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족산성 내부의 평탄면 곳곳에는 대략 10여 개소 이상의 건물지가 존재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조사지역은 북벽(北壁) 부근의 약1,200평에 달하는 고지대인데 이곳은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 고려시대에 이르기까지의 여러 건물지가 존재하였음이 밝혀졌다. 현재 가장 잘 남아 있는 건물지는 고려시대에 축조된 제1건물지와 제2건물지이다. 고려시대 건물지에 선행하는 삼국시대 후기∼통일신라시대의 건물지도 부분적으로 확인되나 유존상태가 양호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세한 조사를 위해서는 고려시대 건물지를 제거하여야 하기 때문에 금번 조사대상에서는 제외하였다.
(1) 제1 건물지 고려시대 건물지는 표토를 제거하자 마자 흑색부식토 면에서 바로 노출되었다. 이 건물지는 담장과 건물기단을 비롯하여 문지와 계단, 부석(敷石)을 깐 보도(步道) 등의 시설이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잘 남아 있었다. 초축 후에 기단 네 면을 모두 확장·개축한 최후의 건물 규모는 15.8×6.8m의 크기에 정면 2∼3칸, 측면 1칸의 구조를 하고 있다. 내부에서는 12∼13세기로 볼 수 있는 청자편, 토기편들과 함께 다수의 명문와(銘文瓦)도 출토되었다. (2) 제2 건물지 제1건물지의 서편에 나란하게 연접하게 축조된 것으로 단벽이 되는 북쪽 기단이 제1 건물지 북쪽 기단보다 남쪽으로 약 2m 가량 들였으나 제1 건물지와 "「 "자 형을 이루도록 배치되어 있다. 제2 건물지 역시 여러 차례 개축되었는데, 최후의 건물지는 제1건물지의 최후 건물지 보다 축조가 늦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러나 출토 유물 상으로 보면 절대 시간차는 크지 않아 제1건물지와 시종 공존한 것으로 보아도 좋다. 건물의 자세한 구조는 중복이 심하여 파악이 어려우나 최종 건물을 기준으로 하면 기단 규모 14×7.1m에 정면 5칸, 측면 1칸 가량 되며, 북쪽 부분에는 온돌 구조가 정연하게 남아 있다. 최후 건물 축조 시기는 제1건물지와 비슷한 12∼13세기로 판단된다.
(3) 성벽(북벽)내부 퇴적토 트렌치 조사 제1·2 건물지와 함께 제1건물지에서 동쪽으로 20m 떨어진 지점의 건물지는 적심(積心)만 일부 확인되었기 때문에 건물의 상세한 구조를 밝히기는 어렵다. 한편 이 부분에서 북쪽 성벽과 직교하는 폭 2.5m, 길이 5m의 트렌치 조사를 실시하여 성벽축조 시점 및 양상을 파악하고자 하였으며 조사결과 성벽 축조는 협축(夾築)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생토면 바로 위에서 1.5m 가량 할석을 이용하여 석축을 형성한 후 7∼8 차례의 내부 다짐을 하였으며 그 위에 정연하게 성벽을 쌓아 올리는 방법으로 축조하였다. 다짐토 상면에는 목탄면이 형성되어 있었으며 바로 위층의 황갈색 사질 점토층에서 완형토기 1점이 출토되었다. (4) 출토유물 1) 토기 및 자기류 계족산성 내 건물지에서 출토된 토기들은 주로 고려시대의 완, 동이, 병 등이 있으며, 자기류는 순청자 및 상감청자들로서 완이나 잔, 병 등이 주요 기종을 이루고 있다. 완이나 잔탁의 경우 고급기종도 일부 출토되었으며 청자편 중에는 "량온납(良 納)"이란 명문이 새겨진 것도 1점 출토되었다. 성벽내부 퇴적토 트렌치의 다짐토 상면에는 적갈색연질의 완( )이 1점 출토되었다. 한편 여러 곳의 고려시대 건물지 아래 내부 퇴적토에서 6세기 중, 후반∼8세기로 편년되는 삼각집선문(三角集線文), 점열문(點列文) 및 인화문(印花文) 등이 시문 된 뚜껑 편을 비롯하여 단각고배(短脚高杯)나 부가구연장경호(附加口緣長頸壺),완( ) 등 신라시대 유물이 출토되었다. 2) 기와류 출토된 기와는 주로 선조문(線條文), 격자문(格子文), 어골문(魚骨文) 계통으로 구분될 수 있는데 어골문 기와에서는 많은 양의 명문 와가 출토되었다. 층위 및 시기에 따라 대략 3단계로 분류 될 수 있다.
◎ 1단계 고려시대 건물지 축조면 아래에서 출토된 것들로는 선조문이 주종을 이루고 명문이 있는 기와는 확인되지 않았다. 1단계 기와는 저수지에서 출토된 단각고배 등과 공반되고 있어 6세기 중엽 이후의 삼국시대 말∼통일신라시대로 편년이 가능하다. ◎ 2단계 1단계 기와와 마찬가지로 고려시대 건물지 아래의 황갈색 사질점토층에서 출토된 것들로 전형적인 어골문과는 달리 집사선문을 서로 엇물리게 시문한 것과 격자 간격이 3∼5㎝ 넓은 사격자문에 종 방향의 직선이 결합된 기와들이 대부분이다. 이들 가운데 전자에 해당하는 기와는 거의 대부분 "우술(雨述)"이 찍혀 있는 명문와이다. 2단계 기와는 다음 3단계에 해당하는 고려시대 기와들이 거의 대부분 환원소성으로 두께가 두꺼운 편인데 반해서, 산화소성품이 절반정도를 차지하고 있으며 와벽이 상대적으로 얇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것은 후술할 2차 저수지에서도 출토되었다. ◎ 3단계 전형적인 어골문 기와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형태상의 특징 및 공반된 청자 등을 통해 11∼13세기로 편년 되는 것들이다. 제1·2 건물지를 비롯하여 건물지 여러 곳에서 출토되는데 "우술(雨述)", "우술천국(雨述天國)", "진양도인육회(棟梁道人六 )" 등의 명문 와가 포함되어 있다. 3) 기 타 이밖에도 철제 말을 비롯하여 철제 솥, 쇠스랑, 따비, 못 등의 철제품과 동경 등이 출토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