨는 은진송씨 37개파 가운데 삼가공파의 후손들이다. 삼가공파의 후손 중에 벌말에 입향한 입향조는 송필종·송필수 형제이다. 현재 송필종의 후손들은 동구 이사동에 주로 거주하고 있고, 미호동에는 송필수 후손들만이 거주하고 있다. 현재도 벌말에 입향하였던 송필종·송필수의 후손들은 대종계와 소종계로 나뉘었지만 함께 시제를 올리고 있다. 대동계는 첨사위종중이라 하여 동구 이사동에서 시제를 지내며, 소종계는 송필수의 후손들로 매년 10월 12일에 시제를 지내는데, 제물은 종중의 종답에서 나오는 수익으로 차린다고 한다. 송필수의 묘는 미호동 벌말 뒷산에 있다.

○ 연안차씨(延安車氏) : 새터말은 연안차씨 집성촌이다. 예전에는 약 20호가 넘었으나 1946년(병술) 홍수로 인해 일부가 인근마을 삼정동으로 떠나고 10호가 거주하였다, 현재도 연안차씨들이 6호 정도 거주하고 있다. 새터말에 거주하는 연안차씨는 원래는 연안차씨 문정공파이었으나, 그후 다시 분파하여 현재 새터말에 거주하는 연안차씨를 별도로 지헌공파라 하고 있다. 새터말에 입향한 연안차씨의 입향조는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파보 상으로 보면 연안차씨의 시조는 신라말 고려초의 연안군 차효전이었는데, 그의 후손들로 시조로부터 27세가 지헌공 차제로로 명종 임술(1562년) 2월에 출생하였고 처가 보성오씨였다. 그런데 미호동에 연안차씨를 지헌공파라 하는 것으로 보아 차제로가 입향조라 생각된다. 현재 이곳에 거주하는 후손들도 차제로를 입향조라 하였다. 따라서 연안차씨가 미호에 입향한 시기는 16세기초이고, 입향의 동기는 차제로의 처가 충북 문의 지방의 세거 성씨이었던 보성오씨인 것으로 보아 처향과 관계가 있어 입향하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 경주이씨(慶州李氏) : 회덕의 경주이씨는 시조(始祖) 이알평(표암공)으로부터 17세 이천(국당공파 파조)의 3자 이달충(제정공파 파조)의 후손들이다. 그리고 미호동의 경주이씨들은 제정공파의 후손들로 시조로부터 24세로 조선의 연산군과 명종대에 병절교위를 지냈던 이성호의 후손들이다. 이성호의 후손들이 미호동에 입향한 입향조와 입향 사유, 입향 시기 등은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현재 미호에 거주하는 이상인씨는 입향조가 자신의 17대조이었던 상자 항렬에서부터라고 말하였다).

대체로 현재 미호동의 경주이씨들은 대종계와 소종계로 나뉘어 종중행사를 하고 있다. 대종계에서는 10월 10일에 시제를 지내며, 시제의 재원은 충북 청원군 하석에 있는 전 600평 답이 2,000평의 소출에서 마련하고, 소종계에는 10월 12일과 15일 지내는데 재원은 전·답 약 2,000평을 재원으로 지낸다.

미호동의 옛 지명
  • ● 각히(가키들, 각휘, 각히들, 가키, 각휘들) [들] : 미호동 남쪽, 유호재 서쪽에 위치한 들이다. 서쪽 아래로 각히여울목과 접해 있다. 각히는 성마루(하석)에 권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살았는데, 그 권씨 중에 초시 벼슬을 한 선비의 호가 각회라서 각회였으나, 이것이 각히·가키·각휘 등으로 변했다고 한다. 또한 이곳의 지형이 갈퀴모양이라 하여 갈퀴·갈퀴들이었으나 이것이 변하여 각히·가키·각휘·각뒤가 되었다고도 한다.

  • ● 각히나루터(갈퀴나루터, 가키나루터, 각휘나루터) [나루] : 각히의 서쪽으로 금강이 흐르는데, 각히여울목 안에 있는 나루터이다. 각히와 접해있다고 하여 각히나루터이다. 충북 현도면과 연결된다.

  • ● 각히여울목(가키여울목, 각휘여울목, 각뒤여울목) [내] : 각히나루터를 감싸고 흐르는 여울목이다. 각히와 접해있어 각히여울목이다.

  • ● 강정골(강정굴, 강정들, 광정골, 광정들) [들] : 대머리들의 남쪽과 새터말의 북쪽 사이에 있는 논과 밭으로, 현재 수자원공사의 관련 시설이 있는 곳이다.

  • ● 고염나무골 [골] : 가키의 동쪽, 근장골의 북쪽에 있는 골짜기다. 그 골짜기 안에 유호재가 있고, 막은질고개(백고개)의 남쪽 부분이 이곳을 지난다. 옛날에 고염나무가 많은 골짜기라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 ● 구리고개(동현) [고개] : 지명산 남쪽, 근장골의 동쪽에 있는 고개이다. 북서쪽으로 새터말과 아랫마을로 통하고, 동쪽으로 구리고개 마을과 통하며, 남쪽으로 강촌·이촌과 통하는 세 갈래 길이 있는 고개이다. 옛날에 구리가 많이 나왔다 하여 구리고개이다.

  • ● 구리고개마을(구리고말) [마을] : 구리고개의 동쪽, 오장골의 북쪽에 있으며, 삼호초등학교가 있던 마을이다. 옛날 구리가 많이 나는 산 아래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구리고개·구리고개말이라 하였다. 지금은 대청댐 건설로 인하여 수몰되었다.

  • ● 굴바위(굴바우) [바위] : 미호동 북쪽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안골마을의 동쪽에 있는, 큰봉의 동쪽아래 굴 옆에 있는 바위라서 굴바위라고 하였다. 지금은 대청댐으로 인해 수몰되었다.

  • ● 근장골(근장, 근장이) [골] : 각히의 동쪽, 고염나무골의 남쪽, 삼마골의 동북쪽에 있다. 근장 골짜기에 들이 있어 들의 이름도 된다. 골이 길기 때문에 동쪽의 위쪽을 웃근장, 서쪽 아래 부분을 아래근장이라고 나누어 부른다.

  • ● 네머리끝 [산] : 미호동 가장 북쪽에 있는 상로봉 북동쪽에 있는 산기슭으로 대청댐 동쪽이다.

  • ● 대머리 [들] : 대청댐 남서쪽, 강정굴 북쪽에 있는 들인데, 현재는 대청댐 야적장이 있는 곳이다. 대청댐으로 가는 도로가 서쪽편이다.

  • ● 도토리샴(도토리샘, 옻샘, 옻샴) [샘] : 대청댐 남쪽, 대머리들 북동쪽에 위치하며 샘물이 차기 때문에 옻이 오르면 이 곳에서 씻었다고 하여 '옻샴'이다. 또한 여름에 땀띠가 나면 도토리샴에 가서 씻으면 낫다고 한다. 현재는 대청댐으로 수몰되었다.

  • ● 막은질고개(백고개) [고개] : 새터말과 아랫마을 사이의 도로를 타고, 유호재와 구리고개로 넘어가는 고개다. 일명 백고개라고도 한다.

  • ● 미호도선장 [나루] : 새터말 남쪽, 각히나루터 북쪽에 있는 나루터로, 미호동에서 충북 청원군 현도면 대원으로 건너다니는 금강의 나루터이다. 미호에서 건너다닌다 하여 미호도선장이라 부른다.

  • ● 미호산 [산] : 미호동 가장 북쪽에 있는 산으로 금강이 휘돌아 섬같이 되어, 경치가 매우 아름다워 미호이고 산 이름도 미호산이라 하였다.

  • ● 벌말(평촌, 웃뜸) [마을] : 미호의 북쪽, 새터말 동쪽, 아랫말 북동쪽, 안골의 남쪽 들판에 있다. 아랫마을 위쪽에 있어 웃뜸, 평평한 들이라서 평촌이라고도 하였다.

  • ● 붓당골(불당골) [골] : 아래마을의 음달 동쪽과 작은봉의 서쪽 아래 사이에 있는 골짜기로, 소정이골과 접해 있다. 옛날 이 골짜기에 불당이 있었다고 하여 붓당골·불당골이라 부른다.

  • ● 비암수 여울목(산디여울목) : 미호동 가장 북쪽에 있던 여울목으로 현재의 대청댐의 자리이다. 이 곳은 물이 급하게 흘러 떨어진다고 하여, 즉 바위를 날아 떨어지는 물이 있는 여울목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미호에서 볼 때 산 뒤에 있어서 산디 여울목이라고도 한다. 현재는 대청댐 건설로 인해 수몰되었다. 또 이 여울목은 도깨비가 돌의 음양을 맞추어 막아놔서, 아무리 홍수가 나도 파손되는 일이 없다는 말이 전한다. 그런데 그 자리가 지금 대청댐이 위치한 곳이라 하니 신비한 일이다.

  • ● 백뱀이골 [골] : 숫골의 남쪽, 근장골의 서남쪽에 위치한 골짜기로 논에 백뱀이가 있어서 백뱀이골이라 하였다.

  • ● 산디(산뒤) [들] : 큰봉과 상로봉(향로봉)까지의 뒤쪽에 있던 들로, 미호 마을 쪽에서 보면 산의 뒤쪽에 있다고 하여 산디라고 하였다. 현재는 수몰되었다.

  • ● 산디나루터(산뒤나루터) [나루] : 비암수 여울목(산디여울목)의 안에 있다. 이 여울목은 미호에서 충북 청원군 문의면 광원리와 연결되었다. 현재는 수몰되었다.

  • ● 삼마골 [골] : 카키, 근장골, 백뱀이골 가운데에 있다.

  • ● 상로봉(향로봉) [산] : 미호의 가장 북쪽에 있는 봉우리로, 미호산·향로봉이라고도 한다.

  • ● 새말림 [산] : 안골마을 동쪽에 있는 산이다. 유래는 알 수 없다.

  • ● 새터말(신촌) [마을] : 벌말 서쪽과 금강 사이에 새로 생긴 마을이다.

  • ● 소굴구멍(소골구멍) [골] : 안골과 새말림 사이에 있는 골짜기이다.

  • ● 소징이(소정이, 소청이) [들] : 작은봉 서남쪽 아래, 음달 남동쪽에 있는 들이다. 일설에 이곳에 소씨들이 살았다하여 소징이라 하였다고 한다.

  • ● 숫골(수굴, 숫굴) [마을] : 벌말 남서쪽에 있다. 아랫마을 내에 양달마을 숫골이라 한다. 이곳은 물이 많아 농사가 잘 된다고 하여 숫골(水谷)이라 하였다.

  • ● 선할아버지골(서내미골) [골] : 숫골에서 남쪽에 있다. 골짜기의 지형이 책상에서 공부하는 형상으로, 풍수 상 인물이 배출될 지형이라 선할아버지골이라 하였다.

  • ● 아랫마을 [마을] : 벌말 남남서쪽, 새터말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이 마을을 다시 나누면 북쪽의 양지쪽을 양달, 음지쪽을 음달이라 한다.

  • ● 안골(내동) [마을] : 벌말의 북쪽에 위치한 마을로, 산 안쪽에 있는 마을이라서 안골이라 하였다. 내동은 뒤에 뜻을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 ● 안산 [산] : 안골 앞에 있는 산이라 하여 안산이라 하였다.

  • ● 안터 [터] : 아랫말 남쪽에 위치한 곳으로 옛날에 안씨가 살던 터이다.

  • ● 옻샴거리(옻샘거리) [거리] : 대청댐 남쪽과 대머리들 북쪽에 있는 거리로, 옻샘으로 드나드는 거리라는 뜻이다.

  • ● 작은봉 [산] : 큰봉 남서쪽, 벌말 동쪽에 있는 작은 산봉우리이다. 큰 봉에 비해 봉우리가 낮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 ● 지명산 [산] : 미호동과 황호동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구리고개 동북쪽에 있으며 산 아래에 지명마을이 있어서 지명산이라 하였다.

  • ● 큰봉 [산] : 벌말(평촌)의 동쪽 위에 있는 산봉우리이다. 산봉우리가 크다고 하여 큰봉이라 부른다.

  • ● 퍽수 [내] : 현재 대청댐 자리이다. 대청댐 건설 이전에 바위가 많고 물이 급하게 퍽퍽 쏟아져 흘렀다고 하여 그 소리를 따서 퍽수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