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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동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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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덕문화원 작성일19-04-25 14:47 조회6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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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on_arrow.gif법동 유적

title_07.jpg 

1. 1차 발굴유적
 

법동 건물지 유적이 있는 곳은 현재 법동 한마음아파트와 북쪽의 경부고속도로 사이의 완만한 구릉지 경사면으로 당시 이 일대는 밭으로 경작되고 있었으며 경작지의 한가운데에 계족산으로 이어지는 폭 3m의 소로가 나 있었다. 지표 조사 당시 넓은 범위에 걸쳐 유물이 산포되어 있음을 확인하였으나 택지개발지구로 인해 일부지역이 제외되어 발굴조사는 유적의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택지개발지구 범위선과 한마음아파트 사이의 경작지에 한정되어 실시되었는데, 그 결과 건물지 2기와 포석유구, 담장유구 3개소 등의 시설이 노출되었으며 상당량의 와편과 자기편, 토기편, 철기류 등이 수습되었다. 그러나 이들 유구는 유적의 한가운데를 지나는 소로와 택지개발지구 범위 선에 걸려 일부분만 조사되었다.

(1) 건물지 상황 

1) 1호 건물지
고려시대의 장방형 석축기단 건물지로 규모는 기단부의 동-서 장축이 약 13.7m, 남북 단축이 6.5m이다. 건물의 기단은 자연 경사면을 그대로 이용해 지름 30∼60㎝ 크기의 할석을 막들 쌓기 수법으로 2∼3단 정연하게 쌓았고, 경사 아래쪽인 기단 서단부 내부는 일부 잡석 다짐을 한 후 회갈색 사질의 기단토를 채웠다. 기단의 북변 대부분이 택지개발지구 범위선 위로 뻗어 있어 윤곽을 드러내지 못했으며, 동단부는 밭 경작시 이미 유실된 것으로 추정되었으나 기단 내부토와 와편이 퇴적된 부식토층 사이의 경계가 뚜렷해 동쪽한계를 추정할 수 있었다.
건물의 상부도 표토층이 얕아 대부분 교란되어 있었고 초석이 거의 뽑혀 나가 건물의 규모와 형태를 추정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건물의 외부에는 다량의 소토와 목탄이 뒤섞인 짙은 흑갈색 부식토 층이 넓게 덮여 있었으며 특히 기단 북변 바깥쪽에는 건물의 지붕에서 그대로 떨어져 내린 것으로 보이는 와적층이 노출되어 이 건물이 화재로 인해 폐기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유물은 대부분 기단 바깥쪽에서 출토되었으며 암수기와편, 청자편, 토기편, 철기편 등이 출토되었다. 기와는 막새기와는 없고 거의 대부분이 평기와이다. 기와의 내면에 평직의 포목문이 남아있고, 외면에 굵은 사격자문, 굵은 선조문, 가는 어골문, 복합문 등이 시문되었다. 이외 특수 기와로 기단 남서 모서리에서 귀면와편이 노출되었다.
청자는 상감청자와 민무늬 청자로 나누어지며 민무늬 청자에는 국화문, 구름문 등을 음각, 반양각, 압출 양각기법으로 시문하였다.
이외에 항아리 병 등의 회청색 경질 토기류와 토제 방추차, 어망추, 와정(瓦釘), 괭이, 도끼 등의 철제 농기구류, 청동제 숫가락편, 뼛조각 등이 출토되었다. 특히 기단 북서 모서리 부근에서 "개원통보"로 추정되는 동전이 출토되었다.

2) 2호 건물지
1호 건물지의 북변 기단을 서쪽으로 연장하여 "ㄱ"자 모양의 석연이 노출되었다. 2호 건물지의 석렬 하부에는 1호 건물지가 폐기되면서 덮인 소토층이 깔려 있어 1호 건물지 폐기 후 축조된 것임을 알 수 있었으나 2호 건물지 내부도 이미 극심하게 파괴되어 규모를 파악할 수 없었다. 잔존 규모는 북벽이 2.25m, 서벽이 2.1m가 남아있다. 출토유물은 와편이 대부분이나 모두 1호 건물지의 것으로 판단되며 석축의 상부에서 분청사기 편과 백자편이 소량 수습되었다.

(2) 포석유구
시굴 조사시 노출된 담장유구 안쪽의 퇴적토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노출된 유구로 지름 30∼40㎝ 정도의 할석을 이용해 정연하게 바닥에 깔았다. 면석의 상부에는 다량의 소토덩이와 목탄 등이 뒤섞여 노출되었으며 운학문이 시문된 상감청자편과 청자도판편, 토기편, 와편 등이 출토되었다.

(3) 담장유구

1) 1호 담장유구
포석유구의 상면에 축조된 후대의 유구로 50∼80㎝ 크기의 큰 장방형 할석을 1.5m 폭으로 정연하게 2줄로 쌓은 후 내부를 흙으로 메웠다.
담장 바깥쪽은 얕은 배수로를 팠다. 현재 "ㄱ"자 모양의 동남쪽 모서리만 노출된 상태로 담장 석렬이 계속 북쪽으로 이어져 있으며 남벽도 서쪽의 도로 아래로 이어지는 것으로 추정된다.

2) 2호 담장유구06-2.jpg
유적의 남쪽에 동서로 길게 축조되어 있으며 서남부 모서리가 현 도로와 근접해서 북쪽으로 꺾여 올라간다. 현재 남벽과 서벽의 일부가 남아 있으나 원래의 규모는 상당히 켰던 것으로 추정되며 1호 담장유구의 상부에 중복되어 일부 드러난 석렬이 2호 담장유구와 연결될 가능성도 있어 규모가 더 확대될 가능성이 많다. 담장은 1호 담장유구와 마찬가지로 내·외 2줄의 석렬을 쌓고 내부를 흙으로 메웠으며 한번 무너진 후 보수하여 다시 쌓은 흔적이 있다. 담장의 안쪽은 거의 평지에 가까우나 바깥쪽은 경사져 흘러내리며 자연 경사를 이용해 의도적으로 외벽을 내벽보다 낮은 곳에 축조하였다. 잔존 규모는 남벽이 2.6m, 서벽이 3m 정도 남아 있다. 약 지름 40㎝내외의 자연 할석을 이용해 막돌 쌓기 수법으로 축조하였으며 할석 사이에 작은 돌조각을 끼워 정성들여 축조하였다. 수준이 낮은 서남부 모서리는 석축의 높이가 150㎝ 정도 남아 있는데 지름 80∼100㎝ 크기의 대형 할석으로 견고하게 쌓았다.

3) 3호 담장유구
유적의 중심부를 지나는 도로 서편에 유적의 범위를 확인키 위해 확장 트렌치 를 설치하였으며 이 부분에서 근대에 축조된 것으로 보이는 석렬이 12m 정도 길게 노출되었다. 이 석렬은 지름 20∼30㎝ 크기의 작은 할석을 "S"자 모양으로 쌓았으며 근대 민가의 담장으로 추정되었다.

(4) 기 타
담장유구의 남쪽으로 약 6m 떨어진 지점에 지름 110㎝ 정도의 상당히 큰 할석 2개가 노출되어 있다. 할석 사이의 간격은 4.45m이고 할석의 하부에 작은 막돌이 깔려 있어 대형 초석으로 보이나 유구의 형태 및 용도는 전체 조사가 진행되지 않아 아직 알 수 없었다.

 

 

2. 2차 발굴유적
 

(1) 건물지(建物止) 상황

1) 1호 건물지
고려시대의 장방형 석축기단 건물지로 북벽과 동벽 기단은 이미 유실되었다. 잔존규모는 기단부의 동-서 장축이 9.2m, 남-북 단축이 6.5m이며 기단 상면이 후대 중복 및 경작 등에 의해 극심히 파괴되어 초석과 적심석의 형태는 찾을 수 없었다. 건물의 기단은 자연 경사면으로 그대로 이용해 지름 30∼60㎝ 크기의 할석을 막돌쌓기 수법으로 2∼3단 정연하게 쌓았고 경사 아래쪽인 기단 서단부 내부는 일부 잡석 다짐을 한 후 회갈색 사질의 기단토를 채웠다. 기단 북벽은 2호 건물지의 남변석렬이 축조되면서 파괴되었고 주변의 2호, 7호 건물지 보다 전체적인 수준이 낮아 1호 건물지가 이 일대 건물지 중 가장 초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유물은 대부분 기단 바깥쪽에서 출토되었으며 소문, 음각, 양각, 상감 등 다양한 기법의 청자편과 토기편, 철기편 등이 수습되었다. 기와는 평기와류가 대부분이며 외면에 굵은 사격자문, 선조문, 어골문, 복합문 등이 시문되었다.

2) 2호 건물지06-3.jpg
유적의 중앙부에 비교적 넓게 자리잡고 있으며 건물지의 전체적인 평면형태로 보아 'ㅁ'자형 건물지로 추정된다.
건물지 중앙에는 장방형의 석축기단이 서로 내면을 바라보며 길게 이어져 건물 내부 공간을 형성하고 있으며, 건물의 바깥기단은 건물 서편에 내부 기단 석렬과 평행하게 일렬로 길게 이어져 있다. 내부 기단석렬은 다시 서변이 안쪽으로 좁혀져 있으며 서변 기단의 남쪽 끝과 남변기단과의 사이 간격이 2.54m로 떨어져 있어 이 부분에 건물 내부로 통하는 출입시설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내부 기단석렬의 잔존규모는 북변 9.0m, 동변 13.1m, 남변 10.3m이며 안쪽으로 좁혀 축조된 서변기단은 5.22m가 남아 있으나 2호 건물지가 폐기된 후 건물의 중심부에 5호 건물지가 축조되면서 상당부분 파괴되었다. 이 서변 기단은 4호 건물지 동편기단을 파괴하고 축조되어 있어 4호→3호→5호 건물지 순으로 축조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내부 기단석렬과 외부 기단석렬 사이공간은 폭이 대략 5.6m 정도로 이 부분에 실제 건물이 세워져 있었을 것이나 후대 유구가 중복되고 발 경작 등에 의한 파괴가 극심해 초석이나 적심석렬은 찾을 수 없었다. 출토유물은 대부분이 청자편이며 선조문, 복합문 등이 시문된 기와편이 상당량 출토되었다.

3) 3호 건물지
유적의 북동부에 위치하며 여타의 건물지들과 중복없이 비교적 잔존상태가 양호한 편이며 건물의 잔존형태는 방형에 가까우나 동변 석축 기단이 없이 대지가 'T'자로 삭토되어 있어 전체 형태는 'T'자형 건물지로 추정된다.
건물의 상면에 초석과 적심석이 일부 남아 있으며 도리칸 2칸, 보칸 3칸이 확인되었고 보칸은 중앙 칸이 넓고 좌·우 협칸이 좁은 모양이다. 도리칸의 간격은 3.24m이고 보칸은 중앙칸이 3.24m, 좌·우 협칸이 1.7m이다.
기단은 북변이 9.06m, 서변이 8.24m, 남변이 7.48m이며 기단석렬이 축조될 부분만 삭토하여 1단 기단석을 일렬로 쌓고 2단 석렬 이상은 약간 들여쌓았다.
건물의 상면에는 다시 동-서로 긴 석렬이 북변 기단석렬과 평행하게 이어져 있으며 이 두 석렬 사이에 소토층이 와편과 뒤섞여 노출되어 건물이 후대에 좁혀 개축된 것으로 추정된다.
유물은 청자편이 대부분이나 상감기법 등은 보이지 않았다. 기단석렬 바깥쪽에서 선조문, 어골문, 복합문 등이 시문된 기와편이 상당량 출토되었다.

4) 4호 건물지
2호 건물지 내부 서변기단 석렬이 축조되면서 파괴된 건물지로 'ㄱ'자형의 북동부 모서리만 남아 있다. 약 20㎝ 전후의 자연할석을 안쪽이 마주 보이게 쌓았으며 이는 2호 건물지 내부 기단석렬의 축조 방식과 유사하였다. 그러나 유구의 대부분이 유실되어 전체 형태는 알 수 없으며 잔존규모는 북변이 4.3m, 동변이 1.0m 남아 있다.

5) 5호 건물지
2호 건물지 내부 기단석렬을 부분적으로 이용해 축조하였고 정면 도리칸 3칸에 보칸 1칸의 규모다. 도리칸의 간격은 2.28m이고 보칸은 1.96m이며 직경 90㎝ 정도의 적심석군만 남아 있다. 건물의 기단은 의도적으로 쌓은 흔적은 없으며 남변과 서변 기단만 부분적으로 막돌을 한단 쌓아 경계를 지었다.
건물의 동변에는 'ㄱ'자형의 암거시설이 돌려져 있으며 2호 건물지 내부 동쪽 기단석렬을 이용해 축조되었다. 규모는 폭 0.28m, 길이 3.54m, 높이 0.24m이고 편편한 자연할석을 바닥에 깔았다. 출토유물은 청자편, 토기편, 기와편 등이 주로 출토되었으나 유구 주변의 교란이 심해 5호 건물지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유물을 따로 구분하긴 어려웠다.

6) 6호 건물지
6호 건물지는 7호 건물지의 북쪽에 위치하며 7호 건물지의 동변 기단석렬 위에 축조되었고 동편에 위치한 2호 건물지 보다는 먼저 축조된 것으로 확인된다. 건물의 잔존형태는 남변과 동변 기단석렬 일부만 남아 있어 전체적인 형태를 알 수 없고 상면도 상당부분 삭토되어 있어 적심석 조차 남아 있지 않다. 잔존규모는 남변 기단이 4.65m, 동변 기단이 6.6m이다.

7) 7호 건물지
1호 건물지의 서쪽에 위치하며 도리칸 3칸, 보칸 1칸의 규모다. 도리칸의 간격은 4.33m, 보칸은 3.35m이며 직경 90㎝정도의 대형초석이 놓여있다. 초석과 초석 사이는 건물 내면을 면으로 쌓은 하방석렬이 놓여있고 건물내부 바닥에는 직경 40㎝ 정도의 편평한 자연할석을 정연하게 깔았다. 이들 초석 바깥으로 폭 1.54m 정도의 간격을 두고 기단석렬이 돌려져 있는데 서변 기단 석렬은 후대에 유실되었으며 북변 기단석렬은 6호 건물지 남벽 기단석의 하단에 맞닿아 있다.
건물의 용도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일반적인 민가의 구조와는 규모나 형태 면에서 상이하며 내부공간을 활용했다는 점에서 창고 등의 특수시설로 추정된다.
출토유물은 대부분 청자편이며 음각, 양각, 상감기법 등이 주로 사용되었다. 건물 남변기단 바깥쪽에서 선조문, 복합문 등이 시문된 기와 퇴적층이 노출되었다.


8) 배수로 시설06-4.jpg
3호 건물지 서북편에 근접해 있으며 3호 건물지 서벽 일부를 파괴하고 축조되었다. 수로의 길이는 12.8m, 폭은 0.56m로 좌·우 양쪽에 10㎝ 내외의 작은 자연할석을 이용해 석벽을 쌓고 바닥에 다시 편편한 할석과 기와편을 정연하게 깔았다. 수로내부에서 기와편 외에 특별한 유물을 출토되지 않았으며 수로의 북쪽과 남쪽 끝 부분의 모양도 상당 부분 파괴되어 알 수 없었다.

9) 기 타
6호·7호 건물지의 서편에 부정형의 석렬과 유물층들이 노출되어 있으나 근래에 농로가 개설되면서 파괴되어 원형을 찾기 어려웠다.
유적의 동남부에 부정형의 할석층이 노출되고 대형 초석이 하나 드러나 이 부근에 모종의 시설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정형성이 전혀 없어서 원상을 짐작키 어려웠다. 또한 1차 발굴 조사시 드러난 2호 담장유구의 석렬도 북쪽으로 이어져 오다가 7호 건물지 부근에 다달아 그 흔적이 사라져 이번에 조사된 건물지 들과의 상관관계를 밝히지 못하였다.