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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래동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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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덕문화원 작성일19-04-25 14:39 조회14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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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on_arrow.gif비래동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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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인돌 유적
 

고인돌 유적이 위치한 곳은 비래동 419, 429번지 일대와 산12-6번지 일대의 해발 128m 야산 정상부이다. 이곳은 비래동 비래골 남쪽 산등성과 이어지는 것으로 경부고속도로를 사이에 두고 동서로 길게 뻗어 있으며 고인돌이 위치한 산 정상부는 비교적 평탄한 면을 이루고 있다.
비래동 비래골 마을회관 앞 419, 420번지 일대의 계단식 논에는 고인돌 2기가 노출되어 있었으며 이곳에서 북쪽으로 100m정도 떨어진 곳에 1기의 고인돌 상석이 노출되어 있었으나 조사결과 이 1기는 유구가 아닌 것으로 확인되었다.
또한 경부고속도로를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 위치한 구릉 정상부에서는 1기의 고인돌이 확인·조사되었다. 따라서 금번 비래동 고인돌 유적 발굴 조사에서는 모두 3기의 유구를 발굴·조사하였다. 그러나 지표 조사 결과 이 비래골 마을 393번지와 13번지 집 마당에서 성혈의 흔적이 있는 고인돌 상석 2기가 더 발견되어 이 일대는 모두 5기의 고인돌이 군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 1호 고인돌

1) 조사 전 상태
1호 고인돌은 상석의 반이 마치 입석처럼 세워져 있는 상태로 노출되어 있었다. 이는 1963년 새마을 운동 당시 동네 주민들이 4H운동의 일환으로서 논가에 위치한 고인돌의 상석을 쪼개어 세운 후 그 표면에 새마을 상징마크를 그려 넣었다고 한다. 조사 전의 고인돌의 주변에는 많은 돌무더기들이 쌓여 있었는데 이곳은 돌이 많은 지형으로 농민들이 논이나 밭을 갈다가 나온 잡석들을 이곳에 던져 놓았고, 이 돌들을 걷어 내는 과정에서 비닐, 사기그릇 편 등 많은 폐기물들이 섞여 나왔다.

2) 고인돌의 규모 및 구조
산기슭의 능선부에 780×440㎝ 정도의 범위에 걸쳐 잡석 및 황갈색 점토를 약 0.5∼1m 가량 높이로 성토한 다음 매장 주체부인 석곽을 축조하였다. 석곽의 바닥에는 10∼20㎝ 크기의 얇은 판석을 깔아 놓았으며, 장축 방향이 동서로 되어있는 이 석곽의 크기는 230×140㎝ 가량 되는데 양쪽 끝은 후대의 교란으로 결실되었다. 상석의 크기는 180×250×50㎝ 가량이며 24개의 성혈이 확인되었다.

 

3) 출토유물04-1.jpg
1호 고인돌 조사결과 출토유물로는 비파형 동검 1점, 삼각만 입석촉 3점, 홍도 1점 등이 출토되었다. 비파형 동검은 등대에 돌기가 사라진 중기형이나, 사용 중 마연 가공으로 인해 봉부(鋒部)의 길이가 짧아졌다. 슴베 부분에는 한반도 남부지방에서 출토되는 비파형 동검의 특징인 홈이 있다.



 

 

 

 

(2) 2호 고인돌
2호 고인돌은 1호 고인돌에서 동쪽으로 약 5m 정도 떨어져 있으며 상석의 규모는 약 290×260×45㎝ 가량인데 불규칙적인 성혈 16개가 나타나 있다. 큰 것은 지04-2.jpg04-3.jpg름 10㎝정도              의 것이 있는 반면에 작은 것은 2㎝정도이다. 1호 고인돌에 비하여 교란이 심한 편으로 매장 주체부의 거의 바닥면에서 백자편 등이 출토되었다. 묘곽으로 생각되는 석곽이 동서방향으로 1단 정도 남아있는 상태이다. 규모는 약 220×120㎝ 정도로 추정되며 1호와 마찬가지로 묘역을 황갈색 점토로 묘역의 범위를 만들었는데 그 규모는 대략 600×440㎝의 원형이며 출토 유물로는 홍도파편 3점뿐이다. 



(3) 3호 고인돌

1) 조사 전 상태
고인돌 1·2호와는 경부고속도로를 사이에 두고 서쪽으로 약 300m 가량 떨어진 구
릉의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는 3호 고인돌은 도굴의 피해를 입어 상석이 매장 주체부로 부터 얼마간 이동되어 있었으며 석곽의 구조도 교란된 상태였다.

2) 규모 및 구조
1·2호 와는 달리 구 지표를 파낸 뒤 할석으로 석곽을 축조하였는데 매장 주체부의 크기는 180×40㎝되며 바닥에는 얇은 판석을 깔았다.

3) 출토유물
3호 고인돌은 도굴로 인해 대부분의 유물은 이미 없어지고 무문토기편 및 관옥 1점만이 수습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