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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탄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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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덕문화원 작성일20-08-31 14:54 조회22회 댓글0건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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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탄진 입지와 자연환경

 

위치 : 대덕구의 북단에 위치해 있는 행정동으로서 신탄진동은 동북쪽에 대청호를 경계로 청원군 문의면(文義面)과 접해있고, 서쪽에 덕암동과 남쪽에 회덕동이 접해 있다.

 

 

특이사항

행정동으로서의 신탄진동은 갈전동(葛田洞), 미호동(渼湖洞), 부수동(芙水洞), 삼정동(三政洞), 용호동(龍湖洞), 이현동(梨峴洞), 황호동(黃湖洞) 등의 법정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연혁

백제 때는 우술군(雨述郡) 신라 때는 비풍군(比豊郡), 고려 때는 회덕현, 현종 이후에는 공주부(公州府)에 소속되었다. 그러다가 조선 말기 고종 32(1895)에는 회덕군 일도면(一道面)의 일부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갈전상리(葛田上里), 갈전하리(葛田下里), 부수리, 직동(稷洞)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대전군 북면(北面 )에 편입되었다.

1935111일 대전읍이 대전부로 승격함에 따라 대덕군의 일부로 되었다.

197371일 신탄진이 읍으로 승격하였고, 198911일 대전시가 대전직할시로 승격함에 따라 대전직할시에 편입되어 대덕구 행정동인 신탄진동이 되었다.

 

신탄진동의 유래 및 지명

 

○ 강비랭이(강벼랑이) [들] : 용정초등학교와 금강 사이에 있는 들을 말한다. 금강변의 들에 벼랑이 있어 이를 강벼랑이 또는 강비랭이라고 부른다.

○ 달송(達松) [마을] : 남한제지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옛날에 이 마을 주변에 울창한 소나무가 많아 이를 달송이라 불렀고, 현재는 택지개발로 인해 소나무는 없고 주택만 들어서 있다. 현재는 남한제지가 없어졌고, 그 자리에는 아파트를 짓고 있다.

○ 뗏주막거리 [마을] : 남한제지 동쪽에 있던 마을로, 옛날에 이곳에 떼로 만든 주막이 있었기에 뗏주막거리 또는 뗏집막거리라고 부른다. 그 당시에 이곳에 동래정씨 1호. 한양조씨 2호 등 모두 3가구가 거주하였으나, 그 후 도시개발로 타지에 이주하였다. 

○ 용정나루터(용정이 나루터, 용정진) [나루] : 용정초등학교에서 동쪽, 용정이 마을의 금강 변에 있다 하여 용정나루터, 용정이 나루터라고 부른다. 또한 조선시대 사화(선비들이 화를 당하는 사건)가 일어날 때마다 포리들이 갓 쓴 사람만 검문하고 붙잡아 갔다는 나루터로 ‘초립동이 나루터’ 라고도 한다. 이 나루는 용정이 마을에서 충북 현도면 논산리로 연결된다.

○ 용정샴(용정샘, 용샘, 용정龍井) [샘] : 옛날 용정이 마을 내에 있는 큰 우물에서 용이 알을 낳았다고 하며, 또한 용이 승천했다고 하여 이를 용정, 용샘이라고 부른다. 당시에는 이 샘의 물이 좋아서 동네 사람들이 이용했다고 한다. 현재는 없어졌다.

○ 용정이(용정, 용정리) : 안골에서 동쪽에 있다. 신흥사 절에서 북서쪽 아래에 있는 마을로, 옛날에 이 마을에 큰 우물이 있었는데 그 우물 속에 용이 알을 낳았다 하여 용샘, 용정이라 부르다가 지금은 용정이, 용정리라고 부른다. 일설에 용이 구름을 타고 승천하였다고 하여 마을의 이름을 용정리라 한다. 용정리에는 대략 20여호 정도가 거주하였다. 그중 청원군 현도면 노산리에 세거하였던 진주유씨들이 입향하여 6 ~7가구가 세거하며 집성촌을 이루었었는데, 진주유씨들의 입향시기는 대체로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쯤이라고 한다. 그 외 기타 여러 성씨들이 세거하였다. 지금의 신탄진동 1통 지역이다.

○ 안골(내동) : 용정초등학교와 남한제지 사이로, 용정이마을 안쪽에 마을이 있다 해서 안골 또는 내동이라고 부르며, 또 이 마을이 노변에서 안쪽으로 깊이 들어가 있어서, 안골이라고 부른다. 안골은 경주이씨 국당공파 후손들의 집성촌이었으나 경주이씨가 언제부터 안골에 세거하게 되었는지는 정확하게는 알 수 없다. 다만 현재 안골에 거주하는 이종도씨의 11대조의 묘가 삼정에 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이때부터가 아닌가 한다. 도시개발 이전까지는 경주이씨 20호 정도가 거주하였고 한양조씨가 몇 가구 거주하였는데, 한양조씨가 안골에 입향하게 된 것은 70∼80년 전에 경주이씨를 처를 둔 사람이 처향을 따라 이주한 것이다. 현재의 라이프아파트, 대우아파트, 한신아파트 및 단독주택지 등이 들어서 있는 곳이 옛날의 안골이다.

○잔골(자운골, 자운) [마을] : 현재의 동서 간 문화의 거리에서 남쪽이 된다. 인조 때 학자 복천(復泉) 강학년이 이곳에서 태어날 때, 붉은 구름이 집을 감쌌다고 하여 이 마을을 자운, 자운골이라 부르는데, 강학년의 호가 복천과 자운(紫雲)이다. 또한 마을이 낮고 작은 골짜기에 있어, 작은골이었는데 이것이 자운골(紫雲谷), 잔골로 변했다고도 한다. 진주강씨들 6~7호가 살았다.

○ 역앞말(역앞마을, 역전부락) [마을] : 신탄진역에서 맞은편, 도로 건너에 위치한 마을로 신탄진역 옆에 마을이 있다 해서 역앞말 또는 역전부락이라고 부른다. 이 지역은 경부선이 부설되고 신탄진역이 설치되기 전에는 마을이 없었다. 그 후 경부선 개통과 신탄진역이 만들어지면서 인접마을 사람들과 충북 현도면 지역의 사람들이 이주하여 옴으로써 상업을 생업으로 하는 마을이 형성되었다. 따라서 역 앞 말에서는 특별히 세거한 성씨는 존재하지 않았다.

○ 한산사(寒山寺) [사찰] : 한절구지 뒤에 있는 절을 한산사라 하였는데, 해방 후 옛 절터에 다시 건립하였다.

○ 한절구지(덕운) : 한절구지는 대한이연 공장 남쪽에 있다. 옛날에 이곳에 큰절이 있었다 해서 한절구지라고 부른다. 또한 이 마을의 형태가 곶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한절곶, 한절구지라고 부르게 되었다. 또 마을에 찬물이 아는 샘과 절이 있다하여 한사동이라고도 불렀다 한다. 한절구지에는 총 3~4호 정도가 있었는데, 주로 진주강씨들이 살았다. 이곳에는 진주강씨 재실이 있다.

○ 남경 : 원래의 잔골의 나지막한 산이었던 곳이 있다. 1960년도 남경석이라는 사람이 집을 짓고, 남경마을이라고 하였다. 신탄진연초제창이 들어서면서 신탄진연초제조창 직원들의 사택이 대규모로 건설되면서 생겨난 마을이다. 그래서 집의 규모도 대지 25~27평에 건평 9평으로 좁게 지어졌다.

○ 홍고개골 [골] : 홍고개와 안골들 사이에 있는 골짜기라서 이를 홍고개골이라고 부른다.

○ 홍고개 (고개) : 신탄진고등학교에서 보훈병원 동쪽에 있는 고개이다.

○ 망덕봉(望德峯) [산] : 신탄진고등학교 남쪽의 정수장 위치에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